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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자 어디가] 이토록 다이내믹한 ‘GOTO’로 Go to…6인의 캠퍼, 日 산티아고를 걷다

박찬은 기자
입력 : 
2018-12-27 11: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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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간다고?”는 말을 열댓 번은 듣고서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규슈 나가사키현 서쪽의 ‘고토(五島, Goto)’ 열도 여행. 나가사키와 함께 성지순례 코스 정도로만 알려진, 한국어 여행 책은 한 권도 없는 미지의 열도 탐험. 6인의 캠퍼는 수백 마리의 사슴이 뛰어다니는 무인도부터 가톨릭 박해를 피해 숨은 규슈판 산티아고까지 고토의 5개 섬을 북에서 남으로 훑었다. 박해를 피할 수 있었던 섬의 자연은 훼손되지 않았고, 인적이 드문 천국 같은 바다는 고즈넉하면서도 다이내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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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五島) 열도 |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 서쪽 바다에 위치한 140여 개의 섬들을 ‘고토 열도’라고 한다. 주요 섬이 5개이기 때문에 고토(五島)로 불리며 위쪽에 있는 상(上)고토(나카도리지마, 와카마쓰지마)와 하(下)고토(후쿠에지마, 나루지마(奈留島), 히사카지마(久賀島))로 나뉜다. 상고토를 ‘위쪽 고토’라는 뜻의 ‘가미고토(上五島)’, 하고토를 ‘아래쪽 고토’라는 뜻으로 ‘시모고토(下五島)’라고 칭한다. ▶고토 원정대 첫 번째 섬, 우쿠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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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열도 최북단의 우쿠지마는 자전거 트레킹으로 둘러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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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마해수욕장(大浜海水浴場) 캠핑장, 트레킹 중 만난 스게하마 해수욕장(スゲ浜海水浴場)은 야자수가 많았다.
나가사키 공항의 입국 심사원은 자기 몸만한 배낭을 메고 온 일군의 사람들이 신기해 보이는 듯 했다. “뭐가 들어있죠?” “텐트, 침낭요. 캠핑 배낭입니다.” “입국신고서에 적어놓은 숙소는 호텔인데 캠핑은 어디에서 하나요?” “숙소 앞마당에서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글램핑이요.” “아, 그렇군요. 일본은 자주 오십니까?” 문답이 핑퐁처럼 오가다 더 이상 대답할 일본어가 없을 즈음, 심사원이 배낭을 돌려줬다. 그도 15kg에 맞춰 꽁꽁 패킹한 배낭을 풀어보는 건 귀찮았겠지. 이 모든 게 이번 고토 원정 때문이다. 이번 원정은 나가사키 시세보 여객터미널에서 시작, 고토열도의 5개 섬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횡단한 뒤, 다시 나가사키로 끝난다. 그러나 인천 출발 비행기가 지연되면서 우쿠지마행 배를 탈 수 있을 지 불확실해지며 일정에 첫 번째 먹구름이 생겼다. 30분 전 표를 끊어야 배를 탈 수 있기 때문. 암살의 총알을 피해 차로 몸을 날리던 ‘색계’의 양조위 버금가게 빠른 움직임으로 사세보항 택시에 몸을 던진 우린 다행히도 제시간에 갑판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나가사키 사세보 항에서 우쿠지마까지는 2900엔. 항구에 내려 유명하다는 고래 튀김 카레 집으로 향했지만 문을 닫았다는 비보가 들려온다. 주인 할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 비정기적으로 문을 연단다. 어쩔 수 없지. 항구 주변에 위치한 나카사키 짬뽕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미나토 쇼(港荘;민숙항장)’ 즉 ‘항구의 민박’이라고 적힌 3층 건물 중 1층만 식당이다. 50년 된 나가사키 짬뽕 전문점이란다. 면보다 밥이 당겼던 일행이 묻는다. “여긴 밥 종류는 없나요?” “없어. 옆집으로 가.” 쿨하게 한마디를 남긴 채 부엌으로 총총 사라진 주인 할머니는 신속하게 일행이 주문한 맥주와 나가사키 짬뽕을 내온다. 무뚝뚝한 말투지만 그 사이로 숨은 정을 드러내는, 영락 없는 섬 사람이다. 테이블을 닦고, 짬뽕 그릇을 서브하고, 맥주잔을 내려놓는 동작엔 군더더기 하나 없다. 건해삼이 들어있는 짬뽕은 야채가 많고, 국물이 진해 맥주와 좋은 궁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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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 16m에 달한다는 천연기념물 용나무, 우쿠지마로 가는 배 티켓, 미나토 쇼 나가사키 짬뽕 700엔. 맥주 500엔.
