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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세계 최초 SF소설 쓴 18세 소녀

입력 : 
2019-01-03 09: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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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SF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 개봉한다. 많은 이들이 상처받은 녹색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지만 이 세계 최초 SF소설을 18세 소녀가 썼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19세기 영국, 젊은 여성이 SF 장르의 시초가 된 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한 이야기를 사우디아라비아 최초 여성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도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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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철학자 아버지와 여권 신장론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셸리는 내적 자양분을 쌓지만 19세기의 답답한 영국 사회에 염증을 느껴 문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부모의 피를 물려받아 문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낭만파 시인이자 유부남인 퍼시 셸리와 사랑에 빠진 것.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도피를 떠난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위기를 겪게 되고, 어느 날 시인 바이런의 집에 초대된 그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볼 것을 제안받는다. 여러 고난으로 힘들어하던 메리는 상상 속에 존재하던 괴물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주체적인 여성을 뛰어나게 연출한 영화 ‘와즈다’(2012)로 데뷔한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은 메리가 소녀에서 성인 그리고 창작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처절한 감정 변화와 고군분투를 흡입력 있게 담아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엘르 패닝이 다 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주연 배우가 지닌 아우라가 강하다. 영화에서 메리 셸리에 가장 공감하는 대목은 바로 당시 메리 셸리의 나이와 비슷한 패닝이 보여준 당당함과 매력이다. 배신 당하고, 상실을 경험하고, 재능을 의심받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 당하던 메리 셸리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 진정한 창작자로 아버지와 남편 퍼시 셸리 그리고 대중 앞에 우뚝 서기까지를 엘르 패닝의 아우라로 가득 채운다. 과학 기술이 야기하는 윤리적인 문제를 최초로 다룬 소설이자, 버려지는 것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프랑켄슈타인』. “젊은 여성 작가가 썼다고 보기에는 소재가 좀….” “긍정적인 결말로 써 보는 건 어때?” 지금보다 더 여성의 역할이 고정돼 있고 기회도 적었던 19세기 영국, 남성이 주도하던 SF 장르에서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메리 셸리가 겪은 상실과 분노가 자신이 만들어 낸 프랑켄슈타인의 캐릭터에 상당 부분 투영돼 있다는 점을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메리 셸리는 남편의 예전 같지 않은 모습, 생계의 어려움, 딸의 죽음 등의 고난을 극복한 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창조해 낸다.

당시 전설적인 시인 바이런, 그와 함께 영국의 3대 시인으로 불렸던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 그리고 소설 『뱀파이어』의 작가 존 폴리도리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에서 고흐의 죽음을 파헤치는 ‘아르망 룰랭’ 역을 맡은 더글라스 부스가 퍼시 셸리를 연기했고, 근작 ‘보헤미안 랩소디’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 역으로 전성기를 맞은 벤 하디가 바이런의 개인 주치의이자 폴리도리 박사를 연기한다.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은 그녀 자신이 사우디아라비아 최초 여성 감독이라는 신화를 이룩한 것처럼, 상실로 인한 괴로움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상으로 메리 셸리를 재발견하게 만들었다.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 캐릭터에 대한 설명보다는 200년 전 유리 천장을 뚫었던 용기 있는 여성상에 대한 묘사가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상실과 슬픔을 겪고 모든 걸 내던지며 사랑한 이에게 배신 당해도, 우린 결국 버텨내며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영화는 위대한 예술을 탄생시키기 위해 아티스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차분히 보여 준다. 괴물 모습이 전반적으로 등장하는 신은 없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지도 못하는 여성 작가로서의 한계, 유부남과의 스캔들로 인해 존재를 부정 당하던 경계인으로서의 상실감은 인간이 되지 못한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존재의 슬픔과 겹친다.

[글 최재민 사진 51k]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1호 (19.01.0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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