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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ghai in ‘색, 계 色, 戒’…色은 戒를 취하게 하고 戒는 色을 무너뜨린다

입력 : 
2019-01-03 15: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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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색, 계’는 비극이다. 그 비극의 장소로 1930년대 상하이는 제격이다. 세계의 모든 것이 집합된 도시. 그 화려한 외모 속에 감춰진 것들, 일테면 인간이 인간을 이용하고 믿는 척하고, 또 속이는 진실과 허구의 반복은 상하이 와이탄을 비추는 화려한 불빛의 점멸과 같다. 세계 어떤 도시에도 스토리는 있다. 그 스토리는 희로애락의 장조와 단조를 넘나들고 그 안에 수많은 사연들이 애절하고 장중하게 도시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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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가 만들어 낸 역사의 비극

중국 상하이. 베이징이 정치 수도라면 상하이는 경제 수도다. 중국 동부의 장강 하구에 있는 직할시로 상업, 금융, 산업, 통신의 중심지인 상하이는 20세기 초반 뉴욕, 런던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였다. 상하이는 중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그 어느 도시보다 세계 각국의 문화와 건축 등 다양한 양식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황포강변의 와이탄은 마치 1930년대 유럽의 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웅장하고 고풍스런 유럽풍 건물들이 즐비하다. 상하이의 이런 외적인 아름다움 이면에는 중국이 겪은 식민 지배의 아픔이 배어 있다.

중국의 남쪽인 홍콩이 약 100년에 걸친 영국의 지배로 공기와 토양까지 서구 정취가 물씬 난다면 상하이 역시 홍콩과는 다른 색깔의 ‘서양적 정취’를 품고 있다. 물론 두 도시의 공통점은 ‘강제 개방’이다.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의 쇠퇴와 맞물려 이 두 도시는 ‘영국의 식민 지배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그 과정에서 홍콩이 완벽한 영국화의 길을 걸었다면 상하이는 ‘반쪽뿐인 개화’를 겪었다. 그것은 상하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공간, 즉 조계지다.

19세기부터 시작된 서구 열강의 중국 침략은 아편 전쟁을 기점으로 공식화되면서 상하이에는 영국, 미국 등의 합법 관할 지역 조계지가 형성되었다. 이 조계지는 지금의 대사관처럼 중국 안에 있는 영국, 미국 등의 땅이었다. 중국에 있지만 중국의 지배나 통제를 받지 않고 오로지 조계지 관할 국가의 권한만이 행사되는 곳이었다. 이 조계지로 인해 상하이는 역설적으로 성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계지 국가의 문화, 경제, 정치 등 그들의 행정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작은 영국, 미국, 일본이 된 것이다. 상하이의 조계지 역사는 약 100년이지만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1930년대다. 이 무렵 세계는 전쟁의 기운, 약육강식의 국제 관계, 경제적 수탈의 시대였다. 세계 열강은 중국을 ‘종이 호랑이’로 만들며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비단 돈뿐만 아니었다. 정치, 군사적 대립이 치열해지면서 각국의 정예 정보 조직이 상하이에서 활동하며 치열한 스파이 전쟁이 벌어졌다. 그 단면을 드러낸 영화가 바로 이안 감독의 ‘색, 계’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당시 오디션을 통과해 여우 주연으로 발탁된 탕웨이와 홍콩 스타 양조위의 파격적인 정사 신으로 입소문이 났지만, 영화는 ‘색色’으로 접근하는 여성 스파이 탕웨이와 ‘계戒’로 무장한 일본 괴뢰 정부 정보기관 장관 양조위와의 치열하면서도 슬픈 사랑을 정제된 언어로 담아낸 수작이다.