부른 배를 꺼뜨리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것은 자전거 트레킹. 결과적으로, 자전거 트레킹은 우쿠지마를 뇌리에 각인시킨 한방이었다. 여객선터미널에서 대여가 가능한데, 1시간에 300엔, 3시간에 700엔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빌려 섬을 둘러볼 수 있다. 전기 자전거라 오르막길에서도 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매력. 해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다 목이 마르면 자판기에서 맥주를 뽑아 마시고, 자전거를 타다 더우면 그대로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자꾸만 페달을 멈추게 하는 풍광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 든다. 탁 트인 바다를 향해 넉넉하게 가슴을 연 오하마 캠핑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아주 넓어서 많은 인원이 와도 다툼 없이 Sea View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바다가 캠핑장 코앞에 있기 때문. 트레킹에 지친 몸을 캠핑장 앞 바닷물에 던져 넣었다. 신나는 것도 잠시, 일행이 잠긴 샤워실 앞에 망연자실 서 있다. 이미 퇴근한 관리인 대신 생수병에 물을 채워, 개수대 뒤에서 차례대로 샤워를 했다. 가끔 이런 정글의 법칙을 찍는 것도 여행이 주는 변곡점이 아닐까. 캠퍼라면 이 정도야 껌이지. 자, 다이내믹한 고토원정대의 시작이다.



▶자연이 지닌 모든 색, 오지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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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료다키(고료 곶), 파도에 옥돌이 회전하며 구멍을 뚫은 현무암 팟홀(pot hole 玉石甌穴), 원정 내내 함께 한 배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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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모래의 아카하마 핑크비치, 시라하마 흰모래 해변, 마다라지마(斑島)의 검은 용암 바위(위로부터 시계 반대방향), 검은 소들과 좌측의 마다라등대.
새벽 6시, 다음 섬인 오지카 섬으로 가는 6시55분 배에 맞추기 위해 일찍 눈을 떴다. 숙취가 가시지 않은 충혈된 눈으로 채 마르지 않은 텐트를 접어 배낭에 쑤셔 넣고 차에 몸을 싣는다. 바늘도 안 들어갈 듯 빽빽하게 들어찬 배낭들이 테트리스 게임을 연상시킨다. 섬을 옮길 때마다 왜 짐은 더 늘어날까. 더 버리고, 더 내려놔야지 하는 여행지에서의 결심은 배낭 패킹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고토 원정대 두 번째 섬은 오지카지마(小値賀島). 우쿠지마에서 출발한 지 40분, 아침 잠을 채 보충하기도 전에 배는 항구에 닿는다. 여행하는 내내, 컬러풀한 색깔로 기억된 오지카섬은 시라하마(白浜海水浴場) 해변의 하얀 모래, 아카하마(赤浜海岸) 해변의 붉은 모래, 오나가사키(長崎鼻) 초원의 검은 소들로 뇌리에 남았다.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화산 적벽 고료다키(五両ダキ)의 장대한 아름다움은 또 어쩔 텐가. 화산 폭발과 함께 분출하던 용암이 스며든 절벽이 있는 해안으로, 그 단면을 잘라 떡 하니 보여주고 있는 적벽 앞에서 누구 한 명 쉽사리 다음 장소로 가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딘가 드라마 ‘로스트’ 주인공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올 듯한 고립된 아름다움을 혼자 숨겨둔 고료다키는 오지카지마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검은 소들이 사람을 피해 섬의 건너편으로 이동하던 오나가사키 초원에선 소 떼를 대신해 복수라도 하듯, 뱀 한 마리가 발 밑을 쏜살같이 지나쳤다. 큰 파도가 치면 구멍 속 옥석이 뱅글뱅글 돈다는 팟 홀(pot hole)을 보며 ‘구슬 사이다 라무네(ラムネ) 속 구슬을 닮았군’ 생각이 든다. 바늘처럼 삐죽삐죽 솟은 현무암 바위를 향해 조심조심 발을 내딛었다. 마다라지마의 흰 등대와 날카로운 바위를 뒤로 하고 고픈 배를 채우러 식당으로 향했다. 아무리 놀라운 비경도 식후경인 것은 가보지 않은 금강산이나 두 발로 딛고 있는 오지카지마나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것은 외롭다, 노자키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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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마리의 사슴과 섬 지기 2명이 노자키섬을 지킨다, 박해를 피해 지은 노쿠비교회(旧野首教会)(1908년)
