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회 박사 “굶주린 아프리카, 당장 먹을 감자와 함께 재배법 전수도 중요”

윤희일 선임기자

케냐에 ‘한국형 농업기술’ 알린 김충회 박사

김충회 전 케냐코피아센터 소장이 지난 5일 대전 유성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김충회 전 케냐코피아센터 소장이 지난 5일 대전 유성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희일 선임기자

정년퇴임 후 저개발국 기아 관심
현지에 농장 조성 발벗고 나서
감자 생산량 늘고 양계소득 ‘껑충’
5년 만에 기적…‘아버지’로 지칭

“지금도 굶주리고 있을 아프리카 아이들이 눈에 밟혀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당장 먹을 감자를 주는 것도 시급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감자를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5년 반 동안 일해온 케냐에서 지난해 12월31일 귀국한 케냐코피아(KOPIA)센터 김충회 전 소장(70·식물보건학 박사)은 아직도 아프리카를 잊지 못하고 있다. ‘코피아(KOPIA, Korea Program on International Agriculture)’는 농촌진흥청이 하고 있는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을 말한다.

농진청은 케냐 등 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 지역 21개 개발도상국가에 ‘코피아센터’를 설치하고 국내 농업기술전문가를 파견해 각 나라에 적합한 농업기술을 개발·보급하고 있다.

김충회 전 케냐코피아센터 소장이 지난해 여름 케냐 카뎅와초등학교 스쿨팜(학교 농장)에서 현지 학생들에게 농업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김충회 전 케냐코피아센터 소장이 지난해 여름 케냐 카뎅와초등학교 스쿨팜(학교 농장)에서 현지 학생들에게 농업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지난 5일 대전 유성구에서 만난 김 소장은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코피아 프로그램은 세계 어느 나라도 시도한 적이 없는 한국형 지원 모델로 현지 기여도와 반응은 단연 최고”라고 말했다. 코피아 프로그램은 우리 농업기술자들이 현지에 시험농장을 조성하고 현지 기술진, 주민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게 특징이다.

김 전 소장이 케냐코피아센터 소장으로 부임한 것은 평생 일해온 농진청을 정년퇴임하고 나서도 몇년이 지난 2013년 7월이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던 케냐 사람들에게 그는 “모든 것을 바꿔보자”고 외쳤다. 감자를 재배하는 시범마을을 조성한 뒤 질병에 강한 씨감자를 보급하고 재배기술과 저장기술을 전수했다. 이후 5년 동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범마을 주민들의 감자 생산량이 조성 이전 ㏊당 3.2t에서 9.2t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케냐에서 양계는 가장 큰 소득원이지만 닭의 폐사율이 80%에 이를 정도로 양계기술은 뒤떨어져 있었다. 김 전 소장은 병에 강하고 생산성이 높은 품종을 보급하고 백신을 접종해 병을 막는 법을 가르쳤다. 이후 폐사율이 12%대로 떨어졌고, 소득은 무려 9배나 높아졌다. 김 전 소장은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것도 힘에 겨워하던 주민들은 가구당 매월 평균 28달러씩 저축까지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일부 주민들은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김 전 소장을 ‘돈을 벌게 해준 아버지’라고까지 불렀다.

‘스쿨팜’으로 젊은 인재 육성 주력
“남은 인생, 농사 짓는 법 전할 것”

김 전 소장이 특별히 힘을 쏟은 것은 아프리카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농업인재를 키우는 것이었다. 케냐코피아센터 인근 초등학교에 1㏊ 규모의 스쿨팜(학교농장)을 조성한 그는 6·7학년(우리나라의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에게 농업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결과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우선 학생들의 출석률이 높아졌다. 학교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집으로 가져가 가족까지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하게 되자 아이들이 더 열심히 학교에 나오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케냐의 젊은이들이 농업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김 전 소장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스쿨팜’ 프로그램은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의 지속가능한 농업을 창출할 수 있는 지원프로그램의 모델로 인식되면서 몇몇 국제기구의 연구대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서울대 농대를 나와 덴마크·미국·일본 등에서 국제적인 수준의 농업기술을 연구해온 그가 최장기 코피아센터소장으로 일하면서 아프리카의 기아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귀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문화계 인사들이 그의 삶을 다룬 책과 만화 저술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손을 가로로 내저었다.

“아이구, 저는 그냥 다시 아프리카로 가고 싶습니다. 지금 아프리카의 17개 나라가 코피아센터 설치를 원하고 있거든요. 1인당 국민소득(GDP)이 5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빈국에 가서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아프리카지역 코피아센터의 거점도 만들고, 우리 정부가 케냐 남부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코촐리아 수자원 개발사업도 돕고 싶고요.”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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