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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os Aires in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나는 그가 평생 아프기를 바란다”

입력 : 
2019-01-09 18: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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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홍콩과 닮은 이유는 고온 다습한 아열대 기후 탓도 있지만 아마도 이민자가 건설한 도시, 항구라는 공통 인자 탓일 것이다. 영화 ‘해피 투게더’는 개봉 당시부터 ‘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찍었지?’라는 점이 스토리 못지않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두 남성의 사랑은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자유롭지 않지만, 한편으로 더 자유롭고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 찾은 곳이라는 해석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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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동화 같은 도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사실 이쯤 돼야 ‘외국’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서울에서 가려 해도 미국을 거쳐 비행 시간만 꼬박 30시간이 넘는, 지구 반 바퀴 건너편이다. 큰 결심을 해야 평생에 한 번 가 볼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머리에 인지된 아르헨티나에 대한 ‘앎’이 비록 단편적이지만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브라질과 함께 남미 양강인 마라도나로 대표되는 축구, 거대한 초원 지대 팜파스, 20세기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인물 후안 페론과 이사벨 페론, 그리고 애절한 팝 넘버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 그런가 하면 격정과 열정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마성의 탱고, 미식가들이 애정하는 숯불에 구워 먹는 ‘아사도’도 20세기 초 ‘남미의 파리’로 불리며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던 ‘미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면면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20세기 말엽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은 아마도 왕가위 감독, 양조위, 장국영 주연의 영화 ‘해피 투게더’일 것이다. 어쩌면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양조위가 분한 아휘, 장국영이 분한 보영이 궁극적으로 가고 싶었던 ‘사랑의 피안’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이과수 폭포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헤어지고 결국 아휘만이 홍콩으로 돌아가기 전에 홀로 이과수 폭포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영화에서 이과수 폭포는 아휘와 보영에게 마지막에 닿고 싶었던 사랑의 자유로운 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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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비치는 ‘좋은 공기’라는 뜻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작은 16세기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식민 지배 때부터 시작한다. 도시로서 처음 기능을 부여받은 것은 1536년 스페인 귀족 페드로 데 멘도사가 정착하면서부터다. 라플라타강을 이용한 무역항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성장했고 1816년 스페인에게서 독립한 후 1880년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되었다. 아르헨티나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번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의 갈등과 전쟁 덕분이었다. 19세기, 20세기 초 유럽은 수많은 전쟁과 민족 갈등을 빚었고 이로 인해 이탈리아, 스페인은 물론이고 독일, 폴란드 등지에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아르헨티나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라플라타강 유역에서 농업, 축산업에 종사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당시 아르헨티나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손꼽힐 정도로 부를 축적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또한 ‘남미의 파리’로 불리며 문화, 예술, 건축 등에서 유럽의 질시를 받을 정도로 발전했다. 아르헨티나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 무렵 등장한다. 바로 후안 도밍고 페론. 페론주의를 창시한 그는 20세기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 인물 중 하나다. 그는 1946년부터 1955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부와 소득의 재분배, 중산층의 성장을 주장(이는 후에 포퓰리즘으로 매도되기도 했다)했던 페론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가장 화려했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 뒤인 1970년 중엽부터 군부 독재에 의해 국력이 쇠락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모든 중남미 국가들이 겪고 있는 경제 성장 저하, 부의 독과점, 포퓰리즘 논쟁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보고 느끼는 즐거움을 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귀 호강’이다. 그것은 바로 탱고다. 항구 라보카 지역에서 이민자 출신 목동, 즉 가우초들의 춤에서 시작된 탱고는 당시 사창가에서 순번을 기다리던 남성들이 추던 춤이라고 한다. 거대한 팜파스에서 목동으로 일하던 가우초, 도시 항구의 노동자들이 마룻바닥을 두들기며 춤을 추었는데 이것이 다양하게 변주되었다는 것. 허리에 치리파를 두르고 모직으로 된 망토 폰초,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고 주름 잡힌 봄바차, 그리고 긴 가죽 장화에 박차를 찬 목동들은 자신들의 남성미, 그리고 외로운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발을 힘껏 굴렀다. 그 춤을 보조하는 추임새 역할이던 음악 역시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만나면서 독립된 장르로 발전하여 현대의 탱고가 완성되었다. 특히 탱고의 장인 카를로스 가르델과 아스토르 피아졸라에 의해 하나의 예술로 자리 잡은 탱고는 그 격정성, 섹시함, 우아한 슬픔에서 독보적인 장르로 세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영화 ‘해피 투게더’를 음악으로 비유하면 바로 탱고다. 낡은 주방, 두 남자는 서로 마주보고 손을 잡고 춤을 춘다.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발을 떼고 이마를 마주 댄다. 한쪽은 리드하고 한쪽은 리듬에 몸을 맡긴다. 서로 웃다가 또 어긋날까 조바심을 낸다. 당연히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고 한쪽이 다른 곳을 바라보는 순간, 두 사람은 처연한 슬픔에 사로잡힌다. 왕가위가 선택한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마치 안개 속, 동화 속 도시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곳에서의 사랑, 관계, 미움은 실체가 없어 보이지만 흔적 같은 고독은 남는다. 쇠락한 귀족 가문의 옛 영화가 남겨진 거대한 저택 같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휘와 보영이 확인한 것은 ‘사랑은… 떠나는 것’이다. 상투적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다시 만난다는 것, 즉 ‘우리 다시 시작하자’는 것과 동일하다. 주술 같은 보영의 말처럼.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한마디로 ‘슬픈 사랑의 탱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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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평생 아프기를 바란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홍콩을 떠나 이곳에서 살고 있는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은 남의 눈에는 친구처럼 보이지만 연인이다.

