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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베스트 애널리스트] 매경 베스트 애널리스트 ‘명예의 전당’ 1기-공채 CEO·33년 현역…꽃 중의 꽃

  • 김기진 기자
  • 입력 : 2019.01.11 09:41:49
  • 최종수정 : 2019.01.14 09:38:15
‘증권가의 꽃’.

애널리스트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철저한 분석으로 유익한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 아울러 향후 돈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자본시장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1996년부터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선정해온 매경이코노미는 창간 40주년과 2000호 발간을 맞아 ‘매경 베스트 애널리스트 명예의 전당’을 신설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수년간 활약하고 리서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의 공로를 인정하기 위해서다.

현역 애널리스트의 귀감이 될 첫 명예의 전당 주인공으로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투자상품본부장 등 4명이 선정됐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9·11 테러 전후 주가 맞힌 ‘족집게’

김영익 교수는 1988년 말 대신증권에 입사한 뒤 이듬해 리서치에 입문했다. 이후 2010년까지 21년간 리서치 업계에 몸담으며 ‘족집게 분석가’로 이름을 날렸다. 2000년 IT 거품으로 인한 주가 급락, 2001년 9·11 테러 직전 주가 폭락과 이후 반등을 누구보다 빨리 예측하는 등 남보다 한발 앞선 보고서를 잇따라 발표했다. 이로 인해 시장 흐름을 가장 잘 파악하는 애널리스트라고 평가받았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글로벌 증시를 모니터링하고 국내외 뉴스, 연구기관과 정부기관에서 발행하는 보고서 등을 꼼꼼히 챙겨본 덕분이라고. 이력도 화려하다. 대신증권과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등 요직을 거쳤다.

김영익 교수가 처음부터 애널리스트가 되기를 희망했던 것은 아니다. 녹록지 않았던 가정 형편에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으로 증권사 입사를 선택했다. 회사에 합류한 뒤 우연히 배치받은 부서가 리서치센터였다.

“처음에는 리서치센터가 어떤 업무를 하는 곳인지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런데 배치를 받고 나서 근무를 하다 보니 적성에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자기 이름을 걸고 작품(보고서)을 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실력에 따라 평가받고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김 교수는 2010년 자문사로 자리를 옮겨 3년가량 근무했다. 2015년부터는 서강대 경제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인재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리서치센터에서 거시경제, 투자 전략 등을 담당한 경험을 살려 실용성 있는 강의를 하는 데 주력합니다. 경제학 원리를 현실에 접목시키는 방법, 거시경제지표를 통해 경제 흐름을 파악하는 법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이론 위주 학문라는 인식을 떨쳐내고 싶습니다.”

김한진 KTB證 수석연구위원

▶33년 현역 여의도 터줏대감

김한진 수석연구위원은 여의도 최고령 이코노미스트(거시경제분석가)다. 5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김한진 수석연구위원이 리서치 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1986년, 신영증권에 입사하면서다. 이후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삼성자산운용 리서치본부장,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 등을 두루 거쳤다. 이후 2013년 KTB투자증권에 수석연구위원으로 합류하며 현장에 복귀했다.

강산이 세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 동안 증권업계에 몸담으며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굵직한 경제 이슈를 몸소 겪어 여의도 터줏대감이라 불린다. 매경이코노미 베스트 애널리스트 평가 거시경제(이코노미스트) 부문에서도 여러 차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평가에서도 자산배분 부문 3위를 차지했다. 김한진 수석연구위원은 리서치 업계에서 보낸 시간 중 IMF 금융위기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당시 시장 상황은 굉장히 암울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2000원까지 치솟았고 코스피지수는 한때 300 밑으로 내려가기까지 했지요. 외국 증권사 애널리스트 대다수가 한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바라봤어요. 하지만 한국 경제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환율이 다시 1000원대로 내려오고 코스피지수도 1000을 돌파할 것이라는 의견을 꿋꿋이 냈습니다. 한국 증시가 실제로 반등하고 경제가 부활했을 때 남다른 쾌감을 느꼈지요.”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글로벌 리서치다. 해외 투자에 관심을 갖는 국내 투자자가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국내 기업, 산업을 분석할 때에도 글로벌 시장을 같이 들여다봐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신흥국과 선진국 경기를 움직이는 주요 요소가 무엇인지, 이들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한국 경제와 증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연구 결과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

▶신입사원 공채로 입사해 대표이사까지

홍성국 대표는 증권업계에서 전설이라 불린다. 1986년 신입사원 공채로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에 입사해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그럴 법도 하다. 공채 출신이 CEO 자리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다. 이직이 잦은 증권업계에서 30년간 회사를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는 점 역시 눈길을 끈다.

홍성국 대표는 대우증권 리서치 역량을 업계 최고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대우증권이 ‘리서치사관학교’라는 별명을 얻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례로 매경이코노미 베스트 애널리스트 평가에서 종합순위 3위에 머물렀던 대우증권 리서치하우스를 2006년 센터장 취임 직후 1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홀세일사업본부, 미래설계연구소 등을 거쳤다. 2012년 리서치센터장으로 복귀해서도 15위였던 종합순위를 1년 만에 4위까지 끌어올렸다. 2014년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홍 대표는 승승장구할 수 있던 비결로 성실함을 꼽는다.

“하루에 14시간씩 근무하고 주말에도 출근을 했습니다. 회사에서도 비용 걱정 없이 리서치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예산을 전폭 지원하고 애널리스트 교육에도 아낌없이 투자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줬어요. 그 덕분에 꾸준히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2016년 말 제2의 인생을 위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홍 대표는 현재 혜안리서치 대표로 재직 중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미래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곳이다. 이 밖에 CEO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책을 쓰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준재 한투證 투자상품본부장

▶‘매도’ 보고서 내는 소신 애널리스트

‘소신 있는 애널리스트’.

이준재 투자상품본부장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 별명이다. 매수를 권하는 리포트가 대부분인 리서치 업계에서 매도 의견을 내놔 붙은 수식어다. 이준재 본부장은 2003년 카드 대란을 예측해 유명해졌다. 2002년부터 정부 카드 산업 관련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부정적인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신용카드 업계 입원수속 중’ ‘연체율 피크 아직 멀었다’ ‘아직 퇴원수속 단계 아니다’ 등 당시 발표한 리포트 제목만 봐도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2003년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며 매각됐고 그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것이 입증됐다.

날카로운 분석 덕분에 매경이코노미 베스트 애널리스트 평가에서도 여러 번 순위권에 들었다. 2003년 하반기부터 2008년 하반기까지 11회 연속 은행 부문 1위를 차지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 가지 분야를 심도 있게 파고드는 일이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됐지요. 기업 눈치를 보지 않고 데이터에 기반한, 소신 있는 의견을 꾸준히 낸 것도 좋은 평가를 받은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준재 본부장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근무한 뒤 법인영업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12월에는 투자상품본부장으로 선임됐다.

“회사와 고객 모두에게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상품을 적시에 공급하겠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한국투자증권 운용자산(AUM)이 매년 2조원가량 늘어나는데 연 AUM 증가액을 5조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1호 (2019.01.09~2019.0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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