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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5대 그룹 인사 키워드 “순혈주의 깨자” 외부수혈·세대교체 안간힘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9.01.07 09:23:39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재계 5대 그룹 인사가 마무리됐다. 이번 인사에서는 경쟁사 인재라도 핵심 사업 경쟁력 확보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영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드보이’가 대거 물러나고 젊은 인재가 잇따라 요직에 등용되는 등 세대 교체 원칙도 뚜렷했다.

보수적인 기업문화로 유명한 LG그룹의 이번 인사 키워드는 ‘외부 수혈’이다. 갓 취임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새로운 LG’를 구현하기 위해 내세운 전략 중 하나가 신선한 인물 영입이었다.

특히 신학철 한국3M 부회장이 핵심 계열사인 LG화학 부회장 자리에 들어오면서 단숨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47년 LG화학 창사 이후 첫 외부 영입 CEO다.

그는 3M 재직 시절 ‘샐러리맨의 신화’로 유명했다. 1984년 한국3M 평사원으로 입사해 20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 본사 해외 사업을 총괄하는 수석부사장 자리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 덕분에 세대 교체에 나선 ‘구광모호’를 상징하는 인물로도 눈길을 끈다.

LG그룹은 지주사 ㈜LG 요직에도 외부 인재를 잇따라 스카우트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베인&컴퍼니코리아의 홍범식 대표를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담당하는 경영전략팀장(사장)으로 내정한 것이 눈에 띈다. 외부 출신 홍 사장에게 LG그룹 사업구조 재편을 통째로 맡기는 ‘모험’을 단행한 셈이다.

외부 수혈과 함께 과감한 세대 교체 인사도 두드러졌다.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오랜 기간 그룹 핵심 사업을 이끌어온 ‘올드보이’가 물러나고 능력을 인정받은 젊은 임원이 요직을 꿰차는 모습이다.

국내 5대 그룹이 연말 인사를 통해 주요 계열사 CEO를 대거 교체하면서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국내 5대 그룹이 연말 인사를 통해 주요 계열사 CEO를 대거 교체하면서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현대차 R&D 수장 첫 외국인 눈길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이다. 연말 인사에서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부문 수장으로 알버트 비어만 사장이 선임돼 화제다. 현대차그룹이 R&D 총책임자 자리에 외국인 임원을 앉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어만 사장은 30여년간 BMW에서 고성능 ‘M’시리즈 차량 개발을 주도하다 2015년 현대차그룹에 합류했다.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을 선보이고 제네시스 G70, 기아차 스팅어를 내놓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현대차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돼 R&D부문 수장을 꿰차면서 그동안 이 분야를 이끌었던 양웅철(R&D총괄)·권문식 부회장(R&D본부장)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삼성그룹 출신인 지영조 현대차 전략기술본부장 역시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지 2년도 안 됐지만 초고속 승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미국 브라운대 응용수학 석박사 출신으로 맥킨지, 액센츄어 등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다 2007년부터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에서 신사업, 인수합병(M&A) 등을 맡아왔다.

현대차그룹은 2017년 2월 연구개발본부 내 미래차 융복합 부문을 따로 떼어내 전략기술본부를 신설하고 지 본부장을 영입했다. 전략기술본부는 미래 모빌리티, 로봇, 인공지능(AI) 등 첨단 미래기술 전략을 짜고 투자를 결정하는 등 핵심 역할을 도맡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직접 전략기술본부를 챙길 정도로 그룹 내 위상이 높다. 이번 인사를 통해 50대 사장단이 전면에 투입되면서 현대차 부회장, 사장단 평균 연령은 기존 61.1세에서 57.9세로 낮아졌다. 재계 관계자는 “정의선 수석부회장 주도로 순혈주의를 깨고 외부 전문가를 속속 영입하는 데다 젊은 CEO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현대차그룹 문화가 전반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SK그룹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낸 SK하이닉스는 당초 박성욱 부회장 유임에 무게를 뒀지만 결국 이석희 사장으로 전격 교체됐다. 2018년 실적이 날개를 달았음에도 새해 반도체 업황이 침체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많은 만큼 수장을 교체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석희 신임 사장은 1990년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 연구원으로 입사해 인텔, KAIST 교수를 거쳐 2013년 SK하이닉스에 다시 합류했다.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장, D램개발사업부문장 등을 거친 세계적 반도체 기술 전문가로 꼽힌다. SK건설·종합화학·가스도 ‘젊은 CEO’가 키를 잡아 변화를 꾀했다. 이번에 선임된 CEO는 모두 50대 초중반(1963~1966년생)으로 전임자에 비해 3~5년가량 젊어졌다.

