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서비스 불만 3종 세트

이명희 전국사회부

“어디? 아이~ 어떻게 가라는 거야.”

짜증 섞인 목소리로 기사는 한숨을 내뱉었다. 기분이 상했지만, 어차피 자정이 지난 시간에 택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지라 애써 모른 척했다.

“반대편에서 타야지. 방향도 안 맞는데….” 기사는 백미러로 힐끔거리며 연신 투덜댔다.

“근데 왜 계속 반말이세요?”

“내가 언제? 이게 무슨 반말이야.”

[기자칼럼]택시서비스 불만 3종 세트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결국, 세종대로 한가운데서 차를 세웠다. 호기를 부렸지만 정작 택시에서 내려서는 행여 뒤따라올까 다급히 걷는 바람에 눈길에 두 번이나 미끄러졌다. 빈 택시를 다시 잡은 건 30여분을 걷다가 집 근방에 다다라서였다.

일진 사나운 날이었다. 갑자기 내린 눈에, 낭만을 핑계로 길어진 술자리를 탓할 수밖에. 다음날 귀가 후일담을 듣던 후배의 “선배, 녹음했어야죠”라는 말에 ‘아차’ 했지만, 차량번호도 모르니 부아가 치밀어도 도리가 없었다.

사실, 택시 승차거부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승차거부 말고도 택시를 타려면 거쳐야 할 난관은 더 있다. 택시 잡기에 성공해도, 말 걸기 좋아하는 기사를 만나면 ‘폭풍 수다’를 꼼짝없이 견뎌야 한다. 괜히 한마디 거들었다간 궁금하지도 않은 인생 풀스토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기사들의 레퍼토리는 세 갈래다. 개인사나 정치 이야기, 오지랖 넓은 기사라도 만나면 어느 직장에 다니냐, 애들은 있느냐, 끝없는 ‘신상 캐기’가 이어진다. 아마도 일본 교토에서 택시기사가 손님에게 먼저 말 걸지 않는 ‘침묵 택시’가 등장한 것도 택시기사에게 맞장구치는 게 귀찮은 손님의 마음을 대변한 것일 게다. 내 돈 내고 취향과는 상관없는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일도 고역이다. 진이 빠진 퇴근길엔 제발 좀 조용히 가고 싶지만, 음악 소리를 줄여달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져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 일쑤다.

이를테면 ‘승차거부’ ‘말 걸기’ ‘음악 틀기’는 ‘택시서비스 불만 3종 세트’쯤 된다고 해야겠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불만은 단연 승차거부다. 카카오택시 등장에도 승차거부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서울시는 승차거부하다 적발된 택시 운행을 두 달 정지하기로 했다. 서울시의 이 같은 강경 방침에도 승차거부는 줄지 않는다.

승차거부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대중교통이 끊어진 심야시간대 운행하는 택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사들의 처우가 열악하니 운전할 사람이 없어 법인택시 절반은 차고지에 세워져 있고, 개인택시 기사들은 고령자가 대부분이라 이 시간에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 기사들은 사납금 때문에 장거리 위주의 승객 골라 태우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정부가 법인택시의 사납금 폐지·완전 월급제를 도입하고, 고령자의 개인택시 면허를 매입해 연금 형태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택시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모두 달라 합의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카풀’, 승차공유 서비스다. 택시업계는 거세게 반발한다.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카카오 같은 대기업의 카풀시장 진출은 밥그릇을 뺏는 위협으로 다가오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나 심야에 택시를 잡지 못해 애태운 기억이 한번쯤 있는 시민이라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감사합니다”를 기분 좋게 외치고, 어르신을 위해 오르막길도 마다하지 않는 기사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아름다운 기억보다는 불편한 기억이 조금 더 많을 뿐이다. 이달 내로 서울시내 택시 기본요금이 3800원으로 오른다. 서울시는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과 사납금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택시서비스가 좋아지려면 택시기사의 생계 안정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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