어른스럽고 생각이 많은 아휘, 충동적이며 자유분방한 보영은 서로 의지하고 사랑한다. 둘은 보통의 연인처럼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데 그때마다 “다시 시작하자”고 찾아오는 것은 보영이다. 두 사람은 이과수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여행 중이다. 넓은 아르헨티나에서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는 길은 말처럼 쉽지 않다. 가다가 길을 잃어버린 아휘, 옆에서 계속 이를 탓하는 보영. 그래도 계속 간다. 잠깐 들른 주유소. 고물이 다 된 자동차는 시동도 걸리지 않고 말썽이다. 초조하게 자동차 키를 돌리는 아휘. 이를 지켜보던 보영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아휘를 떠나 버린다. 혼자 남은 아휘. 이런 이별과 재회가 익숙한지, 아니면 그도 보영의 떠남을 원했는지 표정에 변화가 없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아휘는 클럽에서 안내원으로 일한다. 손님을 맞던 아휘의 눈에 보영이 보인다. ‘그새 새 친구가 생겼나 보다’는 생각과 함께 아휘는 보영을 주시한다. 보영은 외국인 새 친구들과 자동차에서 내린다. 행복한 얼굴이다. 아휘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그런 아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영은 아휘가 일하는 클럽에 매일 드나든다. 그리고 가끔은 아휘에게 아는 척도 한다. 아휘는 보영에게 지쳤다. 어린아이처럼 보살펴야 하고, 투정 부리고, 훌쩍 떠나갔다가 자기 마음 내키면 돌아오는 보영을 사랑하지만 점점 힘겨워진다. 좁고 낡은 아휘의 방. 홀로 앉아 있는 아휘.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휘는 순간적으로 밖에 보영이 있음을 알아챈다. 반가움, 서운함, 불안이 교차하는 아휘의 얼굴. 문을 열자 보영이 서 있다. 아휘는 놀란다. 보영의 온몸이 피투성이다. 누구에게 얻어맞았는지 보영은 두 손도, 얼굴도 엉망이다. 두 사람은 잠시 상대를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껴안는다. 결국 아휘는 보영을 또 받아들인다.

