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2대 2대 1' 대한민국 경찰의 안배 문화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 전경 /사진=뉴스1

경찰청장 인사 때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경기도 출신 청장의 탄생 여부였다. 직전 이철성 청장이 1991년 경찰청 출범 이래 첫 경기도 출신 청장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혹자들은 이 전 청장의 부친이 호남 사람이란 점을 들어 범호남계로 보기도 한다.

유독 경찰 조직은 고위직의 출신 지역에 민감하다. 지금껏 경찰청장은 21명 중 12명이 영남 출신이었다. 뚜렷한 지역구도 위에 운명이 갈렸던 정치권력의 틈바구니 속에 이도저도(?) 아닌 경기도 출신 청장이 귀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호남 출신 청장도 흔치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 2명에 이어 현 민갑룡 청장이 역대 3번째 호남 출신 청장이다.

흥미로운 건 형식적 균형은 절묘하게 맞춘다는 점이다. 경무관 이상 지휘부 인사에서는 입직경로(경찰대, 간부후보생, 사시, 일반 공채 등 출신별 분류)와 함께 지역안배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현재 치안정감 이상 7명의 출신은 영남 2명, 호남 2명, 충청 2명, 강원 1명이다. 매년 이 비율은 비슷하게 유지된다. 지휘부 각 계급 승진 때마다 영남, 호남, 충청, 서울 경기, 강원 제주 등 출신지에 따라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조정하는 까닭이다.


독특한 인사문화다. 국정원, 검찰, 국세청 등 다른 사정기관도 경찰만큼 고위직의 지역별 안배를 따지지는 않는다. 다른 정부부처 고위직 인사에서도 출신 지역을 고려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 정도가 업무 특성상 일종의 지역별 쿼터제처럼 운영하지만 부처 전체가 이렇게 하는 경우는 없다.

지역 ‘안배’라는 취지는 그럴 듯하나 부작용이 적잖다. 사실상 지역별로 승진자 숫자가 묶이다 보니 고위직 인사는 영남은 영남끼리, 호남은 호남끼리, 충청은 충청끼리 경쟁하는 모양새다. 자칫 특정 지역에 경쟁자가 몰리면 능력은 충분해도 안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관운(官運)이라 여기만 그만일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난 연말 치안감 승진 인사 당일 벌어졌던 사상 초유의 항명사태도 개인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같은 인사 관행과 무관치 않았다.

숫자만 적당히 맞출 뿐 실질적인 균형과 별개라는 점도 문제다. 역대 경찰 수장의 출신 지역에서 보듯 정권에 따라 주요 보직에서는 차이가 난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 들어 치안정감 이상 TK(대구경북) 출신 승진자가 딱 한명 나오긴 했지만 주요 지방경찰청장 등 핵심 보직에는 아무도 없다.

지난 정권 유력 실세와 고교 동문이었던 한 경찰 간부는 사석에서 “덕 본 건 하나도 없는데 정권 바뀌어 괜히 피해나 보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뼈있는 농을 건넸다.

사실 지역 안배 논리는 간단하다. 전국 방방곡곡 15만명 경찰력을 지휘할 힘을 특정 지역 출신에 몰아주면 안 된다는 명분이다. 적어도 모양새는 균형을 맞춰 놓을 필요가 있었다. 권력이 경찰력을 활용할 때 지휘부의 고른 출신 지역은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요인이다. 지역 안배에 집착하면서도 실제론 정권의 지역 기반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순이다.

그러나 경찰이 힘을 휘두르던 시대는 점점 지나고 있다. 피의자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세상이다. 당연시 되던 민간인 사찰이 중요 범죄가 된다. 바뀐 세상은 새로운 경찰을 원한다. 공인된 폭력으로서의 힘이 아닌,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의 권위가 필요한 때다.

경찰이 제 역할을 하고 그래서 권위가 바로 선다면 소위 지역 안배 문화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엄정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하고 시민들이 이를 인정한다면 굳이 억지스럽게 지역에 따라 나눌 필요가 뭐 있겠나. 그런 날이 언젠가 오길, 새해가 그런 변화를 앞당기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