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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형 애그테크’ 투자 뜬다-IoT·빅데이터·머신러닝…농촌의 재발견

  • 명순영 기자
  • 입력 : 2019.01.07 09:23:16
“2050년이면 세계 인구가 90억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하지만 경작지 면적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식량만큼 위급한 사항이 없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2050년까지 70% 식량 증산이 필요하다”며 절박한 분석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식량 부족 위협이 심각한 가운데 주요 글로벌 기업이 ‘애그테크(AgTech· Agricultural Technology)’ 투자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애그테크는 사물인터넷(loT),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으로 농업 생산력을 키우는 기술을 일컫는다.

2013년 설립된 미국 ‘수직농장’ 스타트업 ‘플렌티(Plenty)’는 최근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전 회장으로부터 2억달러 넘는 투자를 이끌어냈다.

수직농장이란 인공 구조물 안에 농작물을 키우는 고도로 자동화된 아파트형 식물공장이다. 사물인터넷 기술을 이용해 농작물을 재배하는 ‘스마트팜(Smart Farm)’의 대표적인 형태다.

미국 애그테크 기업 ‘플렌티’는 수직농업 기술을 토대로 2억달러 넘는 투자를 이끌어냈다. 사진은 플렌티 홈페이지.

미국 애그테크 기업 ‘플렌티’는 수직농업 기술을 토대로 2억달러 넘는 투자를 이끌어냈다. 사진은 플렌티 홈페이지.

▶순환형 농장 일본 세븐팜

식품 폐기물로 유기농 키워

영국도 도농상생모델 운영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농작물을, 월마트 수준의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게 공급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플렌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5만㎡ 규모의 수직농장을 운영 중이다. 수평 선반을 층층이 쌓아올린 기존 수직농장과 달리 벽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차별화 포인트다. LED 조명이 설치된 6m 높이의 수직 파이프를 이용해 기둥과 내부 벽면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구조다. 물은 기존 농장에 비해 1%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생산량을 350배까지 끌어올리는 기술혁명을 이뤄냈다. 플렌티는 수직농장의 대량생산 가능성을 보여주는 성공 사례로 꼽힌다.

구글벤처스는 2017년 미국 애그테크 기업 ‘파머스비즈니스네트워크(Farmers Business Network·FBN)’에 1500만달러를 투자했다.

지난 2014년 설립된 FBN은 종자, 토양, 데이터 분석으로 농업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 매년 500~600달러를 회비로 낸 회원들은 네트워크 안에서 정보를 교류한다. 미국 내 17개 주로 영역을 넓힌 FBN은 글로벌 대표 애그테크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뿐 아니다. 농업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제약사 바이엘과 듀폰은 애그테크 기업 인수합병(M&A)에 뛰어들어 유전자변형식품(GMO) 시장 장악을 노리고 있다.

아일랜드 국부펀드인 전략투자펀드(ISIF)는 애그테크 펀드에 2000만유로, 글로벌 애그테크 펀드에 2000만유로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아일랜드를 ‘애그테크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주요 글로벌 투자자 관심을 모으며 애그테크 투자 규모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애그테크 스타트업 투자 정보 제공기업 애그펀더에 따르면, 투자액은 2012년 30억달러에서 2017년 101억달러로 증가했다.

일본과 영국에서는 ‘상생형 애그테크’ 투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상생형 애그테크란 농작물 생산량을 늘리는 동시에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형태의 투자를 말한다.

일본 유명 유통기업 ‘이토요카도’가 운영하는 순환형 농업 전용농장 ‘세븐팜’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은 세븐일레븐 점포에서 배출하는 식품 폐기물로 비료를 만든다. 이 비료를 활용해 유기농 생산물을 키워 판매한다. 세븐팜은 일반 농작물 대비 13배가 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연매출 7억2000만엔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농가 신규 일자리 창출은 쏠쏠한 부수적인 효과다.

