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가장 먹음직스러운 건 몇 번 서체? 각자 경험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뇌 속에서 의미와 맥락이 연쇄반응, 인간은 그림에서 이야기를 읽는다

김상욱·유지원

이야기

여덟 종류의 글자체. 1. 쿠퍼 블랙(Cooper Black) 2. 푸투라(Futura) 3. 타르틴 스크립트(FF Tartine Script) 4. 스넬 라운드핸드(Snell Roundhand) 5. 헬베티카(Helvetica) 6. 쿼드랏(FF Quadraat) 7. 바우하우스(Bauhaus) 8. 미스터 K(FF Mister K)

여덟 종류의 글자체. 1. 쿠퍼 블랙(Cooper Black) 2. 푸투라(Futura) 3. 타르틴 스크립트(FF Tartine Script) 4. 스넬 라운드핸드(Snell Roundhand) 5. 헬베티카(Helvetica) 6. 쿼드랏(FF Quadraat) 7. 바우하우스(Bauhaus) 8. 미스터 K(FF Mister K)

■글자의 생김새를 보는 당신과 나의 이야기

나는 사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잠깐, 위의 그림 속 여덟 종 글자체들을 바라보며 다음 질문들에 대한 답을 떠올려 보셨으면 한다. 몇 번이 가장 맛있어 보이는지, 몇 번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빵과 마멀레이드와 쿠키와 초콜릿에는 각각 어떤 글자체가 어울려 보이는지.

어떤 답을 하든, 당신은 옳다. 각자의 답은 개인 경험에 따라 차이가 난다. 나는 글자의 생김새를 보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식이나 정보보다는 당신의 마음이 궁금하다. 저 글자체들이 당신 눈의 망막을 거쳐, 시(視)지각을 전담하는 대뇌피질에서 어떤 경험과 학습의 맥락에 상호작용해 어떤 ‘인상’을 창출하는지, 당신 마음의 작용이 궁금하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차이’가, 글자의 생김새에서 떠올리는 우리 이야기들의 ‘불일치’가 궁금하다.

당신은 어떤 답을 하든 옳다
지식·정보보다 마음의 작용이
우리의 ‘불일치’가 궁금할 뿐

글자 생김새는 그림적 속성
인간의 뇌는 이야기로 변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아는 만큼 안 보이기도 한다
알게 된 후엔 돌이킬 수 없어

나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당신의 이야기는 달라질 것

그림은 이야기다. 인간이 본다는 것은 대상으로부터 시각 정보를 분류하고 해석하는 일이다. 감각 기관이 시각 자극을 수용하면, 우리의 뇌는 특정한 환경과 맥락 속에서 대상의 형태와 색을 이야기로 ‘창작’해낸다. 그 이야기가 창출한 인상이 각자에게 감정을 일으킨다.

타이포그래피는 불가피하게 텍스트를 해석한다. 글자의 그림적 속성인 생김새의 층위 역시 인간의 뇌에서 이야기로 변환된다는 뜻이다. 글자의 모양이 생성되는 기제는 ‘객관’적인 사실로써 기술될 수 있다. 한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인상은 ‘상호 주관’성을 가지므로 통계적 양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개인 성향에 따른 반응의 차이는 ‘주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주관의 영역에서 이제 글자 이야기는 글자를 보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타당한 통찰이다. 그런데 알게 된다는 것은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어서 알기 전과는 나의 의식이 비가역적으로 달라진다. 그러면 이야기도 달라진다. 그래서 ‘아는 만큼 안 보이’기도 한다. 아래부터는 ‘나의 이야기’다.

비슷한 전공지식을 공유하는 시각디자인 전공자들은 대체로 1번 쿠퍼 블랙(Cooper Black)을 보면 둥글고 부드러우며 푹신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것은 전공 내부의 합의에 개인의 견해가 유도된 것일 수도 있다.

교육은 부득이하게 그 집단의 시각에 개입한다. 디자인 비전공자에게 1번과 2번 중 어느 쪽이 맛있어 보이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2번 푸투라(Futura)는 대문자 M의 모서리가 뾰족해서 먹으면 아플 것 같은데도 이쪽을 택한 이가 있어 이유를 물어보았다. 1번은 ‘두꺼워서 소화가 안될 것 같다’는 답변에 깜짝 놀랐고, 재미있었다.