아휘는 보영을 극진히 돌본다. 두 손을 못 쓰는 보영의 얼굴을 씻기고, 옷도 갈아 입히고, 밥도 떠먹인다. 그리고 아픈 보영이 편하게 자라고 침대도 내주고 자신은 소파에서 잔다. 그때마다 보영은 아휘를 더 의지하고 그의 품으로 파고든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살림도 맡아 하던 아휘가 심한 몸살에 걸렸다. 아휘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끙끙 앓는다. 이런 아휘에게 다가오는 보영. 걱정스런 눈으로 아휘를 본다. 아휘는 겨우 눈을 뜨고 보영을 쳐다본다. 그러자 보영이 말한다. “아휘, 배고파.” 잠시 후, 아휘는 아픈 몸을 이끌고 보영을 위해 식사를 준비한다. 그래도 아휘는 지금이 좋다. 힘들게 보영을 보살펴도 내 곁에 있으니까. 어디로 떠나지 않으니까, 아휘는 좋다. 어쩌면 아휘는 보영이 평생 아프길 바라는지도 모른다. 아휘의 병간호에 보영의 상처는 점점 나아진다. 그럴수록 아휘의 마음은 복잡하다. 자신의 가슴을 파고드는 보영을 밀치면서도 아휘는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휘는 또 떠나갈 보영에게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휘는 무심한 척 보영이 침대에 있는지 확인하고 보영이 잠시 안 보이면 보영의 짐을 살핀다. 보영이 떠났을까 봐.

‘사실 나는, 보영의 손이 낫지 않기를 바랬다. 아픈 그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보영의 몸이 회복되었다. 그러자 보영은 예전의 보영으로 돌아간다. 예민하고 신경질 내고 매일 외출하고 자유분방하게 오늘 하루를 즐긴다. 이런 보영이 영 못마땅한 아휘는 보영의 여권을 숨긴다. 보영은 아휘에게 여권을 내놓으라고 화를 내지만 아휘는 거부한다. 두 사람은 같이 있고 때로는 싸우고 화해하지만 아휘는 고독하다. 보영은 아휘를 또 떠난다. 아휘는 또 상처받고 보영을 기다린다. 그러다 너무 힘든 아휘는 술에 취해 보영을 찾아간다. 그런 자신을 원망할 정도로 후회하는 아휘에게 보영이 말한다.

“나랑 지낸 시간을 후회해?”

“그걸 말이라고 해? 네 얼굴 보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후회돼 미치겠어.”

아휘가 일하는 식당. 그곳에는 장(장첸)이라는 대만 청년이 있다. 씩씩하고 배려심 많은 장과 아휘는 금세 친해진다. 장은 아휘의 상심을 위로하고 여러모로 그를 보살핀다. 아휘는 생전 처음 누군가의 보살핌과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느낀다. 하지만 장은 곧 대만으로 떠날 예정이다. 장은 “이 세상 끝이 여기서 가까워요. 내가 그곳에서 아휘, 너의 슬픔을 모두 버려줄 테니 이 녹음기에 슬픔을 다 담아 봐요”하며 녹음기를 아휘에게 건네고 자리를 뜬다. 아휘는 식당 주방 구석에 앉아 녹음기를 켠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아휘.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아휘는 흐느낀다. 녹음기에는 아휘의 흐느낌만이 담긴다. 장은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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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휘는 돈을 모아 홍콩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도축장에 취직한 아휘. 그를 보영이 찾아온다. 그리고 계속 여권을 달라고 재촉한다. 아휘는 주지 않는다. 보영은 투정부리듯 아휘를 힘들게 하고 아휘는 부러 보영을 피한다. ‘어떤 일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영이 다시 여권을 달라며 전화를 했다. 돌려주기 싫은 게 아니고 그를 다시 보기 싫었을 뿐이다. 보영과 마주치는 것이 두렵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드디어 목표한 돈을 모은 아휘는 홍콩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한다. 그리고 보영과 함께 자고, 먹고, 사랑했던 방을 찾아간다. 찬찬히 둘러보는 아휘. 그는 보영의 여권을 꺼내 놓아 둔다. 그리고 홍콩으로 떠나기 전날, 보영과 함께 가기로 했던 이과수 폭포를 찾는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소용돌이 치며 떨어지는 폭포. 그것을 바라보며 아휘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조용히 혼잣말을 한다.

