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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부동산신탁회사 설립 붐-신한·LF “게 섰거라”…신규 12社도 출사표

  • 박수호 기자
  • 입력 : 2018.12.24 09:08:58
부동산신탁회사 시장이 뜨겁다. 3곳 인가 예정인데, 신규 설립 출사표를 낸 곳만 12곳이다. 이런 조짐은 지난 10월부터 감지됐다. 금융감독원이 10월 30일 개최한 ‘부동산신탁회사 인가심사 설명회’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일반인은 잘 알 수 없는 특정 사업군 설명회인데도 열기가 뜨거웠다는 것은 그만큼 이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부동산신탁회사가 뭐길래

▷위탁 수수료가 주요 수익 모델

부동산신탁은 부동산 소유자, 즉 건물주나 땅 주인에게 권리를 위탁받아 부동산을 관리, 개발, 처분하고 수수료를 받는 일종의 대행 사업이다. 정부가 부동산을 ‘소유’에서 ‘이용’ 개념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부동산 산업 틈새시장을 개척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인가제 형태로 도입했다. 현재 11곳이 정식 인가를 받고 영업 중이다.

이들이 그동안 주로 돈을 번 방식은 부동산 개발 시 관리형, 차입형 토지신탁 등 총 2가지다.

관리형은 말 그대로 부동산 취득, 처분 과정 등 부동산 개발 전 과정을 대리해주되 사업비는 조달하지 않고 수수료만 받는 모델이다. 통상 수수료는 전체 사업비의 0.2~0.3%를 받는다. 차입형 토지신탁 사업은 좀 더 공격적이다. 시행, 시공 등 사업자(위탁자) 대신 신탁사가 부동산 개발에 필요한 자금까지 주선해서 조달하고 준공 후 분양대금 회수까지 모두 관여한다. 건설사 책임준공까지 보증하는 책임준공신탁 사업도 여기에 해당한다. 피분양자에게 무한책임을 줘야 하기 때문에 자본력은 물론 애초 사업 성공 가능성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다. 또 사업 중 시공사 도산이나 미분양 시에도 리스크를 안아야 하는 만큼 업력 또한 중요하다. 대신 보수는 높다. 수수료율이 2%다. 500가구 신규 아파트 단지 하나를 성공시키면 약 1500억원의 사업비가 책정되는데 여기서 30억원 정도를 가져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각 부동산신탁사는 꾸준히 영업이익을 늘려왔다.

금융위가 공개한 ‘부동산신탁업 경쟁도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신탁사 업계 매출 규모는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섰고, 2013년부터 연평균 21%씩 성장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2017년 기준 각각 6705억원, 5047억원이었다. 5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연평균 35%씩 성장했다. 게다가 11곳 모두 흑자다. 최근 금융당국은 여기에 더해 3곳을 더 인가해 경쟁을 좀 더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부동산신탁 인가는 지난 2009년 무궁화신탁, 코리아신탁 2곳 인가 후 한동안 조용했다. 더불어 종전 업체들이 비슷한 사업 모델을 추진하다 보니 ‘독과점 시장’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존 업체는 지나치게 아파트 분양 위주 단순한 사업 모델만 고수했다. 신규 사업자는 자기자본, 인력·물적설비, 이해상충 방지체계, 대주주 적합성 외에도 사업 계획을 얼마나 면밀하게 차별화했는지를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아시아신탁을 인수하며 이 시장에 진입한 신한금융지주도 비슷한 논리를 댄다. 신한금융그룹은 최근 아시아신탁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지분 60%를 1934억원에 인수 확정했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11개 부동산신탁사 중 대주주가 개인 또는 소액주주 연합인 회사가 6개인데 향후 부동산 시장 전망에 따라 부실 사업장 발생 시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금융지주 고유의 비즈니스 확장성과 리스크 관리 노하우를 더해 경쟁력과 혁신성, 그리고 안정성을 두루 갖춘 부동산신탁 상품으로 차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부자’로 알려진 패션업체 LF의 코람코자산신탁 인수도 이런 맥락이다. LF는 지난 11월 말 코람코자산신탁 지분 50.7%를 1898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신규 출사표는 누가

▷NH농협금융·한국투자금융지주 적극적

신규 법인 3곳을 누가 인가받느냐를 두고도 설왕설래다.

