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레이더 갈등’이 심각한 사안인 이유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개헌 야욕’ 아베의 이슈화도 요인…정부, 일본 주장 문제점 지적한 ‘6개 국어 자막 영상’ 추가 공개

[뉴스분석]한·일 ‘레이더 갈등’이 심각한 사안인 이유

표류 중인 북한 선박을 구조하던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레이더를 조준했다는 일본의 주장으로 야기된 한·일 간 충돌이 심상치 않다. 유튜브를 통한 영상 공개로 양측의 공방이 가열되면서 이번 사안은 정부 간 충돌을 넘어 국제적 여론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국방부는 일본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미 공개한 국문·영문 자막 영상 외에 6개 외국어 자막 영상을 7일 공개했다.

이번 사안은 군사작전을 놓고 빚어진 충돌이라는 점에서 양국관계가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불완전한 과거청산에도 한·일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군사·안보 분야 협력 필요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안보협력 같은 기존 갈등 방지 메커니즘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한·일관계 현주소가 입증된 것이다.

심승섭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광개토대왕함의 소속 부대인 해군 1함대사령부를 방문해 “외국 함정 및 항공기를 조우했을 때 등 어떤 우발상황에도 작전예규와 규정, 국제법에 따라 즉각적으로 대응해 현장에서 작전이 종결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광개토대왕함이 초계기 위협비행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고 질책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일본이 이번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데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전범국가의 오명을 벗어던지고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 보통국가가 되는 것을 필생의 목표로 삼고 평화헌법 개정에 매달려왔다. 아베 정부는 2015년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만들고 전수방위 원칙을 사실상 폐기했다. 2017년에는 구체적인 개헌안을 제시하는 등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 만들기’ 작업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이번 사안이 해결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한·일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무효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양국 간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한·일 군사당국 간 협의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것은 양국 간 신뢰가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양국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세에 있다는 것도 타협을 어렵게 만든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40%대 중반으로 떨어졌고 아베 총리 역시 40%를 유지하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한·일관계에서 양국은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정책을 펴기보다 여론을 따라가는 정책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2012년 8월 지지율 20%의 이명박 정부가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해 반등을 모색하자 역시 20% 지지율에 고전하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정부가 강경하게 맞받아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일관계 악화에 결정타 역할을 한 것이 좋은 예다.

한·일 갈등이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완충 역할을 했던 미국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태 장기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아시아 동맹국인 한·일이, 그것도 안보·방위 문제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역대 미국 행정부와는 달리 매우 빈약한 동아시아 정책을 갖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재는커녕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될 사안이 아니다”라며 “지금의 상황이 길어지면 양국 모두에게 손실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적극 소통으로 위기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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