탕웨이가 연기한 왕치아즈는 한마디로 비련의 주인공이다.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가 버리고 의지할 곳이 없다. 전쟁을 피해 온 홍콩에서 대학교에 다니던 왕치아즈는 우연히 연극부에 가입하고 그곳에서 선배 광위민(왕리홍)을 만난다. 광위민은 당시 대부분의 중국 청년들처럼 가슴에 뜨거운 항일의 기운을 간직한 애국 청년. 그는 왕치아즈를 이용해 친일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를 암살하려 한다. 탕웨이는 이 계획의 도구일 뿐이다. 그녀가 광위민의 요청을 수락해 막 부인으로 신분을 위장해 이에게 접근, 자신의 미모와 몸을 무기로 그를 사로잡은 것은 애국심도, 항일의 불타는 기운도 아니다. 단지 마음 하나 의지할 곳 없던 탕웨이로서는 선배 광위민의 존재나 그가 속해 있던 항일단이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3년 뒤 광위민과 왕치아즈는 상하이에서 이의 암살 계획을 시도한다. 왕치아즈는 정보기관 장관답게 아무도 믿지 않는 이를 자신의 몸으로 휘감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가 자신을 믿는 만큼 그를 점점 사랑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며 갈등에 휘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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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빨리 이를 죽여 달라고 항일단에게 하소연하는 왕치아즈의 절규는 이미 왕치아즈가 이를 사랑한다는 고백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6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그 반지가 왕치아즈의 손가락에 끼어 있는 모습이 보고 싶고, 왕치아즈를 끝까지 지켜 주겠다며 “나는 너를 믿는다”는 이의 말에 왕치아즈는 항일단을 배신하고 이에게 “피신하라”고 말한다. 어쩌면 왕치아즈는 평생 “너를 지켜줄게, 너를 믿는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그저 심약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 말을 자신이 죽여야 하는 이에게 듣는 것이 비극이었지만. 왕치아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너졌다. 그리고 자살 캡슐 역시 먹지 않고 총살을 당한다. 그녀가 진정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랑, 믿음 뭐 이런 상투적인 말이었다고 그녀의 진정성을 치부하는 것도 너무 가벼울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작은 우주가 또 다른 우주에게 자신을 허용하고 모든 것을 열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끝까지 이런 왕치아즈를 부정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부하가 내민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그의 심정은 마치 자신이 유일하게 믿었던 왕치아즈의 배신을 믿고 싶지 않은 ‘자기 부정’일 것이다. 후에 그가 후회했는지, 아니면 더는 사람을 믿지 않는 독한 인간이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역설적으로 그의 “나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원초적인 고독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비극이다. 그 비극의 장소로서 1930년대 상하이는 제격이다. 세계 모든 것이 집합된 도시. 그 화려한 외모 속에 감춰진 인간이 인간을 이용하고 그리고 믿는 척하고, 또 속이는 진실과 허구의 반복은 상하이 와이탄을 비추는 화려한 불빛의 점멸과 같다. 세계 어떤 도시에도 스토리는 있다. 그 스토리는 희로애락의 장조와 단조를 넘나들고 그 안에 수많은 각각의 사연들이 애절하게 때로는 장중하게 도시를 이루는 것이다. 상하이에서 발견한 ‘색, 계’ 그리고 탕웨이와 양조위. 그들의 사랑은 이미 8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그들의 생을 지켜본다. 영화는 그저 두 시간의 러닝 타임이지만 어쩌면 왕치아즈의 23년 인생의 러닝 타임을 보는 것과 같다. 어떤 이야기도 엔딩은 슬퍼야 더 강렬하다. 그런 면에서 상하이가 품고 있는 ‘색, 계’는 역사가 만들어 낸 실화이며 정말 처연한 새드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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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치아즈, 이의 경계를 서서히 허물다 1938년 홍콩. 중일 전쟁을 피해 홍콩으로 온 왕치아즈. 그녀는 영국으로 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대학교에 입학해 연극부에서 선배 광위민을 만난다. 그녀는 연기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연극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광위민은 왕치아즈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광위민은 항일 단체의 핵심 멤버. 광위민은 왕치아즈에게 친일파 정보부 대장 이를 암살할 계획을 설명하고 왕치아즈의 동참을 권유한다. 광위민을 이성으로 좋아하던 왕치아즈는 이 계획에 동참한다. 광위민은 왕치아즈를 이의 아내 이 부인(조안 첸)에게 접근시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후 기회를 노려 이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설명한다.

