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찬노숙 중인 노동인권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제 하루하루가 신기록이다. ‘고공농성 408일’, 3년 전 사측으로부터 고용, 단체협약과 노동조합 승계를 약속받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자 다시 더 높은 굴뚝으로 올라갔다. 더 이상 동료의 기록이 경신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차디찬 굴뚝에서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는 두 노동자는 이제 매일매일 슬픈 역사를 남기고 있다. 그곳은 날아다니는 새들이 둥지를 틀고 쉬어가는 곳이다. 새들에게는 낙원일지 모르지만 사람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돌아누울 수조차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풍찬노숙 중이다. 기록적인 폭염을 견뎌내고 칼바람의 혹한과 맞서며 좁디좁은 굴뚝 난간에서 또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태훈의 법과 사회]풍찬노숙 중인 노동인권

누가 이들을 하늘로 오르게 했는가. 이 땅이 노동자를 보듬지 못하고 법과 제도가 자신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자 내몰리듯 높은 곳으로 밀려 오른 것이다. 굴뚝, 타워크레인, 광고 전광판, 이 땅에서 희망을 잃은 노동자들이 오르는 단골 장소다. 2명의 파인텍 노동자들은 3년 전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하늘에 올랐다”는 그의 동료처럼 또 수십미터의 굴뚝으로 올라갔다. 기네스북에 기록을 남겨 영웅이 되려고 75m 상공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노동인권을 살려보려고 올라간 것이다. 그곳에서 소외받고 버려진 약자들이 목숨을 담보로 버티고 있다. 차디찬 겨울을 두 번 맞을 때까지.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약속을 지키라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한뎃잠을 잔 지 400일이 넘자 비로소 응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정치권과 언론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땅에서는 그들을 살려내기 위한 동조 단식으로 연대하는 이들도 있다. 다행히 노사의 교섭이 시작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진전은 없다. 고용주의 인식이 아직도 3년 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노동자들에게 고용주는 “굴뚝에 올라가면 영웅인가?”라는 야만의 언사도 주저하지 않았다. “농성하는 사람들에게만 인권이 있나. 합법적으로 기업 하는 나도 너무 힘들어서 이 나라에서 살고 싶지가 않다. 이 나라가 법치국가가 맞나”라고 항변도 한다. 이들에게는 욕심 이외의 감정은 없는 모양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뼈만 남은 자신의 옛 직원에게 할 소리인지 매정하기만 하다.

사측은 3년 전 약속이행으로 책임질 일 없다는 주장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때의 약속이행은 불완전 이행이다. 노사합의는 약속이자 법인데 사측은 이를 이행하는 척만 했다. 현재의 파인텍을 세워 노동자의 일터를 만들어 주었지만 임금협상을 차일피일 미뤘고, 복귀한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월급만 주고 수당 등을 받을 수 있는 일감은 거의 주지 않았다. 결국 반발한 노조가 파업하자 사측은 공장을 폐쇄하고 새 사업체를 입주시켰다. 책임을 노조 쪽으로 미뤄버린 것이다. 지난 연말께부터 4차례 노사가 마주 앉았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빈손이다. 3년 전 불완전 합의이행을 경험한 노조 측이 기존 합의사항을 지키라며 합의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을 진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사측은 요지부동이다.

이게 우리 노동인권의 현주소다. 위험천만한 굴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바람에 자칫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곳만이 아니다. 발전소 석탄 컨베이어벨트에 위태롭게 누워 있기도 하고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끼여 있기도 하다. 부당해고, 농성과 단식, 자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우리의 노동인권의 현주소다. 생명을 걸어야만 겨우 해결되는 수준이어서 노동자의 생명이 존중되지 못하고 수단화되는 현실이다. 작년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이하여 기업들이 너도나도 인권경영을 선언하지만 노동인권은 입에서만 맴돈다. 말과 행동이 각각이고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논다.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경영이 인권경영이다. 노동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 노동자와 사용자가 공생하는 것이 바로 기업인권의 핵심이다. 인권 감수성을 가진 기업문화가 정착해야 기업의 경쟁력도 커지고 지속적인 성장도 가능해진다. 기업 활동에서의 인권침해는 기업경영의 리스크다.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는 해외 거래처가 많다고 한다. 이들에게 반인권적인 회사 대표의 언행이 알려진다면 기업경영에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 작은 것 때문에 더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물론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까지도. 엊그제 굴뚝 위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는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람을 살리고 보는 노사교섭이 절실하다.

<히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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