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떤 방학이 되길 바라니?”

조춘애 광명고 교사

멘델 이후, 유전자는 기다란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돌연변이는 단지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 유전학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여성 생물학자였던 바버라 매클린톡은 오랜 옥수수 관찰 끝에 유전자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튕겨져 나와 서로 자리를 바꾼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현대 유전학의 지도를 바꿔놓았고 그는 1983년 생리의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았다.

[학교의 안과 밖]“너는 어떤 방학이 되길 바라니?”

매클린톡은 옥수수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말을 걸었으며 옥수수들이 자신의 숨은 비밀을 말해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염색체는 점점 더 크게 보였고 어느 순간 자신이 염색체 밖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 물질이 당신에게 건네는 말을 이해하려는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스스로 당신에게 다가오도록 자신을 개방해야 합니다.”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점점 그것 자체가 되어가는 사랑의 과정이라는 것, 이것이 그가 유전자의 비밀을 알 수 있었던 비결이다.

아이들이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 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어떻게 하면 겨울방학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따뜻한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을까? 문제는 우리가 매클린톡처럼 자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들이 건네는 말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기다릴 인내심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이라는 괴물이 쉬지 않고 우리를 쫓아오고 있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계속 내달리게 된다. 괴물은 뒤에서 계속 부모들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네 아이가 이름도 없는 대학에 가게 되면 어떡할래? 네 아이가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면 어떡할래? 네가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없으면 어떡할래?’ 이제 부모들이 괴물이 되어서 아이들을 쫓는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서 아이들을 통제하고 불안한 마음에 때로는 협박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점핑하는 유전자’처럼 부모로부터 튕겨 나가 자기 방식대로 삶의 공간을 찾아든다. 그 공간에서 부모를 욕하고 사살하는 패드립 놀이를 하다가 학폭(학교폭력)으로 신고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또다시 아이들을 훈계해야 할까?

안타까운 점은 아이를 다그치고 고쳐놓으려 할수록 아이의 내면은 계속 망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두려움의 타이머를 잠시 꺼두는 것이다. 조금 떨어져서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서로에게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허용해보면 어떨까? 아이가 말을 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거나 호응해보자. 매클린톡처럼 이제 어른들의 말하기를 멈추고 그 대신 아이가 말할 수 있도록 시간을 양보해보자.

“너는 어때? 너는 어떤 방학이 되길 원해? 엄마 아빠가 어떨 때 도와주면 좋겠어?”라고 말이다. 아이는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로 겨우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를 향한 따뜻한 호기심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아이는 조금씩 세상 밖으로 자신을 내보여 줄 것이다. 이제 아이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믿는 힘이 생기게 된다. 방학 동안 그런 힘이 자라나서 개학 날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든든하고 환한 마음으로 새 학년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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