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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LOUNGE] 최종양·김일규 이랜드 신임 부회장 | ‘창업공신’ 투톱, 위기 넘어 ‘제2도약’ 채비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9.01.14 11:20:42
새해 벽두부터 이랜드그룹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창업주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과 동생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을 전면에 대거 등장시켰다. 2020년 창사 40주년을 앞두고 야심 차게 단행한 인사가 어떤 성과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이랜드그룹은 최근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조직·인사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번 인사에서 주목을 끄는 인물은 ‘투톱 경영진’으로 부상한 최종양 이랜드리테일 부회장(57), 김일규 이랜드월드 부회장(61)이다. 이들 모두 박성수 회장 창업 초기부터 밑바닥에서 함께 일해온 ‘창업 공신’이라 눈길을 끈다.

이랜드월드 대표이사 부사장에서 두 단계 파격 승진한 김일규 부회장은 박성수 회장과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1980년 박 회장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에서 ‘잉글랜드’라는 2평짜리 옷가게를 시작할 당시 박 회장과 같은 교회에 다니던 후배였다. 故 옥한흠 사랑의교회 목사가 당시 이들이 다니던 교회 전도사였다. 잉글랜드 옷가게는 이랜드그룹의 모태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다니던 김 부회장은 군입대 전인 1982년 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제대 후 1984년 정식 입사했다. 당초 박 회장은 동대문에서 옷을 도매로 구입해 팔다가 자체 디자인한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김 부회장은 박 회장과 함께 옷 더미를 메고 공장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는 등 가게일을 물심양면 도왔다.

이랜드그룹이 해외 시장 진출 기반을 닦는 데도 김 부회장 역할이 컸다. 그는 1980년대 후반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기 이전 중국에 들어가 생산 공장을 물색하고 사업 기반을 다져왔다. 중국에 생산기지를 설립한 이후에는 해외 다른 지역 공략에 주력했다. 영국으로 넘어가 유럽법인장을 맡았고, 2007년부터는 미국법인을 이끌었다. 김 부회장은 해외법인에서만 10여년간 근무하면서 만다리나덕, 코치넬리, 팔라디움, 케이스위스 등 이랜드그룹이 인수합병(M&A)한 브랜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이랜드월드 전략기획실장, 이랜드건설 대표, 이랜드월드 대표 겸 커뮤니케이션 총괄 등을 맡아왔다. 김일규 부회장은 앞으로 이랜드그룹 지주사 격인 이랜드월드 경영을 총괄하면서 그룹 살림 전반을 챙길 예정이다.

특히 김 부회장은 이랜드그룹 커뮤니케이션 총괄까지 겸임하기로 해 눈길을 끈다. 부회장이 커뮤니케이션실을 이끄는 것은 이랜드그룹 창사 이래 처음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4월 신설된 그룹 커뮤니케이션실을 직접 맡아왔다. 그동안 대내외 소통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의식해 언론 홍보뿐 아니라 사내 홍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홍보까지 챙기며 그룹사 안팎 소통에 힘썼다. 이랜드 관계자는 “그룹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했던 김일규 대표가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홍보실에 힘이 많이 실렸다. 향후 커뮤니케이션실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종양 부회장 역시 대표적인 창업 공신이다.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86년 이랜드에 입사해 주로 중국 사업을 맡아왔다. 이랜드가 1994년 상하이에 처음 생산지사를 설립할 때 중국으로 건너가 초기 시장 조사에 나선 인물이 최 부회장이다.

