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 인생의 내리막길 그 지는 순간의 아름다움

고희진 기자

‘질 것 같은…’ 낸 최승린 작가

최근 소설집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를 낸 작가 최승린. 이상훈 선임기자

최근 소설집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를 낸 작가 최승린. 이상훈 선임기자

최승린 작가(48)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실패하고 좌절한다. 더 높은 산을 더 일찍 오른 사람일수록 더 오랫동안, 더 깊게 하락한다. 비관은 아니다. 작가의 말대로 “누구나 인생에 지기 때문”이다. 최근 소설집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를 낸 작가를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2010년 작고한 시인 최하림의 딸이다. 최승린은 마흔이 넘어 습작을 시작해 뒤늦게 아버지가 걸었던 문학인의 길을 걷고 있다.

작가는 2014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훕’(소설집 수록 제목은 ‘레츠 고, 가자!’)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등단 후 4년 만에 소설 10편을 묶은 첫 소설집을 냈다.

표제작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는 한 자서전 편집자가 스타 메이저리거였던 최민철의 숨겨진 열흘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던 야구선수는 국민 영웅이라는 이름 때문에 미국 리그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 최민철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한국에서 야구를 못하는 이유가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을 위해서라니, 데이비드 박. 그 새끼 참.”

2010년 작고한 최하림 시인 딸로
마흔 넘어 습작 시작해 문학의 길
소설집 공통분모는 ‘하락의 정서’

스타에게도 내리막은 찾아온다. 물론 최민철의 내리막은 아무도 전하지 않는다. 성공은 신문과 TV의 뉴스가 되지만, 실패는 저잣거리의 소문이 될 뿐이다. 소문조차 되지 못하는 삶도 많다. ‘레츠 고, 가자!’의 주인공은 축구 선수였지만, 부상 이후 인터넷TV에서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한다. ‘비탈길의 유령’엔 결혼 직후 암 선고를 받은 남자, ‘가미코지에서의 하루’엔 13세 아들과 죽은 아내의 흔적을 찾아 일본으로 떠난 남자가 등장한다.

실패로 인생의 내리막길 그 지는 순간의 아름다움

소설집의 공통분모를 꼽으라면 ‘하락의 정서’다. 작가는 “최민철이라는 인물은 정말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잊히는 사람이다. 지는 일밖에 없는 삶을 그는 이제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한다”며 “그 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처럼 화려한 정상에 선 경험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실패의 감정과 닮아있다고 했다.

작가는 “2010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겨울날, 길을 걷는데 ‘내가 꿈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 때는 삼십대가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마흔을 넘어서고 ‘내 삶은 정점이랄 게 없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이후 쓴 글에 그 당시의 내 느낌, 실패의 감정이 녹아든 것 같다”고 말했다.

첫 습작인 ‘수유리, 장미원’은 아버지 최하림 시인과 관련된 얘기다. 소설 속에서 ‘시는 기도’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실제 아버지가 한 말이다. 작가는 “아버지가 시인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평생 문학에 대한 얘기 안 하고 살다, 돌아가시던 해 2월에 병상에 계신 아버지께 ‘시가 무엇이냐’고 처음 물었다. 그때 ‘시는 기도’라고 하셨다”며 “그 뜻을 물리적으로는 모르겠는데, 마음으로는 그때도 지금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추리나 판타지 등 장르 소설을 좋아한다. 애거사 크리스티, 미야베 미유키, 어슐러 르귄의 팬이다. 다음 작품은 ‘미디어아트’를 소재로 한 추리물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했다. 작가는 “소설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인생의 여러 사건을 경험하며 인간과 사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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