12월 기준 참여한 곳은 12곳, 경쟁률은 4 대 1이다. NH농협금융지주·농협네트웍스, 한국투자금융지주, 대신증권, 부국증권, 신영증권·유진투자증권 컨소시엄, 키움증권·현대차증권·마스턴투자운용·이지스자산운용 컨소시엄 등이다. 인가 예정 시기는 내년 3월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인가 신청에서 종전 회사 인수 검토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인가를 받은 회사는 2년간 차입형 신탁을 제한하기로 했다는 규정이 이런 결정에 기름을 부었다는 후문이다.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한다 해도 일단 업계에서는 자본력을 갖춘 다른 금융지주사가 인가받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KB금융과 하나금융이 자회사로 두고 있고 최근 신한금융지주가 아시아신탁을 인수한 만큼 비슷한 덩치의 지주사 중 한두 곳이 신규 인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다. NH농협금융지주는 일찌감치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주도로 TF팀을 가동하고 인가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참고로 김 회장은 한국자산신탁 계열사 사외이사 등을 지내며 이 부문 이해도가 상당하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증권사 도전도 눈길을 끈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부동산 PF, 대체투자 등에서 돈을 꽤 벌어왔다. 부동산신탁은 수익구조가 수수료라 상대적으로 기대 이익률이 낮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시장에 진출하는 이유는 자금력과 부동산 투자 경험을 토대로 기존 부동산신탁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대한자산신탁, 더조은자산신탁처럼 개인이 대주주인 회사도 이번 경쟁에 가세했다. 부동산신탁업 신규 인가 관련 심사는 법률과 회계, 신탁업 등 분야별 전문가 7명(위원장 포함)이 심사, 3월에 발표한다.

▶시장 활성화될까

▷경쟁 심화 우려 불구 순기능 기대도 있어

“신탁사가 많이 늘어난다고 일감이 많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종전 신탁사 모 임원) vs “그동안 너무 위험한 개발 사업 위주로만 신탁 사업을 했는데 대안이 많다.” (신규 도전에 나선 모 회사 임원)

신규 회사 인가 발표가 되기도 전부터 견제와 우려 또한 존재한다. 반대론자들은 “부동산 경기가 이제 하강 추세로 가면 먹거리가 줄어드는데 업체만 늘어나면 과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자본력 탄탄한 금융지주사 계열이 많이 진출하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논리에 대해서도 “수수료율 높은 차입형 토지신탁에 기존 KB, 하나가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한 이유는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분쟁, 민원, 소송 등을 관리하기 벅차서다. 신규 지주계열 회사가 들어온다 해도 개발 마인드가 부족하면 결국 저수익 먹거리에만 치중하면서 시장 전체 수수료율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반박한다.

금융당국은 오히려 이런 갑론을박을 반기는 분위기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장이 충분히 형성됐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이참에 보다 발전적인 경쟁체제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장 반응은 차갑다. 한국자산신탁 등 관련 상장사는 금융당국 발표 이후 주가가 하락세를 기록했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한국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등 자본금, 누적 이익잉여금 규모가 앞서 있는 곳 중심으로는 신생 기업이 진입해도 실적 우려가 크지 않다. 2년간 차입형 진출 금지 영향도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김규철 한국자산신탁 부회장

경쟁은 환영…전문가 부족한데 인력 빼가기 우려

Q 신규 인가는 물론 대형 금융지주가 이 시장에 진출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A 부동산신탁 산업은 부동산 경기와 연동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 4~5년간 워낙 부동산 경기가 좋았다 보니 수수료 기반 신탁사도 영업이익이 났다. 게다가 저금리 시대 대안으로 대체투자가 각광받고 있어 부동산 신탁 역시 좀 더 먹거리가 많이 있을 것이란 계산으로 시장 사업자 숫자를 늘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Q 이런 시장 상황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A 한국자산신탁은 상장사다. 다른 어떤 곳보다 투명하게 경영하고 있어 시장 신뢰가 이미 높다. 더불어 자본 외 누적 이익잉여금까지 합친다면 5000억원 이상을 기록, 현금 동원력이나 신규 투자 재원이 많다. 이를 바탕으로 자산운용사, 캐피털 등을 자회사로 두며 다양한 수익원을 찾는 데 이미 많은 준비를 해뒀다. 부동산 경기가 꺾인다고 해도 다른 신탁사에 비해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추며 신규 사업자 진입에 대비하고 있다.

Q 우려되는 점은 없나.

A 인력 유출이다. 매년 공채로 10~20여명을 뽑아 부동산 금융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키워놓으면 동종 업계에서 그 연차 대비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빼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규 인가 전후로 이런 경향이 좀 더 뚜렷해질 수 있다.

Q 차별화를 위한 향후 계획은.

A 국내 시장은 포화되거나 부동산 경기 둔화로 한동안 성장이 더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도 주택 재건축 사업에는 여전히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사전 준비를 2년 정도 해왔고 새해에는 수주로 연결될 것으로 낙관한다. 더불어 해외 진출에 초점을 맞추고 동남아 국가 법인 설립 등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해외 부동산 시장에서 또 한 번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가시화될 것이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8·송년호 (2018.12.19~12.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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