오지카항 터미널에서 노자키섬행 페리에 탑승했다. 편도 500엔이다. 노자키지마(野崎島)는 폭 2km, 길이 6km의 길쭉한 섬으로, 섬 전체가 자연림으로 덮여 있다. 둘 다 화산으로 생긴 이웃 섬이지만 색으로 기억되는 오지카섬과 장대한 풍광으로 가득한 노자키섬은 결이 너무나 다른 이복형제 같다. 고토 열도 가운데 유일한 무인도로 용암이 용출해서 생긴 노지카지마는 섬 정상까지 오르면 화산활동으로 침식된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자키지마는 종교 탄압을 피해 섬으로 섬으로 도망치다가 이곳까지 온 교도들이 안심할 만큼 멀다. 오지카섬까진 간헐적으로 연결되던 전화가 아예 통하지 않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50년대까지는 600명 이상의 주민이 살았지만 1970년대부터 육지로 이주해, 90년대 이후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된 노자키섬. 항구에서 캠핑장까지는 걸어서 약 15~20분.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드디어 하늘빛 바다가 나타났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오래된 바다는 순례객만 받다가 갑자기 나타난 캠퍼 일군에게 놀란 듯, 높은 파도로 인사를 건넸다. 노자키섬이 너무 좋아 고향인 오지카섬에 가족들을 두고 왔다는 13년 경력의 섬 지기는 수영을 하러 해변으로 향하는 일행에게 ‘상어가 나타나고 해파리도 쏘이니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인다. 산이고 바다고 할 것 없이 야생동물로 꽉 찬 노자키섬에는 수백 마리의 사슴이 살고 있다. 굴업도에서 한두 마리 보던 그런 사슴이 아니다. 떼로 몰려와 ‘뭐 이런 걸로 놀라고 그래?’라는 눈빛으로 사람들을 살핀다. 이 사슴만을 찍기 위해 35년 전 이주했다는 사진 작가도 매일 아침 배를 타고 섬으로 출근한다. 사슴 이름을 다 알 정도로 오래 사슴 사진을 찍어왔다는 그는 노자키지마 방문객센터의 관리인도 겸하고 있다. 그저 사슴이 좋고, 섬이 좋아 섬 지기를 자처하는 이들을 둔 무인도라니. 섬이지만 외롭지 않은 섬, 노자키지마는 섬의 풍광부터 그 섬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모조리 다 비현실적이었다. 오늘은 1985년 문을 닫은 폐교를 활용한 노자키지마 자연학숙촌(野崎島自然学塾村)에서 지내기로 한다. 넓은 조리실과 샤워실, 빨랫대, 세탁기와 탈수기가 있어 무인도지만 간만에 쾌적하게 잘 수 있겠다. 다인실 3600엔, 야외텐트 2000엔. “해가 지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면 안됩니다. 야생동물이 많고 독뱀, 독벌레가 많이 나오거든요.”(섬 지기) 내일은 학숙촌 뒤에 있는 노쿠비교회로 올라가 볼 예정이다. 노자키와 가까운 오지카섬 사람들이 3끼 중 2끼만 먹고 아낀 돈으로 지은 성당이다.



▶일본 3대 우동과 네 번째 원정,가미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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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로바위’로도 불리는 야가타메의 암벽, 아리까와 청소년 여행촌의 캠핑 사이트는 1인 500엔, 2층 통나무집은 1일 15420엔(6명)이다, 타카이타비 해수욕장(高井旅海水浴場)에선 가오리를 만났다. 코티지 1박 1234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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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우동 중 하나인 고토 지옥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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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은 야가타메 소금가마.