2001년 이랜드중국 초대 대표를 맡기 전에는 중국 사회와 역사,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중국 관련 서적 100권을 독파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그만큼 그룹 내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불린다. 최 부회장은 중국 사업을 맡은 후 6개월 동안 드넓은 중국 전역을 순회하는 강행군까지 했다. 기차, 버스를 타고 중국의 최소 단위 행정구역인 ‘진(한국의 읍 개념)’을 구석구석 다니며 지역별 생산 공장, 유통망을 구축하는 성과를 냈다. 중국 각 지역 백화점은 물론 생산 공장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검증한 결과다. 밤낮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입에 안 맞는 음식을 먹고 탈 난 배를 움켜쥐며 사업장을 다니던 날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노력으로 이랜드그룹이 까다롭다는 중국 시장에 안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 부회장은 “중국은 지역마다 색깔이 확연히 다른 만큼 어느 나라보다 정확한 지식, 정보가 필요했다. 방대한 내수 시장 규모만 보고 무턱대고 덤볐다면 지금의 성과를 이뤄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이번 인사로 최 부회장은 이랜드그룹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유통법인을 총괄하게 돼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랜드그룹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면서 일선에서 물러난 박성수 회장은 이제 미래 먹거리 발굴, 차세대 경영자 육성에만 전념한다. 회장 직함은 유지하지만 계열사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박성경 부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뗀다. 그동안 이랜드그룹 해외 사업, 인재 육성 등 살림을 직접 챙겨왔지만 부회장직에서 물러나 이랜드재단 이사장을 맡는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계열사 이사회 중심의 운영체제를 강화하고 독립경영 시스템을 확고히 하는 것이 핵심이다. 창립 40주년을 맞는 내년 이랜드그룹이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랜드그룹은 그동안 수차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오랜 기간 공들여왔던 중국 유통, 패션 사업이 어려움에 빠지면서 재무구조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생사의 기로’에 서자 부랴부랴 핵심 사업을 매각하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 2017년 초에는 알짜 패션 브랜드 티니위니를 중국 여성복 업체에 팔았다. 매각가격은 8700억원으로 티니위니 장부상 평가액(12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그해 6월 생활용품 브랜드 모던하우스도 7130억원을 받고 사모투자펀드 MBK파트너스에 넘겼다.

이랜드월드는 메리츠금융그룹 사모사채 4000억원을 모두 상환해 부채비율을 낮췄다. 넉넉한 자금을 확보한 덕분에 이랜드 재무구조도 좋아졌다. 2016년 말까지만 해도 315%에 달했던 이랜드그룹 부채비율은 2017년 말 198%, 최근 170%대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다. 지주사 전환, 이랜드리테일 상장 등 당면 과제가 만만치 않다.

이랜드는 ‘이랜드월드 → 이랜드리테일 → 이랜드파크’로 이어지는 그룹 지배구조를 이랜드월드가 계열사를 거느리는 지주사 형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사업형 지주사인 이랜드월드에서 패션사업부를 분리해 순수 지주사로 전환하고, 이랜드월드가 이랜드패션(가칭), 이랜드리테일, 이랜드파크 등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사업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지만 아직 재무구조가 불안해 갈 길이 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랜드리테일 상장도 변수다. 이랜드리테일은 2016년 상장을 추진했다 실패한 아픈 경험이 있다. 그동안 업황 부진 여파로 상장이 지연됐지만 철저한 준비 끝에 지난해 12월 27일 다시 상장 예심을 추진했다. 올 상반기 내 상장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IPO 시장 침체로 상장이 흥행할지는 미지수다.

실적 회복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이랜드그룹은 80여개 계열사를 둔 대형 패션 유통업체로 성장했지만 최근 몇 년 새 매출이 정체됐다. 한때 10조원을 넘어섰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9조3600억원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매출 회복을 위해서는 스파오, 스코필드 등 20여개 브랜드를 운영 중인 중국 패션 사업이 살아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랜드는 최근 중국 사업 회복을 위해 백화점 내 적자 매장을 접고 온라인 쇼핑몰, 아웃렛 등 신유통 채널을 강화한 만큼 패션 사업이 얼마나 성과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이랜드그룹이 각종 자산 매각,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는 성공했지만 성장세가 정체된 것은 사실이다. 과감히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책임경영을 강화했는데 그룹 옛 위상을 되찾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재계 관계자 촌평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2호 (2019.01.16~2019.01.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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