3번 같은 브러시 필기 기반 글자체 스타일은 프랑스에서 선호된다. 이 타르틴 스크립트(FF Tartine Script)체 역시 프랑스 폰트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이런 브러시 폰트를 보면 나는 프랑스 시골 빵집의 간판이 떠오른다. 잼이나 마멀레이드를 푸짐하게 담은 병의 라벨에 딱 어울리지 않을까? 4번 스넬 라운드핸드(Snell Roundhand)는 브러시보다 뾰족한 펜으로 쓴 필기체 폰트다. 섬세한 펜 끝으로 쓴 명필가의 솜씨가 명품 초콜릿을 장식하는 장인의 정교한 손끝을 연상시킨다.

빵집의 간판에 쓰기에는, 5번보다 6번이 맛있어 보인다. 5번은 어쨌든 정직한 빵집일 것 같긴 하다. 헬베티카(Helvetica)니까. 신뢰를 주는 인상과 맛있는 인상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잘 헤아려보자. 6번 쿼드랏(FF Quadraat)체가 더 맛있는 빵처럼 여겨진다면 획의 울룩불룩한 콘트라스트가 촉촉하고 바삭해 보여서다. 이런 시각으로 5번을 보면 빵이 말라서 딱딱해진 것 같다.

나는 6번 쿼드랏체를 보면 거스 히딩크 감독이 떠오른다. 너무 개인적인 연상인가. 네덜란드 사람인 프레드 스메이여르스가 디자인한 폰트다. 아인트호벤에서 오래 일했다고 하길래, 혹시 히딩크 아느냐고 물어봤다. 모른단다. 축구감독이랬더니 축구 싫어한단다. 나도 축구는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인기가 많다고 했더니 “원래 이기면 다 좋아해”라고 대꾸한다. 히딩크는 모른다면서 이겼는지는 어떻게 알았지? 그러고 보면 우리는 사실 히딩크의 활약을 먼저 좋아했지만, 우리의 의식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끌어들여 우리의 기쁨을 더 온당하게 만든 것이다. 폰트랑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스메이여르스의 폰트를 보면 호불호와 용처가 분명하고 민첩하게 핵심에 다가가는 그 특유의 사고방식이 떠오르곤 한다.

7번 바우하우스(Bauhaus) 폰트는 문제적인 사례다. 디자인 역사를 공부한 디자이너라면 이 폰트의 생김새만으로 이름이 ‘바우하우스’인 줄 알아본다. 이 이름은 모더니즘 디자인의 이성적인 합리성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디자이너가 아닌 많은 분들의 눈에 놀랍게도 이 폰트가 우스꽝스럽게 보인다고 한다. 최소한의 골격만 남기다보니, 뭔가 모자라 보여서일까? 이렇게, 같은 글자에서도 개인마다 마음이 처리하는 이야기는 전혀 상반되게 달라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유심히 여길 필요가 있다. 보편을 환기하는 것도 곧 디자이너의 전문성이다.

8번 미스터 K(FF Mister K)체. 이번엔 조용히 들어보고 싶다. 궁금하다. 당신의 마음에 글자체의 생김새가 어떤 이야기를 일으키는지.

한 가지 단서. ‘미스터 K’는 프란츠 카프카씨다. 어떤가? 조금 전과는 이야기가 다소 달라져 보이지 않는가?

▶유지원

[김상욱·유지원의 뉴턴의 아틀리에](13)가장 먹음직스러운 건 몇 번 서체? 각자 경험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뇌 속에서 의미와 맥락이 연쇄반응, 인간은 그림에서 이야기를 읽는다

유지원은 타이포그래퍼로 홍익대 겸임교수다. 서울대와 독일 라이프치히 그래픽서적예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타이포그래피를 공부했다. 전시, 북디자인, 저술과 번역을 하고 있다.


피터르 브뤼헐의 ‘영아 살해’(1565~1567).

피터르 브뤼헐의 ‘영아 살해’(1565~1567).

■인간의 뇌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하다

1567년 8월 알바공이 브뤼셀에 입성했다. 브뤼셀은 스페인이 지배하는 네덜란드 도시였다. 당시 유럽에는 종교개혁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는데, 네덜란드의 개신교도들이 가톨릭교회의 성상(聖像)을 파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가톨릭 신봉자였던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에게 반란이나 다름없었다. 응징을 위해 파견된 알바공은 개신교도들에게 개종을 강요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다.

알바공의 입성 1년 전인 1566년 브뤼셀에 살았던 대(大) 피터르 브뤼헐은 ‘영아 살해’라는 그림을 완성한다. 성서에 따르면, 유대의 헤롯왕은 태어난 아기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유대의 왕이 될 사람이 태어날 거라는 예언 때문이었다. 영아 살해는 중세 종교화의 흔한 주제였지만, 막상 이 그림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선 배경이 사막의 유다이아가 아니라 눈 덮인 플랑드르다. 스페인군과 독일 용병 복장의 군인들이 아기를 살해하고, 이들을 지휘하는 검은 옷의 장교는 알바공처럼 길고 흰 수염을 가졌다. 오늘날 우리는 브뤼헐의 종교나 정치성향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이 그림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이유는 충분하다.

