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세 100년,역사적 주체로 첫 등장한 여학생들…“여자가 왜?” 묻자 “남녀 불문 조선 독립은 기쁜 일”

유정인 기자

모금·연결책 등 중요 임무 수행

일제 신문에도 당당하게 답변

유관순(뒷줄 맨 오른쪽)을 비롯한 이화학당 학생과 교사의 사진. 3·1운동에는 이화학당 등 여학교 학생들이 적극 참여했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유관순(뒷줄 맨 오른쪽)을 비롯한 이화학당 학생과 교사의 사진. 3·1운동에는 이화학당 등 여학교 학생들이 적극 참여했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3·1운동은 ‘여학생’들이 한국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첫 장면이다. 최초의 여학교가 세워진 지 33년째 되던 해, ‘신여성’이라는 말이 회자됐지만 여성이 민족적 거사의 주축으로 인식되지 못했던 때다. 이런 시점에서 여학생들이 나라의 현실을 자각하고, 변화를 꾀하는 운동에 나섬으로써 ‘역사적 주체’로 처음 섰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민족독립운동사 자료집>에 수록된 일제 신문기록에는 여학생들의 신문조서가 다수 실려 있다. 그해 3월1일과 5일 경성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가 붙잡혀 온 정신여학교, 이화학당,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등의 학생들이다. 당시 총독관방에서 작성한 5일 시위에 대한 내용엔 “행렬 중에는 여자고등보통학교 여학생들이 더욱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검거된 자는 100인, 그중에 많은 여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적혀 있다.

여학생들은 신문 과정에서 남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질문들을 받았다. 일제 검경은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학생들의 자발성을 의심하는 질문들을 던졌다. “여자이면서도 이 같은 일에 관계했는데 오늘날 어떻게 생각하는가” “피고는 여자인데도 정치에 관계할 작정인가” “여자이면서 이런 일을 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변들은 당당했다. 노예달(당시 19세·이화학당)은 “최초부터 모든 사람이 자립해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은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며 “남자나 여자를 불문하고 독립이라는 것은 조선인으로서 기쁜 일이므로, 그 독립운동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유점선(17세·이화학당)은 “무슨 일이든 시작이 없으면 끝이 없다. 독립운동의 착수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했다. ‘졸업 후 가정인이 될 생각이 아닌가’라는 일제 질문에도 “전심전력 공부 중에 있으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유점선), “장래 독신생활을 하면서 교육에 종사할 생각”(최정숙)이라고 답했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이임하 연구교수는 “근대여성교육의 목표가 ‘현모양처’이기 때문에 조선 여학생들의 의견 표명은 일제에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당시 여성들이 유인물 전달, 모금, 연결책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신문조서 문답에서도 여성들이 이미 ‘타자’가 아니라 ‘주체’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100년 전 3·1운동, 그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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