막 부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왕치아즈는 이 부인에게 홍콩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며 접근하고 드디어 이의 집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처음 마주친 왕치아즈와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강렬한 운명적 끌림을 느낀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 음식이 맛없는 레스토랑에 자주 온다고, 또 어두운 곳을 본능적으로 싫어하지만 영화관이 좋다는 왕치아즈를 따라 극장에 오는 이. 그는 점점 왕치아즈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동시에 경계를 풀지 않는다. 그 무렵, 이가 상하이로 발령받는다. 이의 암살 계획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그 과정에서 왕치아즈는 순결을 잃는다.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순결이 이에게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고 원치 않는 선배와 잠자리를 갖는다. 차라리 그 상대가 광위민이었다면… 광위민에 대한 왕치아즈의 마음은 한 걸음 더 멀어진다.

1941년 상하이. 왕치아즈에게 광위민이 다시 은밀한 제안을 한다. 상하이로 가서 이를 암살하자고. 왕치아즈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 부인이 자주 다니는 호텔에 투숙한 왕치아즈는 우연히 이 부인을 만난 것으로 가장해 이 부인의 권유로 이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이 부인, 친일파 왕정웨이 정부의 고위층 부인들과 마작을 하는 왕치아즈. 퇴근하고 집에 온 이는 막 부인이 된 왕치아즈를 만난다. 3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욕망과 간절함이 교차한다. 왕치아즈는 담배를 꺼낸다. “이 부인에게 드릴 선물이에요. 당신에게는 선물을 준비 못했어요.”

이는 조용히 말한다. “당신이 돌아와 준 게 선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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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아편 전쟁 당시 영국 함대에 격파되는 청 군함_위키피디아, 1928년의 상하이 와이탄 전경_위키피디아, 1937년 12월 13일, 중일 전쟁 중 난징 성에 입성하는 일본군_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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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상하이에서 전투 중인 일본 제국 해군 육전대_위키피디아, 조계지 시절 ‘중국인과 개는 출입 금지’ 푯말이 걸렸던 황푸 공원 입구_위키피디아, 1942년, 영국과 청나라 간의 난징 조약 체결 장면_위키피디아
왕치아즈는 호텔에 들어선다. 창문을 닫는 순간, 창문 유리로 이가 보인다. 이는 왕치아즈를 폭력적으로 다룬다. 두 손을 벨트로 묶고 급하게 섹스를 하는 이. 왕치아즈의 손을 풀어 준다. 그러자 왕치아즈도 이를 껴안는다. 항상 암살의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의 부인에게도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집조차 후문으로 드나드는 이. 그가 왕치아즈에게 “나는 당신의 말을 믿는다”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침대에 누운 왕치아즈. 옷으로 왕치아즈의 하반신을 가리고 떠나는 그를 보며 왕치아즈는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이날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갈구한다. 어린아이가 사탕을 찾듯 두 사람은 서로를 탐닉한다. 그럴수록 왕치아즈는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한다. 왕치아즈는 광위민에게 빨리 암살 계획을 실행에 옮기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항일단 지도부는 왕치아즈에게 “이에게서 정보를 얻어 내라”고 요구한다.

텅 빈 집, 이 부인은 친구들과 밤새 마작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고 이는 남경으로 갔다. 방 안에서 짐을 꾸리는 왕치아즈. 그녀는 이가 집에 올 것을 짐작한다. 그리고 일부러 짐을 싸 이 집에서 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왕치아즈의 예상대로 집에 들어오는 이. 그는 왕치아즈의 방에 들어서며 짐을 본다. 왕치아즈를 껴안는 이. 왕치아즈는 이에게 ‘언제까지 당신이 오는 것만을 기다릴 수 없다’고 말하며 ‘집을 얻어 달라’고 요구한다. 두 사람은 다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왕치아즈는 색으로 이를 유혹하고, 이는 색에 대한 경계를 조금씩 풀기 시작한다.

점점 마음이 흔들리는 왕치아즈. 그녀는 광위민과 함께 항일 단체 지도부를 만나다. 그리고 빠른 결행을 촉구한다. 항일단 간부는 오히려 광위민과 왕치아즈를 나무란다.