그림은 이야기다. 우리는 그림을 볼 때 평면에 펼쳐진 도형의 집합을 보는 것이 아니다. 도형이 내포한 의미와 그 의미들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의미를 본다. 의미와 새로운 의미들의 관계는 맥락을 생성하고, 맥락은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없던 의미를 추가로 만들어 낸다. ‘영아 살해’는 사람과 집이라는 구성요소의 집합이다. 이들이 모여 성서 속의 익숙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영아 살해의 현장이 눈 덮인 서유럽의 마을이라는 사실이 새로운 의미를 추가한다. 여기에 종교개혁과 알바공이란 맥락이 더해지면 또다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다. 이렇게 그림은 의미의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드는 종(種)이다. 의미를 만드는 종이라고 해도 좋다. 배우가 훌륭하고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라도 스토리가 시원치 않으면 흥행에 성공하기 힘들다. 손으로 대충 쓱쓱 그린 웹툰도 스토리만 탄탄하면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왜 이야기에 열광하는 걸까? 인간은 이야기 없이는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가 세상 자체를 이야기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1566년 브뤼헐의 ‘영아살해’
1년 뒤 스페인 알바공이
수많은 개신교도들을 처형
성서 속의 유대 헤롯왕은
“태어난 아기 모두 죽여라”

각각의 의미는 상호작용
종교개혁·알바공 맥락 더해져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기도

비트겐슈타인 ‘오리-토끼’
토끼가 오리로 보이는 순간은
뇌에서 이야기를 바꾼 것

우리의 시각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는다. 지금 독자의 눈에는 하나의 화면이 보일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와 망막에 화면처럼 펼쳐지고 이것을 뇌에서 받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상은 간단하지 않다. 시각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미 분석을 시작한다. 풍경을 점들의 집합으로 뇌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의 선, 색깔, 움직임의 정보를 분리해 따로 처리한다.

일차적으로 시각과 관련한 뇌의 피질에서는 특정한 방향을 갖는 선들을 통합해 하나의 윤곽을 만들어간다. 우리가 대상을 인식할 때, 어디까지가 대상이고 어디부터가 배경인지를 나누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현실세계에 사물을 감싸는 윤곽선 따위는 없다. 대상이 끝나는 곳에서 배경이 시작될 뿐이다. 대상이 무엇인지 알아야 끝나는 곳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대상의 윤곽을 알아야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으로부터 알아낼 수 있다. 닭과 달걀의 문제와 비슷하다.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

시각은 인지된 선들의 조합으로 윤곽선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대상의 위치정보와 색깔 등을 통합시키는데, 이들은 각각 뇌의 다른 장소에서 처리된 것이다. 이렇게 얻어진 결과물을 분석해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책상인지, 책상이라면 어디까지 경계로 잡아야 할지, 현재의 색깔은 적합한지, 위치는 모순이 없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과학자가 문제를 풀 때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것과 유사하다. 뇌는 시각정보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그에 따라 대상과 배경, 색깔과 위치 등에 대한 정보를 통합해 하나의 화면을 구축해간다. 마치 전시 작전사령부가 사방에서 들어오는 불확실하고 부분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는 모양보다 색깔을 먼저 지각하며, 누구인지 판단하기 전에 표정부터 처리한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화난 사람이면 피하는 것이 좋으니까 그런 걸까. 우리가 보는 하나의 화면이라는 인식은 사실 창작된 이야기와 같다. 조각조각 흩어지고 쉴 새 없이 분석을 거치고 있는 정보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것을 우리는 의식이라고 부른다. 비트겐슈타인의 ‘오리-토끼’를 보면 생각에 따라 오리나 토끼로 보인다. 토끼로 보이다가 오리로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뇌에서는 인식된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바꾼 것이다.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하다보니,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언어를 창조하고, 언어는 추상적인 의미마저 만들어내고, 결국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종(種)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삶과 예술의 의미에 대한 의문의 답은 우리 뇌 속에 있을 것이다.

▶김상욱

[김상욱·유지원의 뉴턴의 아틀리에](13)가장 먹음직스러운 건 몇 번 서체? 각자 경험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뇌 속에서 의미와 맥락이 연쇄반응, 인간은 그림에서 이야기를 읽는다

김상욱은 물리학자로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다. KAIST를 졸업하고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연구소 연구원을 지냈으며, <김상욱의 양자공부>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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