오지카항에서 신카미고토의 아리카와 항까지는 고속선으로 약 45분이 걸린다. 항구에는 신카미고토(초)(-행정구역명) 공무원들이 ‘내일의 세계유산을 만나는 섬’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든 채 깃발을 흔들며 서 있다. 그들에게는 귀찮은 주말 출장이겠으나,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배에서 내린 일행에게는 충분히 반가운 환영인사였다. 나카토리지마(中通島)와 와카마쓰지마(若松島)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신카미고토초에 속한다. 십자가 모양의 섬인 신카미고토초가 카톨릭 선교의 중심지라는 점이 재미있다. 그 모양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 만화 주인공을 따라 ‘토토로암벽’이라고 불리는 높이 100m의 바위가 있는 야가타메(矢堅目) 공원부터 가본다. 근처에는 야가타메 소금 양조장이 있다. 가미고토의 3대 특산물은 고토우동 동백기름, 그리고 소금. 가마에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전통 방식으로 대를 잇고 있는 야가타메 가마의 손녀는 “만조 때에는 플랑크톤 같은 불순물이 적어 소금을 만드는데 적격”이라며 “요즘은 거의 없는, 장작으로 가마에 불을 때는 ‘히라가마 증발식’을 여전히 고수한다”고 밝혔다. 불순물 없는 소금으로 아이스크림, 캔디도 만드는데, 4톤의 바닷물에서 한 말 이상의 소금이 나온다. 짜면서도, 단, 요즘말로 ‘단짠’ 소금 아이스크림을 맛본 뒤 일본 3대 우동 중 하나인 지옥우동(지고쿠다키:地獄炊き)까지 먹기 위해 내처 달렸다. 냄비 국물이 펄펄 끓는 모습이 꼭 지옥의 뜨거움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지옥우동으로 불리는데, 동백유를 넣어 반죽한 면은 가늘어 쉽게 불지 않았다. 마치 빗을 연상시키는 전용 국자 스쿠이보(すくう棒)로 면을 덜어 계란 물이나 날치육수 소스에 찍어먹는데, 그 맛이 심플해서 질리는 법이 없다. 전국 우동대회에서 우승한 비결이다. “언제 불을 끄면 되나요?” “다 되면 내가 올게.” 누가 섬 아니랄까봐 이 식당도 시크하기 그지 없다. 신가미고토초 관광상공과 임근호 씨는 “당나라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 파견된 ‘견당사’가 일본에 전파한 중국의 면 문화”라며 “당나라에서 출발한 배의 마지막 기항지가 가미고토였다”고 덧붙였다. 가미고토는 이외에도 일본의 해수욕장 100선에 선정된 하마구리하마해수욕장, 얕은 해안에서도 가오리를 볼 수 있는 타카이타비 해수욕장 등 끝없이 맑고 투명한 바다를 품고 있다. 타카이타비는 로그하우스가 바다 코앞에 위치해 창문으로 마치 프라이빗 비치처럼 해변을 즐길 수 있는 해변이다. 꼬리에 독 성분을 지닌 가오리의 독침이 걱정되긴 했지만 일행은 모두 바다로 나갔다. 잡히지 않는 가오리와 물속에서 눈싸움만 하다 포기하고, 고구마소주와 함께 가게에서 사온 고래 회를 맛본다.

▶고래 전망대와 고토 산티아고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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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가 끝나 돌아온 신자들이 바위를 쌓아 만든 가시라가시마 천주당(頭ヶ島天主堂)이 있는 가시라가시마마을, 먼바다에서 오는 고래를 관찰하는 경견산 전망대, 고토 바다를 지켜온 나라오지구 희망의 성모상, 로컬만 온다는 하만나(ハマンナ) 시크릿비치. 멀리 ‘라이온섬’이 보인다, 제철 재료로만 요리하는 시골 식당 ’요카요’.
