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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고아라의 This is America] 버려진 철로에 숨을 불어넣자 도시가 살아났다

입력 : 
2019-01-14 04:01:04
수정 : 
2019-01-14 09: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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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공중정원 `더 하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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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더 하이라인을 찾은 여행객이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도시는 빠르게 자란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쌓아 올리는 힘으로. 그러나 콘크리트 숲이 점차 세력을 확장할수록, 푸른 하늘의 면적이 줄어들수록, 우리는 오래되고 버려진 것들에서 더 큰 아름다움과 위로를 발견하곤 한다. 한때는 버려진 철로였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공원이 된 뉴욕 맨해튼의 '더 하이라인(The High Line)'처럼 말이다. 기차, 자동차, 사람이 뒤엉켜 다니던 19세기 뉴욕의 도로는 혼돈 그 자체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는 인명 사고와 극심한 혼잡을 해결하기 뉴욕시가 마련한 방책은 지상 9m 높이에 고가 철로를 건설하는 것. 맨해튼 미트패킹 지구를 시작으로 첼시를 지나 웨스트사이드 야드까지 이어지는 2.4㎞의 철로는 그렇게 완성됐다.

기차는 로어 맨해튼 구석구석에 식량을 전달하는 생명선의 임무를 수행하며 20년간 쉼 없이 달렸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자동차 보급이 보편화 되자 철로의 운명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은 점차 줄어들었고 1980년을 마지막으로 기차의 운행은 완전히 중단됐다.

과거에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던 그 안에 서려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든 간에 쓸모가 사라진 것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냉정하다. 기차가 멈춘 철로 위는 잡초와 야생화로 뒤덮였고 순식간에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다.

주변에 땅을 소유한 지주들과 시민들은 도시의 골칫덩이가 돼버린 철로의 완전 철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버트 해먼드와 조슈아 데이비드, 이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오래된 철로에 스며 있는 추억과 가치에 주목했다. 1999년 그들은 '하이라인의 친구들(Friends of the High Line)'이라는 비영리단체를 결성하고 뉴욕시와 주민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 결과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 공원에서 영감을 받은 '더 하이라인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2009년, 버려졌던 철로는 마침내 맨해튼에 숨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공중공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기찻길은 멋진 산책로로 단장됐고, 5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꽃과 식물이 가득한 정원이 꾸며졌다. 언제든 앉아갈 수 있는 벤치와 도시 속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선베드도 한가득 마련됐다.

사람들이 모여드니 자연스럽게 문화와 예술도 형성됐다. 건물 곳곳에는 벽화가 그려지고 조각품이 설치됐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더 하이라인을 무대 삼아 작품을 선보이고 공연을 기획했다. 주변 상권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삭막했던 미트 패킹 지구와 첼시 지구의 건물에는 갤러리와 편집숍,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동그란 초콜릿 과자를 찍어내던 나비스코(Nabisco)비스킷 공장은 사람 향기와 음식 냄새가 가득한 첼시마켓(Chelsea market)으로 변모했다. 공원을 보유한 도시는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도시와 녹지공간이 구분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더 하이라인이 특별한 이유는 일상과 쉼의 경계를 나누지 않아서다.

맨해튼 22개의 블록 사이로 막힘없이 흐르는 이 철로 위에서는 뉴욕의 진짜 모습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빌딩의 네모난 창문 속 꿈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 각자의 짐을 지고 어디론가 바쁘게 걷는 이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자유로운 젊음들까지. 하이라인에서 바라보는 뉴욕의 주인공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월가의 마천루도, 자유의 여신상도 아니다. 도시,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기차가 달리던 자리에 사람이 걷고, 차가운 철로 옆에 꽃과 나무가 심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 상상 이상의 여유와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도시를 더욱더 아름답고 살만한 곳으로 변화시킨다. 뉴욕의 서쪽 하늘을 가로지르는 2.4㎞의 철로는 말해주고 있다. 버려진 것들도 또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지나간 것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는 것이 앞만 보고 내달리는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말이다.

[글·사진 = 고아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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