“혼자 이과수 폭포에 도착하니 보영이 생각난다. 슬펐다.” 폭포 아래 둘이 있는 장면만 상상해 왔기 때문일까. 아휘는 보영과의 사랑,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고독 그리고 이방인의 진한 외로움을 이과수 폭포에 쏟아 버린다. 그 시간, 보영은 아휘의 방을 찾는다. 모든 것이 그대로다. 그런데 붉은색 여권이 놓여 있다.

여권을 펴 보는 보영. 그의 여권이다. 보영은 아휘가 진짜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탠드, 침대, 소파…. 모든 것에 아휘와의 추억이 가득하다. 보영은 담요를 끌어안고 스탠드를 바라본다. 스탠드에는 아과수 폭포가 있다. 보영은 눈물을 흘리며 쓰러진다. ‘아, 아휘가 정말 떠났구나.’ 보영은 오열한다.

아휘는 홍콩으로 가기 전 장을 찾아 대만에 왔다. 야시장 식당에서 장의 부모를 만난 아휘. 자리를 일어나던 아휘는 장의 사진을 발견하고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꽉 들어찬 거리에 들어선다. 아휘의 독백이 화면에 흐른다.

‘홍콩으로 가기 전 대만에 왔다. 요령 야시장에 가 봤다. 시장은 붐볐다. 장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가족을 만났다. 그가 왜 항상 행복한 표정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에겐 아무 때나 돌아와도 환영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장의 사진을 한 장 가지고 나왔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보고 싶으면 어디서 찾을지는 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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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랑의 선율 탱고

이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1997년 작이다. 양조위, 장국영을 정면에 내세워 파격적인 동성애를 다루어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사랑 이야기다. 단지 남녀가 아닌 두 남성이 사랑한다는 것에서만 여타의 로맨스 영화와 차이가 있을 뿐, 영화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 따위는 완전히 배제한 채 슬프고도 외로운 사랑에 집중, 탱고 선율에 이야기를 실었다. 영화의 원제목은 ‘춘광사설春光乍洩’이다. 이 뜻은 ‘비밀스럽고, 은밀하며, 때로는 추잡스런 어떤 것의 노출’ 혹은 ‘구름 사이로 갑자기 비추는 봄 햇살’을 뜻한다. 그래서일까. 아휘와 보영은 홍콩에서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왔다. 두 사람의 사랑은 끊어 내기도 포기하기도 쉽지 않은 질긴 사랑이다. 왕가위는 ‘왜 부에노스아이레스인가?’라는 질문에 “완전히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답했지만 그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자유롭게 사랑하기 위해서”다.

