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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로 웨이스트-무조건, 패키지 프리숍을 디자인하라

입력 : 
2019-01-09 16:30:20
수정 : 
2019-01-09 17: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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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한 점 없는 생활을 위해 일상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 것인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 버린 제로 웨이스트의 세계. 일단 패키지 프리숍으로 시작하자. 하나가 열이 되고 백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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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직접 포장 용기를 가져와 구입할 물건의 알맹이만 담아 가는 가게가 늘고 있다. 먹거리를 담을 장바구니와 포장 용기를 스스로 챙기는 불편보다는 곧 지구상 먹거리가 사라질 거라는 불안이 더 큰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환경 운동의 거점이다. 독일이 가장 빨랐다. 2014년 베를린에 생겨난 패키지 프리숍 ‘오리기날 운페어팍트’. 곡물, 세재, 각종 요리 재료와 생활용품을 포장지 없이 살 수 있는 매장으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식료품점이다. 이후 비슷한 개념의 공간이 그 수를 불리고 있다. 2016년에 뉴욕 ‘더 필러리’, 지난 2월에 오픈한 홍콩 ‘리브 제로’ 같은 곳들. 국내에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 생긴 ‘지구’와 성동구의 ‘더 피커’. 지난 10월에 문을 연 ‘지구’는 해외의 제로 웨이스트 식료품점을 벤치 마킹한 곳이고 ‘더 피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료품을 판매하고 남은 일부 재료를 레스토랑 식자재로 사용하는 ‘그로서란트(grocerant)’다. 이런 곳을 한번 방문하면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에 대한 각성이 파도처럼 덮친다. 쥐꼬리만 한 환경 부담금을 얹은 비닐봉지를 마구잡이로 사용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후회가 넘친다. 하지만 번개 같은 각성 이후의 꾸준한 실천은 어렵다. 야채를 담은 천 봉투는 수시로 빨아 말려 놔야 하고, 잼과 시럽을 사는 날이면 여러 개의 유리병을 챙겨 길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일단 집에서 한참 멀다. 매장 수가 적고 그마저도 소규모가 대부분이라, 패키지 프리숍을 방문하는 건 인스타 성지 순례 같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양과 질은 홍보용 콘셉트숍 같은 느낌이다. 일상의 일부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다 보면 마음이 바빠지기도 한다. 누구나 인지하는 문제를 개선해 미래를 밝히는 좋은 일은 역시나 정부와 대기업의 거대 플랜에 기대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속도가 너무 느리다. 마을마다의 마트에 ‘패키지 프리’ 마크가 내걸리는 날, 병을 챙겨 부러 장을 보러 가는 날. 클릭 몇 번으로 배달되던 식재료와 생필품, 그 편리와 편안을 쓰레기처럼 내다 버리는 날. 패키지 프리숍 디자인이 활성화돼 그 날이 하루빨리 일상 속으로 다가온다면, ‘환경 보호’라는 화두 말고도 의외로 많은 사회 문제들이 해결될지 모른다. 사람을 만나는 일, 자연의 일부를 손으로 만지는 일이 늘어날 테니 말이다. 디지털 가상 공간 속에서 살게 될 가까운 미래에 붉은 피를 돌게 할 것이다. 패키지 프리숍이 일상에 온기를 더해 정신 건강을 지켜 내는 힐링 센터로 기능할지 누가 알겠는가. 제로 웨이스트의 길은 멀고도 멀다. 샴푸를 버리고 비누를 사용하는 그 작은 행위 하나도 실천은 어렵다. 의지박약의 작심삼일 인생들이 올곧게 목표에 다가가려면 자극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패키지프리 로드숍이다. 거리 곳곳에 우뚝 서 우리에게 매서운 자각을 주는 사감 선생님 같은 존재. 이제 제로 웨이스트는 이상이 아니라 필수다. 그게 현실이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언스플래시, 제로웨이스트샵지구 공식 SNS, 오리기날 운페어팍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2호 (19.01.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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