“나도 그를 죽이고 싶다. 아내와 아이가 내 눈앞에서 죽어 갔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왕치아즈가 말한다.

“날 안을 때마다 그는 마치 뱀처럼 내 안으로 파고들어요. 내 심장까지. 난 노예처럼 그를 받아들이고 충실히 내 역할을 다해 그의 마음을 얻어 내죠. 그는 매번 안을 때면 내가 피를 흘리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를 때까지 멈추지 않죠. 그때 자신이 살아 있다고 느끼죠. 그리고 그는 이런 내 반응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알아요. 난 무서워요. 이렇게… 어느 순간 사로잡히고 마는 건 내가 되고 말 거예요. 점점 두려워져요. 마침내 그가 내 심장에 들어오는 순간, 아무 것도 안 하고 내내 구경만 하고 있던 당신들이 뛰어 들어와 그의 머리를 쏴 버릴까 봐.”

절규하듯 내뱉는 왕치아즈의 속마음을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항일단 간부와 광위민은 잠시 후 조용히 나간다. 고개를 숙이는 왕치아즈. 체념과 굳은 결심이 그녀의 얼굴에 교차한다.

왕치아즈는 이와 사랑을 나눈다. 두 사람의 눈이 이가 풀어놓은 권총으로 향한다. 잠시 후 왕치아즈는 이의 눈을 가린다. 가만히 있는 이. 이가 왕치아즈를 진정으로 믿는다는 증거다. 왕치아즈는 이를 꼭 껴안는다. 며칠 후, 두 사람은 일본식 주점에서 만난다. 왕치아즈는 이의 무릎을 베고 눕는다. 그리고 그에게 노래를 불러 주겠다고 말한다. 왕치아즈의 고향 노래를.

“하늘 끝, 바다 끝으로 지기를 찾노라. 소녀는 노래를 부르고 그대는 거문고를 타네요. 우린 하나의 마음이에요. 고향의 산마루에 올라서 북쪽을 바라보면 흐르는 눈물에 옷깃이 젖어 드네요. 소녀는 그대가 그리워요. 고난을 같이 한 우리 사랑이 진정한 사랑, 우리 사랑은 깊은 거예요. 인생이여, 청춘을 아끼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어요. 소녀는 실이고 그대는 바늘이에요. 우리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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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보다 사랑 택한 왕치아즈 왕치아즈는 상하이 시내 보석상을 찾는다. 이의 메모를 내놓자 2층으로 안내하는 종업원. 보석상 사장이 왕치아즈를 맞는다. 그리고 세 개의 다이아몬드를 내놓는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왕치아즈. 그러자 보석상 사장은 “진짜 내가 아끼는 보석을 보여줄 게요.” 눈이 부시다. 6캐럿의 다이아몬드가 광채를 빛낸다. 카페에서 이를 기다리는 왕치아즈. 그녀의 눈동자에 불안이 감돈다. 이가 도착한다. 두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잠깐만요, 반지를 찾아가요.” 자동차는 방향을 돌려 보석상으로 향한다.

보석상 2층. 휘황찬란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두 사람 앞에 놓여 있다. 흡족한 미소를 짓는 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껴 보는 왕치아즈. 그녀가 이에게 묻는다.

“이 다이아몬드 반지가 마음에 들어요?”

“난 다이아몬드에는 관심 없어. 그걸 낀 당신 손을 보고 싶었지.”

복잡한 표정의 왕치아즈. 그녀가 말한다.

“이런 반지는 누가 훔쳐 갈까 봐 두려워요.”

“끼고 있어. 내가 지켜 줄게.” 말없이 이를 바라보는 왕치아즈. 잠시 후 그녀는 결심을 한 듯 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한다.

“가요… 어서!”

눈을 크게 뜨고 왕치아즈를 바라보던 이. 그리고 재빨리 보석상에서 나와 자동차로 뛰어간다. “문 열어. 빨리!”

보석상에서 나온 왕치아즈는 천천히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인력거를 탄다. 잠시 후, 상하이 거리에는 검문검색이 펼쳐지고 인력거는 멈춘다. 외투 깃에서 캡슐을 꺼내는 왕치아즈. 캡슐에는 청산가리가 들어 있다. 캡슐을 만지작거리는 왕치아즈. 끝내 삼키지 않는다.