재계 5위 롯데그룹 역시 대대적인 세대 교체를 단행했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롯데지주의 6개 실과 식품, 화학, 유통, 호텔&서비스 등 4대 사업부문(BU) 인사폭이 컸다. 2017년에는 한 명도 바뀌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4대 BU장과 6명 실장 중 절반이 교체됐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롯데 성장을 이끌어왔던 허수영 화학BU 부회장, 이재혁 식품BU 부회장, 소진세 사회공헌위원장부터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임 화학BU장은 김교현 롯데케미칼 사장이, 식품BU장은 이영호 롯데푸드 사장이 맡게 됐다.

롯데지주에서는 경영전략실, 재무혁신실, HR혁신실, 경영개선실, 준법경영실, 커뮤니케이션실 등 6개 실 중 3개 실을 새 인물이 이끌게 됐다. 그룹 신규 사업과 인수합병을 총괄하는 경영전략실장은 윤종민 HR혁신실장(사장)이 맡는다. 윤 실장은 2007년 그룹정책본부 인사팀장을 맡은 후 11년간 인사 업무를 총괄해온 대표적인 ‘인사통’으로 불린다. HR혁신실장은 정부옥 롯데케미칼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해 맡게 됐다. 감사 업무를 총괄하는 경영개선실장은 박현철 롯데물산 대표 몫이었다.

이 밖에도 롯데케미칼·마트·렌탈·면세점·칠성음료 등 주요 계열사 대표가 줄줄이 교체돼 세대 교체 바람이 불었다. 롯데그룹은 2018년 12월 19일 30개 계열사 중 절반인 15개사 대표를 바꾼 데 이어 이튿날 인사에서도 5개사 대표를 새로 선임했다. 그만큼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진행된 셈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2018년 10월 경영 일선에 복귀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쇄신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영비리 등 각종 재판이 끝나가는 상황이라 법적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된 만큼 미래 준비를 위한 세대 교체에 나섰다는 의미다.

이번 인사에서는 ‘젊은 피’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SK그룹 인사에서는 SK텔레콤 이동통신사업부(MNO) 부사장으로 승진한 유영상 코퍼레이트센터장(전무)이 단연 화제다. 이번 인사로 SK텔레콤에서 가장 큰 사업부인 MNO사업부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지만 그의 나이는 48세에 불과하다. 역대 경영진 중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SK그룹 신임 임원의 평균 연령은 2017년 48.7세에서 2018년 48세로 더 낮아졌다. 이 중 1970년대 출생 비율은 같은 기간 30%에서 53%로 대폭 높아져 ‘젊은 인재’ 활약이 두드러졌다.

삼성그룹 인사에서 사장으로 선임된 노태문 삼성전자 IT모바일(IM)부문 무선사업부 개발실장도 눈길을 끈다. 불과 50세 나이로 사장에 오른 그는 38세에 임원을 달아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포스텍 박사 출신으로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갤럭시S 시리즈 개발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 대표 뒤를 이을 차기 주자 1순위로 꼽힌다.

“새해 경영 환경이 어느 때보다 어려운 만큼 과감한 세대 교체와 외부 인재 수혈로 주요 그룹마다 변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새로 발탁된 CEO, 임원이 미래 핵심 사업에서 얼마나 맹활약하느냐에 따라 그룹 성패가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재계 고위 관계자 촌평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0호 (2019.01.02~2019.01.01.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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