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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학교 공간 디자인-창의를 가꾸는 학교 디자인

입력 : 
2018-12-27 10: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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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사회가 발전한 스피디한 속도에 비해 학교 공간 디자인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4차 산업 시대엔 창의력만이 살길이라는데, 큰일이다. 그래서 최근엔 각 지자체에서 앞다퉈 학교 디자인 변혁에 대한 지침을 내놓고 있다.

평범한 동네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운동장을 병풍처럼 둘러싼 복도식 아파트형 학교. 긴 복도에 다닥다닥 붙은 직사각형의 교실들. 크기도 형태도 심지어 인테리어조차 어린 시절의 학교와 비슷해 잠시 향수에 잠겼던 순간이 있지 않았는가. 사실 한국의 공공 디자인은 지난 수십 년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어디나 선진 사회를 향할수록 공공 디자인에 열을 올린다. 철학과 배려가 담긴 사회적 기능의 디자인은 사회 등급을 가르는 척도가 되어 버렸으니까. 세계적인 건축가의 손을 탄 멋진 도서관, 뮤지엄, 공원, 갤러리는 선진 사회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요건 중 하나다. 바람직한 일이다. 이 바람직한 디자인 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은 ’가족’ 특히 ‘어린이’에 초점을 맞춘다. 아이들은 이 땅의 미래고, 환경을 통해 뭐든 배우는 천재니까. 그러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허점이 있다. 그 훌륭한 아이들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메인 스테이지’인 학교는 ‘아직’이다. 앞서 말한 대로 학교 디자인은 수십 년 전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입시, 사교육 문제에 밀려 공간 디자인 문제는 늘 하찮게 취급 받았다. 안타까운 것은 공간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 입시 제도를 바꾸는 것에 비해 천만 배 쉽고 간단한 데다, 그 정성적인 효과는 즉시 나타난다는 거다. 입시 교육에 시달리는 한국 학생들에게 결핍된 창의력을 북돋울 가장 빠른 방법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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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영국의 교육부 장관 짐 나이트는 ‘미래의 학교 건축’ 디자인에 대한 최소의 신지침을 발표했다.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학교 허가를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디자인 기준은 학교의 아이덴티티, 환경, 내부 디자인, 향후 사용 전망 등이다. 이미 창의 교육을 위한 공간 환경 조성을 법적으로 규제해 놓은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에 따른 다양한 행보가 시작됐다. 2017년 서울시 교육청은 서울시와 함께 학교에 다채로운 색을 적용하는 컬러링 사업과 학교 내부를 리모델링하는 꿈을 담은 교실 프로젝트로 호평을 받았다. 더 적극적인 예도 있다. 올해 부산교육청은 향후 신개축 학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형태로 짓는다고 발표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미래 교육을 위해 창의적인 학습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 밝히면서 말이다. 긍정적인 예시가 온라인을 달구기도 한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전국 수만 개 학교 중 그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니 그 비율이 미미하다. 또 학교의 디자인이 바뀌었대도 교육 커리큘럼에 발전이 없으니 당장은 빛 좋은 개살구로 머물 가능성마저 있다. 하지만 정장을 입으면 몸가짐이 평소보다 정숙해지는 것처럼,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에 머물면 아이들은 금세 자신의 롤을 찾는다. 아이들은 누구나 천재니까. 좋은 예가 있다. 스웨덴의 한 초등학교에서 구현한 프로젝트 얘기다. 2011년 건축 스튜디오 ROSAN BOSCH가 진행한 Vittra Telefonplan은 교실 없는 초등학교다. 교실이 아니라 공동 모임 구역이 대부분인 학교. 노트북 하나 옆구리에 끼고 어디든 이동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학교. 대안 학교답게 과감한 발상이다. 실제 구현된 비주얼을 보면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다. 이는 공교육에서 가능할 만한 수준의 공간 인테리어와 구성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국내외 젊은 건축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학교는 교실이 아니라 공동 구역이 많아져야 한다고. 사각 책상에서 정면을 보며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군대식 수업 문화는 전근대적이다. 누구나 그걸 말한다. 누구나 그걸 안다. 우리도 조금씩 개선하다 보면 언젠가 교실은 없는데 교실이 되고, 책상은 없는데 수업은 되는, 그런 날이 올까?

[글 한희(문화 평론가) 사진 ROSAN BOSCH]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0호 (19.01.0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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