그 시간, 정보부로 돌아온 이는 부하에게서 왕치아즈의 실체를 보고 받는다.

“왕치아즈는 대학교 연극부에서 항일단에 포섭되었습니다. 그녀 주변의 항일단 지하 조직을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애초부터 나에게 그녀의 정체를 왜 보고하지 않았나?”

“그건, 장관님도 그녀에게 포섭되었을까 봐요.”

말없이 부하를 쳐다보던 이는 왕치아즈와 광위민 등 항일단의 사형 집행문에 사인을 한다.

“오늘, 10시 안에 처형을 집행하도록. 상하이 교외 벌판으로 가서.”

부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놓는다.

“장관님 것 같아서 갖고 왔습니다.”

“그건, 내 것이 아니네.”

황량한 상하이 교외의 벌판. 왕치아즈와 광위민 등은 사형장에 끌려 나온다. 왕치아즈는 무표정하게 광위민을 바라본다. 그 시간, 집에 돌아온 이는 왕치아즈가 머물던 방에 들어선다. 빈 침대. 이 부인이 와 이에게 묻는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 일도 아냐. 당신은 가서 마작이나 하고 놀아요.” 조용히 돌아서는 이 부인. 그 순간 시계의 괘종이 10시를 알린다. 왕치아즈가 죽은 시간이다. 무표정하게 소리를 듣는 이. 잠시 후 그가 일어나 방에서 걸어 나온다. 짙은 그림자가 막 부인의 침대에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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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실화, ‘색 계’ ‘색, 계’는 194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스파이가 되어야만 했던 여인과 그녀의 표적이 된 남자의 사랑을 다룬 이안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코스모폴리탄으로 불렸던 1930, 1940년대 상하이가 배경이다. 당시 상하이는 조계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고 여러 나라의 스파이들이 활동하는 특별한 도시였다.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중국의 여류 작가 장아이링은 1939년 실재 이야기를 소설로 펴냈다. 소설 제목 역시 ‘색, 계’다.

탕웨이가 맡은 왕치아즈는 1930년대 후반 ‘상하이 사교계의 꽃’으로 불리며 국민당 정부를 위해 일했던 정핑루라는 실제 인물이다. 1918년생인 정핑루는 푸단대학 법과대 교수인 아버지와 일본 명문가 출신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정핑루는 1937년 상하이 정법학원 법과대에 입학하고 그해 7월 상하이 유명 잡지 『좋은 벗』 표지 모델이 되면서 사교계의 주목을 받는다. 좋은 집안, 타고난 미모, 그리고 유창한 일본어 실력으로 정핑루는 단박에 사교계를 사로잡는다.

그녀를 눈여겨본 이는 국민당 정보기관인 조사통계실장 천바오화. 그는 정핑루에게 접근해 국민당 정부, 중국 민중을 위해 일해 줄 것을 청하고 정핑루는 이를 수락한다. 당시 국민당 조사통계실의 목표는 친일파 왕정웨이가 세운 괴뢰 정부 정보기관 ‘76호’ 책임자 딩모춘이다. 영화에서 양조위가 연기한 ‘이’의 실제 모델이다. 딩모춘은 ‘상하이의 도살자’, ‘상하이의 색정광’으로 불리는 인물. 그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원래 중국 공산당의 핵심 요원이던 딩모춘은 국민당 당원으로 전향한다. 국민당에서 딩모춘은 정보기관인 조사통계실에서 근무한 후 중일 전쟁 이후 일본이 세운 왕정웨이 괴뢰 정부의 정보기관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정보기관에서 근무했던 딩모춘으로 인해 당시 공산당은 물론이고 국민당 조사통계실은 조직이 거의 와해될 정도로 딩모춘에게 탄압을 받았다. 후에 기록을 보면 1937년부터 1941년까지 4년 동안 수천 명의 국민당 요원들이 딩모춘에게 구금, 납치, 암살을 당했다고 한다.

