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옛 해전 장면을 보면 갑판 아래서 북소리에 맞춰 노꾼들이 팔이 빠져라 노를 젓습니다. 둥당둥당 빠르기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고, 둥둥둥 당당당 소리에 맞춰 어느 한쪽 더 저어서 배를 돌립니다. 격군(格軍) 여럿이라도 고수(敲手)는 하나여야 전선(戰船)을 민활하게 움직이지요. 너나없이 고수이고 엇박자면 배는 산으로 갑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누구나 아는 속담입니다. “에이, 설마 배가 산으로 가겠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웃어넘기지만, 배에서 내리기 힘든 곳이면 거기가 바로 산입니다. 사공(沙工)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모래톱같이 경사가 거의 없는 곳이어야 뱃머리나 뱃전을 대고 정박과 승하선하기 쉽습니다. 뱃전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둔치면 배가 출렁거려 타고 내리기 어렵지요. 그런데 어린이용 속담 책을 보면 죄다 여럿이 우왕좌왕 노 젓느라 배가 산으로 오르는 모습으로 그려놨더군요. 그건 사공이 아니라 노꾼입니다. 사공은 삿대로 강바닥을 밀거나, 노를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처럼 지국총지국총 저어야 하니 고물(선미)에 서야 옳습니다. 물의 저항을 적게 받으려 배 폭까지 좁으니 사공은 많아야 둘이서 노를 맞잡게 되지요.

그럼에도 사공이 많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그건 입만 산 ‘입사공’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에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리 하는 게 아니지.” “거참, 이렇게 이렇게 좀 해보라고.” 듣다듣다 열 뻗친 사공은 젓던 거 팽개치고 뱃머리 가서 삿대질합니다. “그럼 잘나신 댁들이 해보시든가!” 입사공들이 막상 해보니 자신이 알던 그 물살, 그 노, 그 배가 아닙니다. 우왕좌왕 떠내려가던 배는 결국 어느 둔치, 못 내릴 산에 닿고 맙니다. 일단 맡겼으면 실무자가 사공입니다. 한배 탔다, 서툴다, 못 미덥다, 바로 관여하고 나서면 ‘입사공 존문가’라며 실무진이 삿대 던집니다. 기다림은 미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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