400년 동안 고래잡이를 해온 가미고토의 아리까와 마을에는 고래 출어를 살피는 경견산(‘고래’ 鯨+‘볼’ 見)이 있고, 그 정상에는 구지라미야마전망대(鯨見山展望台)가 서 있다. 에도시대부터 있었던 고래 감시초소로, 먼바다에서 고래가 들어오면, 대기하고 있던 고래 파수꾼 야마미(やまみ[山見]: 조금 높은 곳에서 고래를 살펴 출어를 지키는 사람)가 사람들에게 이를 알렸으리라. 시간은 빠듯했지만 섬 주민들만 온다는 하만나 시크릿비치를 빼놓을 순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완벽한 결정이 됐다. 이온음료 CF를 찍어야 할 것만 같은 하만나는 시크릿 비치라는 말 그대로 관광객은 거의 없이 한 가족만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엄마가 먼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동안 아빠는 두 아이와 해변에서 조개를 주우며 놀아주는 중이다. 드론 소리가 모처럼의 가족 여행에 방해가 될까 싶어 얼른 철수 명령을 내렸다. 가미고토의 북동쪽 끝으로 가자,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이자 세계문화유산 후보 구성 자산인 가시라가시마(頭ヶ島)가 다리로 연결돼 있다. 금교령에도 불구, 은밀히 신앙을 키워가던 잠복 크리스찬(가쿠레 기리시탄, 隠れキリシタン)들이 이주한 마을로, 하루에 2~3개의 돌을 쌓아 10년에 걸쳐 완성한 천주당이 있다. 250년간의 종교 탄압을 견뎌낸 가미고토 29곳의 성당은 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 해도 꼭 한번 방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신비로운 바다 색깔 때문이었을까. 걸어도 걸어도 쉽사리 깊어지지 않는 바다가 아쉬웠던 우리는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스노클링을 해가다, 하마구리해수욕장에서 일행 몇 명이 물에 빠지는 사고를 겪는다. 아찔했던 순간이 지나가고, 무사히 모래 해변을 밟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해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술안주로 이야기할 수 있던 그날 밤, 한 잔 기울이며 바라본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하다. 다음날, 나라오지구의 ‘희망의 성모상’을 보러 가는 마음은 그래서 어딘가 남달랐다. 1954년 건립됐지만 노후되어 1996년에 다시 재건된 성모상. 먼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마친 어부들은 아직도 가장 먼저 성모상 앞으로 가서 감사 기도를 올린다. 바다를 얕잡아봤다가 한 수 배운 일행도 의도치 않게 경건한 마음으로 성모상 앞에 섰다. 이제 고토 원정의 마지막 섬, 후쿠에지마로 갈 차례다.



▶원정대의 마지막 섬, 후쿠에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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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활동으로 생긴 고토의 상징 오니다케(鬼岳)산. 그 용암이 아분제 현무암 해변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일본 100대 해수욕장 중 하나인 타카하마 해수욕장(高浜海水浴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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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도미에 캠핑장의 유명한 조식. 빈 우유곽에 핫도그를 넣어 토치로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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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을 태풍과 함께 장식했던 교가사키 캠핑장은 일본에서 가장 깨끗한 해수욕장 1위(2004)에 올랐다.