이에 천바오화는 정핑루를 이용해 딩모춘 암살 계획을 세운 것. 정핑루는 단숨에 딩모춘을 사로잡고 그의 정부가 된다. 첫 번째 딩모춘 암살 시도는 1939년에 이루어졌다. 정핑루가 집에 국민당 암살단을 잠복시킨 후 딩모춘을 초대한 것. 하지만 집에 들어오던 딩모춘이 갑자기 돌아가버리면서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정핑루는 그해 12월 딩모춘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후 크리스마스 선물로 상하이 중심가에 있는 시베리아 모피 전문점에서 코트를 사 달라고 요청한다. 두 사람은 같이 모피 전문점에 들어갔지만 딩모춘이 곧바로 다른 문으로 도망을 쳐 두 번째 암살 기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영화에서는 이 모피점이 보석상으로 바뀐 것이다. 수상한 남성들이 모피 전문점 근처에 있는 것을 보고 딩모춘이 일단 피신한 것이다.

1939년 12월 24일, 정핑루는 상하이 조계지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딩모춘을 기다리지만 레스토랑에 온 것은 ‘76호’ 요원들. 그 자리에서 정핑루는 상하이 정안사 서쪽 제스필드 76호에 위치한 딩모춘의 ‘76호’로 잡혀 간다. 그 후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정핑루는 국민당 조사통계실의 정보를 밝히지 않고 자신이 딩모춘을 너무나 사랑해서 벌인 일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결국 정핑루는 1941년 2월, 상하이 교외 벌판에서 총살당했다. 당시 정핑루의 나이 22세였다. 영화 속 왕치아즈의 비극적인 최후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딩모춘은 일본이 패전한 후 국민당에게 체포되었고 1947년 7월 난징교도소에서 총살당했다. 당시 딩모춘의 나이 4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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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지, 스파이들의 ‘사연 많은 무덤’ 영화에서 눈길을 모으는 것은 상하이만의 특수성, 조계지다. 1840년 영국은 불과 4000여 명의 병력과 군함 몇 척으로 ‘아시아의 호랑이’ 중국과 전쟁을 벌였다. 바로 아편 전쟁이다. 영국의 신식 군함은 중국의 낡은 함대를 무참히 파괴했고 이윽고 난징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의 여러 내용 중에서 ‘중국 5개 대외 무역항의 개항’ 조건이 있었다. 이에 따라 상하이는 1843년 개항했고 이를 근거로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의 서구 열강이 중국에 자신들의 근거지를 합법적으로 만들었다. 이후 100여 년 동안 상하이에는 ‘조계지’라는 이름의 초법적인 외국인 주거 지역이 생긴 것이다. 즉 상하이는 청나라 정부가 행정과 사법 관할권을 행사하는 지역과 청나라 정부의 관할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조계지로 나눠지게 되었다. 이 조계지는 상하이를 번영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조계지의 특성으로 중일 전쟁, 군벌 내전, 국공 내전, 태평양 전쟁 등의 직접적인 ‘전화戰火’에서 벗어나 발전을 지속할 수 있었고, 조계지를 운영하던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이 국력을 상징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조계지를 발전시켰다. 또한 국제 관계나 대외 통상에서도 상하이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유 지역으로 중국으로 향하는, 중국에서 세계로 진출하는 통로였다. 하지만 각국의 치열한 정보 전쟁 최일선으로서 상하이는 수많은 정보원과 스파이의 ‘사연 많은 무덤’이 되기도 했다.

상하이 조계지의 최전성기는 1912년부터 중일 전쟁 바로 직전인 1936년까지, 약 25년간이었다. 특히 1921년 중국 공산당 제2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중국 공산당이 탄생한 도시도 바로 상하이이다. 이로 인해 상하이에서는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치열한 정보 전쟁이 벌어졌다. 또한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중국과 일본의 정보전이, 이후 일본, 중국, 영국, 독일,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벌이는 아시아 최대의 정보 전쟁터가 되었다. 물론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은 상하이의 미국과 영국 조계지를 강제로 점령해 미국과 영국은 공식적으로 철수했고, 이후 상하이의 조계지 시대는 약 100년 만에 막을 내렸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Daum영화]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1호 (19.01.0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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