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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기사회생했지만…브렉시트 플랜B도 `가시밭길`

김덕식 기자
입력 : 
2019-01-17 17:48:42
수정 : 
2019-01-17 23: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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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늪에 빠진 영국

불신임 투표 부결…실각 모면
메이"개인적 욕심 거둬야"호소
노동당은 "독자 대안 마련할것"

EU, 내년까지 협상연기 검토
제2 국민투표 가능성까지 나와
사진설명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실각 위기를 모면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관련해 다시 한번 국내외 협상에 나선다. 메이 총리가 EU와 마련한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의회 승인 투표에서 참패한 뒤 진행된 불신임안 표결에서 기사회생한 덕분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방안을 두고 영국 내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향후 정국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심지어 같은 정당 내에서도 견해가 엇갈리면서 당분간 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16일 저녁(현지시간) 영국 하원에서 메이 정부의 불신임을 놓고 이뤄진 찬반투표에서 불신임 안건은 찬성 306표, 반대 325표로 부결됐다. 표차가 19표에 불과해 메이 총리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실각을 면했다. 불신임안 부결로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는 영국 노동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불신임 위기를 넘긴 메이 총리는 당장 브렉시트 합의안을 대체할 '플랜B'를 마련해 오는 21일까지 내놓아야 한다. 의회 의사일정안 개정안에 따르면 승인 투표 부결일로부터 3개회일 이내에 대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가 제시할 '플랜B'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메이 총리는 불신임안 부결이 확정된 뒤 야당 지도부와 브렉시트 합의안의 대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여야 지도부의 단합을 호소했다. 이날 BBC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지금은 개인적인 욕심은 거두어 둘 때"라며 "EU를 탈퇴하라는 영국 국민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메이 정부는 우선 각 당 지도부와 만나 합의안 승인을 위한 대책을 협의하고, 이를 기반으로 EU와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제1 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영국이 EU와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를 배제할 경우에만 논의에 참여하겠다"고 맞섰다. 노동당만의 독자적인 브렉시트 대안도 제시하겠다고 나섰다. 코빈 대표는 17일(현지시간) 잉글랜드 남부 헤이스팅스에서 연설하면서 독자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노동당의 대안도 실패하면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를 지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필요하면 또다시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할 수 있다는 입장도 나타냈다. 그러나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 또는 조기 총선에서 노동당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묻자 이는 전체 당이 결정할 문제라고 즉답을 피했다.

핵심 쟁점은 여전히 의회의 반발이 가장 심했던 '백스톱(backstop)'이다. EU와 신속하고도 완전한 결별을 원하는 보수당 내 강경파, 즉 '하드 브렉시트파'는 EU와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들어 있는 '백스톱' 조항에 반발해 전날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조항이 발동하면 브렉시트가 유명무실해진다는 이유에서다. 백스톱 조항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의 국경 분리가 언제, 어떻게 이뤄질지와 관련 있다. 현재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에서는 사람·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운데, 메이 총리는 '하드 보더(hard border, 국경 통과 때 엄격한 통행·통관 절차를 적용하는 것)'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영국이 일정 기간 EU의 관세 동맹에 머물기로 EU와 합의했다.

끝내 메이 총리가 의회 설득에 실패하면 제2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다시 한번 묻는 방안도 힘을 얻고 있다. 노동당은 지난해 브렉시트 전략과 관련해 우선 조기 총선을 추진하되 이것이 불가능하면 제2 국민투표를 비롯한 모든 옵션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앤드루 아도니스 영국 상원의원은 CNBC와 인터뷰하면서 "보수당과 노동당이 모두 동의하는 브렉시트의 형태가 없기 때문에 '플랜B' 합의도 힘들 것"이라며 "현재 의회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제2 국민투표일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도 정권 교체 시도에 실패한 노동당이 재투표 계획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영국은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라 오는 3월 29일을 기해 EU 탈퇴가 예정돼 있다. 의회에서 제2 국민투표 실시를 결정하더라도 투표 캠페인과 준비 등 시간을 고려하면 브렉시트 시점 연기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EU 관리들이 브렉시트를 2020년까지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EU 관리들이 당초 3월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를 6월 말까지 3개월 연기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지금은 브렉시트를 내년까지 연기하는 법적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정치권에서도 브렉시트 연기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BBC에 "EU는 영국이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시간을 더 줘야 한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전날 밤 "메이 총리가 EU 지도자들에게 '우리는 재협상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브렉시트가 아예 무산될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날 에이드리언 폴 골드만삭스 유럽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CNBC에 "브렉시트가 미뤄지거나 느슨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브렉시트 계획이 백지화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샘 린턴 브라운 BNP파리바 외환 전략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파운드화 거래는 브렉시트가 연기되는 수순을 반영하고 있다"며 "트레이더들은 더 나아가 2차 국민투표와 영국의 EU 탈퇴가 무산될 가능성까지 열어 두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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