‘하(下)고토’, 즉 ‘시모고토(しも[五島)’로 분류되는 고토 시(市)의 후쿠에(福江島) 섬은 우리 고토 원정의 마지막 섬이다. 제주의 오름과 닮은 오니타케 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아분제 현무암 해변을 만들었다. 아분제방문자센터(鐙瀬ビジターセンター)에서 섬의 유래를 공부한 후 언덕에 오르니, 타카하마 해수욕장과 톤토마리 해수욕장(頓泊海水浴場)이 함께 보인다. 후쿠에 섬의 타카하마 해수욕장은 40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서해국립공원의 특별지역으로 천연의 백색 모래사장과 주위를 둘러싼 원시림이 함께 있다. 물이 빠지고 백사장이 드러나면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데, 걸어도 걸어도 깊어지지 않아 모래 밭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해변모래가 날아올라 형성된 대규모 해안사구 쪽에서 새까맣게 탄 학생들이 걸어오며 인사를 해왔다. “곤니치와!” 전혀 인사할 이유가 없는 낯선 관광객들에게 목례를 하는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돌려주게 될 때쯤이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게 되겠지. 바다가 많은 곳이라, 고토열도 사람들의 피부는 육지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갈색 톤으로 그을려 있다. 차에서 잠드는 바람에 놓친 돈토마리 해수욕장의 풀등은 잠에 팔아먹은 풍경이 뼈아플 정도로 아름다웠다. 산산도미에 캠핑장으로 돌아와 오징어와 소라를 야외 화롯불에 구워 먹기 시작하자, 잔 속의 사케가 구멍 뚫린 듯 사라진다. 밤새 텐트를 찢을 듯 불어대던 바람도 일행의 달콤한 잠을 깨우진 못했다. 비가 올까 걱정했지만, 봉분 형식으로 만든 텐트 사이트는 배수 걱정도 사라지게 했다. 다음 날 아침, 빈 우유팩 속에 빵을 넣고 토치로 굽는 그 유명한 산산도미에 캠핑장의 조식까지 경험하고 나니 이미 해가 중천이다. 이제 문명의 세계로 돌아갈 차례. 온천에서 목욕을 즐기고 나와 뜨거운 드라이 바람에 몸을 맡긴다. 6일 만에 문명의 혜택을 받는다. 캠핑장에만 있다가 온수샤워, 게다가 드라이라니, 피부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온몸의 모든 세포가 좋다고 아우성 치는 게 느껴진다. 교가사키공원 캠핑장(魚津ヶ崎公園キャンプ場)과 5분 거리에 있는 온천은 ‘땀샘 소확행’을 실현시켰다. 여행이 주는 편리함은 고급 숙소와 비즈니스에서 올지 모르겠지만, 여행이 주는 불편함은 몸에 아로새겨져 어디서든 작은 행복의 구슬을 꿸 수 있게 만든다. 교가사키공원 캠핑장에서 태풍을 겪고 난 다음날 아침, 쓰러진 풀들과 흩어진 돌들, 절벽 위로 솔개가 날아다닌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났을까. ‘너희들도 잘 견뎌냈구나’. 태풍을 오롯이 견뎠을 고양이들의 마른 등 위로 쏟아지는 햇살과 따스한 볕. 여행의 자양분은 조금씩 모여 지난한 일상을 버티어내게 만든다. 원정대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지 생각하며, 나가사키행 배에 몸을 실었다.

TIP | 알고 가자! 고토가 ‘기도의 섬’이 된 이유 육지에서 100km, 고토로 성지 순례를 오는 이유는? 개항과 선교로 인해 일본에서 가톨릭이 가장 먼저 전해진 나가사키 현은 ‘일본의 작은 로마’라고 불린다. 나가사키 전체 성당의 40%가 고토에 지어진 이유는 신자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박해를 피해 육지에서 100km 떨어진 고토 열도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1865년 나가사키 외국인 거주지에 오우라 천주당이 세워지자 숨은 기리스탄(크리스찬)이 외국인 신부를 찾아가 신자임을 고백한다. 성직자도 없이 250년간 신앙을 지켜온 이 ‘신자 발견’은 세계 종교 역사상 기적으로 불린다. 바티칸 등 전 세계의 비판에 직면한 메이지 정부는 1873년에 금교령을 폐지시킨다. 가난했던 신자들이 벽돌 하나 하나 직접 날라 성당을 지은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숨겨진 기독교 관련 유산’들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됐고, 올해 7월에 그중 일부가 공식 승인을 받았다.

고토를 여행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자세 아직 ‘고토(Goto)’에 대한 느낌이 명확하게 오지 않는가? 앱 ‘마룻토! 고토 가이드’가 전하는 ‘고토 여행법’을 소개한다. 읽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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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인천공항에서 나가사키현 사세보나 나가사키공항 또는 후쿠오카현 하카타공항까지 비행기로 1시간 20분, 나가사키현에서 신카미고토초 고토열도까지 항공기(시모고토에서 40분)나 배(가미고토 각 항구까지 약 1시간 15분~2시간 30분)로 이동 가능하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박찬은, 김민수 취재협조 ㈜엔타비글로벌]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0호 (19.01.0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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