일본 고향사랑 기부제도 성공적인 제도로 꼽힌다. 일본은 지방 소멸을 막고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2008년부터 ‘후루사토(고향) 사랑 기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도입 11년째를 맞은 고향세는 해를 거듭할수록 납세 실적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고향세는 세금과 기부가 결합한 형태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세금과 다르다. 납세자가 본인이 내야 하는 세금에서 고향세로 낼 세액을 정하고 납부할 지방자치단체를 자유롭게 선택한다. 도시로 나온 출향인이 자신의 고향 발전에 힘을 보탠다는 취지에서 이름을 ‘고향세’라고 정했다. 고향세 성공 요인으로는 ‘고향 특산품’을 보내는 등의 답례품 효과가 컸다고 평가받는다.

아울러 일본은 2016년부터 고향세 납세 대상을 개인뿐 아니라 기업으로까지 확대했다. 정식 명칭은 ‘지방창생응원세제’로, 이른바 ‘기업형 고향세’다. 기업이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지역창생사업에 기부하면 기부액 30%를 세액공제해준다. 지방창생사업은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을 끌어모으고, 다시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도농상생 협력 모델은 농촌 행동 프로그램(RAP·Rural Action Program)이다. 사회적 기업인 BITC(Business In The Community)가 운영한다. BITC는 1981년 찰스 황태자가 설립한 비영리기관(NPO)으로 850개 기업이 참여 중이다.

BITC는 2001년부터 기업 사회공헌활동을 농촌에 접목시키려는 목적으로 RAP를 운영하고 있다. 농촌에 밝은 전문가가 농촌 문제를 다각적인 시각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시골 선술집을 활용한 마을축제, 생산이력제를 통한 영국산 우수성 마케팅 등이 RAP를 통해 탄생했다.

한국형 애그테크 투자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발전소 온수 재활용해 스마트팜 건설

충남 태안에 자리 잡은 발전소 온배수를 활용한 한국형 스마트팜 모습. 한국서부발전이 출연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충남 태안에 자리 잡은 발전소 온배수를 활용한 한국형 스마트팜 모습. 한국서부발전이 출연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한국 역시 농어촌 살리기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 들어서면 독특한 형태의 농장을 만날 수 있다. 이른바 ‘발전소 온배수를 활용한 한국형 스마트팜’이다. 이 지역은 땅 염분이 높고 농업용수가 부족해 벼 경작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 스마트팜은 한국서부발전에서 나오는 발전소 온수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스마트팜이 완공되면 향후 5년간 원북면 24개 마을 농가소득이 119억원 늘어난다. 기업이 지역민과 상생하려는 전형적인 ‘상생형 애그테크’ 사례인 셈이다. 이 스마트팜은 한국서부발전이 기부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지방자치단체 특산물을 이용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사회적 기업이자 학생 기업인 ‘황악산호두영농조합’이 하나의 사례다. 호두 재배에 적당한 기온과 지형을 가진 김천은 우리나라 호두 생산량의 약 34%를 맡고 있다. 특히 황악산 자락 해발 500m에서 생산된 호두는 알이 꽉 차고 맛이 고소하며 껍질이 얇아 최고의 상품성을 자랑한다. 황악산호두영농조합은 ‘김천호두 초콜릿’ 개발을 시작으로 호두를 다양하게 상품화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한국전력기술이 출연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지역 특산품을 상품화하고 판로를 개척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마중물이 된 셈이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농어촌과 기업 간 상생협력을 통해 대한민국 전체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에 따라 피해를 보거나 볼 우려가 있는 농어업을 지원한다. 민간 기업과 농어촌·농어업인 간 공동 협력 사업 등 농어업 경쟁력 향상이 투자의 근간이 된다. 아울러 농어업인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장학 사업이나 복지 증진에 기금을 활용한다. 2018년 12월까지 조성된 기금은 531억원으로 70개 사업에 254억원이 지원됐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0호 (2019.01.02~2019.01.01.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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