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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동부이촌동-들고남이 없는 점잖은 부자 동네

입력 : 
2019-01-09 16:18:23
수정 : 
2019-01-09 17: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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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맛집을 열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동부이촌동이다. 스시, 돈가스, 이자카야 등 일본식 맛집이 즐비하다. 동부이촌동 남쪽으로는 한강, 북쪽으로는 과거 미군 기지로 가로막힌 도시의 섬 같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동부이촌동에 가면 서울의 여타 동네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살아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이곳만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점잖은 부자 동네’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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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남쪽으로 직진하면 남대문, 서울역, 용산을 거쳐 한강에 닿는다. 이 한강을 향해 정면으로 서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나오는 동네가 바로 동부이촌동이다. 이 동네에 들어서면 폭이 그리 넓지 않는 중심 도로 양편으로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이곳의 독특한 풍광 하나는 길 양쪽에 위치한 오래된 2층짜리 상가와 그 상가 가게들에 붙어 있는 일본어 간판들이다. 우리는 동부이촌동을 서울의 ‘리틀 도쿄’라 부른다. 이촌역 4번 출구로 나와 강촌 아파트, 한가람 아파트, 장미 아파트, 한강 맨션 사잇길로 들어서면 왜 이곳을 리틀 도쿄라 부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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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역 부근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오후 2시에서 3시쯤, 한가람 아파트 정문 앞에 가면 일본인 엄마들의 나직한 대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곧이어 상암동 일본인 학교에서 출발한 스쿨버스가 도착하면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이내 집으로, 학원으로 들어간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인들은 서울 중심지에서 가깝고 또 강남의 일본인 학교에 통학하기 편한 곳으로 이곳에 하나둘씩 정착했다. 일본인 특유의 집단화 감성으로 그들은 더 편하고 더 발달된 동네를 마다하고 이곳에 정착지를 형성한 것이다. 특히 이곳 리틀 도쿄는 다른 외국인 거주지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 그리 요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외국 생활에서 ‘이민자’의 신분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보호 본능이다. 조용하고, 예의 있고, 남을 배려하는 일본인들이 수천 명이 살고 있지만 동부이촌동의 외모는 한국의 여느 아파트 단지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그래도 바로 이웃에서 또 다른 생활 양태와 문화를 접하고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은 이곳만의 강점이다. 동부이촌동은 풍수설에서 ‘돈과 물이 감싸 안고 흘러가는 곳, 용이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자리’라는 명당이다. 그래서인지, 동부이촌동은 강남 압구정동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아파트 부촌의 대명사다. 애초 이곳에는 무허가 판잣집이 약 2000여 채가 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홍수가 나 판자촌이 물에 감기고 그곳 주민들은 땅 쪽으로 더 들어와 피신했다. 그래서 지명도 지금의 ‘두 마을 이촌’이 아닌 ‘옮기는 이촌’이었다. 이곳이 상전벽해가 된 것은 1970년대 공무원 아파트, 한강 맨션 아파트, 외인 주택이 들어서면서다. 이 아파트들은 서울 사대문 안에 거주하던 중상류층을 아파트로 이주시키는 성공적인 케이스였다. 그 뒤부터 동부이촌동은 ‘점잖은 부’를 지키는 묘한 동네가 되었다.

사대문 안 부촌인 평창동과 성북동 등의 ‘폐쇄적 권위’ 또는 도곡동, 대치동, 반포 등 강남 부촌들의 특성이 ‘치열한 확장성’이라면, 동부이촌동은 이 두 가지가 융합된 장소다. 적당한 부를 축적한 동네면서도 그 부에 쫓기는 느낌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여유로움을 동부이촌동이 갖고 있다. 아마도, 오래 거주하고 그래서 정들어 들고나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이 동부이촌동의 매력이다.

[글 장진혁(아트만텍스트씽크) 사진 아트만텍스트씽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2호 (19.01.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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