아휘와 보영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르다. 어른스럽고 책임감 강한 아휘, 투정부리고 변덕스러운 보영. 보영은 아휘에게 끊임없이 요구하고 보챈다. 그럴 때마다 아휘는 무조건 다 받아준다. 밥을 떠먹이고, 얼굴을 씻기고, 담배도 사다 주고, 잠이 든 얼굴을 바라보며 이불을 덮어 주고 그럼에도 그가 떠나갈 것을 두려워할 정도다. 그래서 아휘와 보영은 행복할까. 제목 ‘해피 투게더’는 ‘해피’와 ‘투게더’로 묘하게 분절된다. 이는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결국 ‘함께’도 ‘행복’하지도 못한 두 사람을 통해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다만 그 관계의 설정인 동성애는 유별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고 영화는 말한다. 아휘와 보영은 성별, 인종, 빈부, 성격 등 모든 것에 구분 없는 그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절제된 대사, 아름다운 화면, 소품 하나에도 신경 쓴 예민한 연출 등 모든 것이 완성도 높은 이 영화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음악이다. 주제곡인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와 아휘와 보영의 관계 진척도, 사랑의 간격을 보여주는 탱고의 선율은 강한 여운을 준다. 1967년 미국의 록밴드 ‘The Turtles’의 히트곡 ‘Happy Together’는 이후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고 커버곡으로도 사랑받았다. 그것을 프랭크 자파가 걸쭉한 목소리로 재해석해 불렀는데, 왕가위는 이 영화에서 홍콩 출신 가수 대니 청 버전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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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그 유명한 탱고 장면. 아휘와 보영이 꼭 껴안고 춤을 추던 클럽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 명소 ‘Bar Sur’로 영화 개봉 이후 이곳은 관광객의 순례 명소가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에타누 벨로주의 ‘Cucurrucucu Paloma’가 우아하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탱고의 명인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음악이 영화를 지배한다. 특히 아휘와 보영이 택시를 타고 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화면도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고 보영이 아휘의 어깨에 몸을 기대는 순간 피아졸라의 ‘Prologue’는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을 더욱 깊게 표현한다. 이 음악은 마지막에 아휘가 홀로 이과수 폭포를 찾았을 때도 아휘의 애절한 감성을 드러내는 데 쓰였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을 관통한 명장면인 아휘와 보영이 탱고를 추는 장면에서 역시 피아졸라의 ‘Finale’가 흘러나온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세 가지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축구, 쇠고기에 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워 먹는 전통 요리 ‘아사도’, 그리고 탱고다. 화려한 동작과 의상을 입은 무희와 연주가,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교 넘치고 섹시하면서도 슬픔을 담은 탱고는 음악과 춤 모두 사랑 받는 장르다. 아르헨티나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탱고는 그들에게는 생활이다. 수많은 클럽에서 탱고가 공연되고 탱고만 다루는 TV채널까지 있을 정도다. 탱고의 시작은 보통 19세기 중후반 즉 1870년대 무렵으로 본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 스페인 이민자들이 건설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이민자의 설움과 외로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항구의 사창가에서 이 탱고 음악이 시작되었다. 항구, 사창가, 이민자 이 세 조합만으로도 탱고의 태생적 유전자를 짐작할 수 있다. 짙은 향수를 담은 탱고는 고향을 떠나 먼 타국 땅에서 느끼는 외로움, 서러움, 고독을 그대로 표현한다. 애초 이 탱고의 이름은 ‘바일리 꼰 꼬르떼 baile con corte’. ‘멈추지 않는 춤’이라는 뜻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창가에서 출발한 탱고가 세계적인 장르의 음악이 된 계기는 20세기 초 유럽에 전해지면서다. 탱고는 유럽에 전파되면서 더 우아하고 부드럽게 순화되었다. 그러면서 왈츠가 지배하던 유럽 사교계의 환호를 얻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무렵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의 명성이 미국에 상륙하면서 탱고는 유럽과 북미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했다. 불행하게도 카를로스 가르델은 미국의 신화적인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와 함께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그럼에도 가르델의 목소리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탱고의 대명사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탱고를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전파한 인물은 역시 아스토르 피아졸라다. 물론 그 이전에 앙헬 비욜도, 엔리케 사보리도, 후안 데 디오스 필리베르토, 엔리케 산토스 디세폴로 그리고 탱고와 떼 놓을 수 없는 악기인 반도네온 명연주자 비센테 그레코 등이 현대 탱고의 근간을 마련한 인물들이다.

많은 이가 ‘탱고는 감정이 춤추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안에 기쁨, 격정, 사랑, 슬픔, 회한이 모두 담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피 투게더’ 속 아휘와 보영의 사랑을 담아내기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탱고만한 그릇도 없는 셈이다. 비록 슬픔이 넘쳐 한 줌 고독만 남아 있어도. 그래서 오래 기억된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Daum영화]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2호 (19.01.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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