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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 IPO 선택한 교보생명...협상 험로 예고

  • 배준희 기자
  • 입력 : 2018.12.24 09:09:36
  • 최종수정 : 2018.12.24 18:15:59
국내 빅3 생명보험사 중 한 곳인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에 나선다. 부채 시가평가를 골자로 한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과 금융당국의 재무건전성 강화 등으로 조 단위 자본 확충이 필요해서다. 자본 확충 관련 교보생명은 해외 채권 발행 등으로 대비해왔지만 IPO는 차일피일 미뤘다. 이 과정에서 2012년 ‘백기사’로 합류했던 재무적 투자자(FI)들과 갈등을 빚었고 이들은 ‘IPO와 무관하게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 행사에 나서겠다’고 날을 세웠다. 뒤늦게 상장 추진을 공식화했지만 FI 달래기와 공모가 산정 등 풀어야 할 숙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창립 60년 만에 IPO 결정

▷FI와 풋옵션 행사 갈등 고조

12월 11일 교보생명은 이사회를 열고 2019년 중 IPO를 추진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지난 8월 크레디트스위스(CS)와 NH투자증권을 주간사로 선정해 IPO를 검토해왔지만 9월 임시이사회에서는 결정을 보류했다. 이번 정기이사회에서도 2019년 하반기 중 IPO 추진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시장 여건을 고려해 내후년 이후로 연기할 수 있다는 ‘퇴로’ 또한 열어뒀다.

교보생명의 상장 추진은 오는 2022년 시행 예정인 새 회계기준과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때문이다. 새로운 제도 아래서 생보사들은 막대한 자본금 확충에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는 보험사 자산과 부채를 취득원가로 재무제표에 계상했지만 새 회계제도가 시행되면 이를 시가로 바꿔 기록해야 한다. 이때 지금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는 과거 고금리 저축성 상품을 많이 판매한 대형 보험사일수록 적립금을 더 쌓아야 한다. K-ICS는 새 회계제도 시행에 대비해 현 지급여력비율(RBC)을 대체하는 자본건전성 감독 기준이다. IFRS17과 K-ICS 등의 도입으로 교보생명은 2조~5조원에 달하는 자본 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교보생명은 지난해 7월 5억달러(약 5600억원) 규모 해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RBC를 약 15%포인트 상승시켰다.

자본 확충을 위해 IPO가 필요함에도 오랫동안 속 시원한 결론을 못 내고 차일피일 미뤄온 교보생명이 돌연 입장을 선회한 것은 최근 FI들의 압박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FI들은 지난 10월 말 풋옵션 행사에 나서며 신 회장을 압박했다.

교보생명은 2007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FI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번에 신 회장과의 갈등을 빚고 있는 이들은 2012년 투자를 단행한 2차 FI들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IMM프라이빗에쿼티(PE)·베어링PEA·싱가포르투자청(GIC)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신 회장은 2012년 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가 팔려 경영권을 위협당할 처지가 되자 FI를 ‘백기사’로 끌어들였다. 이때 신 회장과 FI는 ‘2015년까지 교보생명을 상장시키지 못하면 투자 지분을 되사주겠다’는 풋옵션을 주주 간 계약에 포함시켰다. 이들은 지난 9월 임시이사회에서 IPO 안건 자체가 배제되자 이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결국 풋옵션 행사라는 강공을 택했다.

▶신 회장, 득보다 실 많은 IPO

▷공모방식·낮은 PBR 등 걸림돌

우여곡절 끝에 IPO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앞으로 갈 길은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 FI들이 IPO 추진에 선뜻 동의해줄지부터가 의문이다. FI들은 교보생명의 IPO 결정 소식이 전해진 후에도 신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풋옵션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FI들의 마음을 되돌리지 않으면 사실상 IPO 자체를 진행하기 힘들다. FI 중 한 곳 관계자는 “풋옵션은 신 회장 개인을 대상으로 한 계약”이라며 “교보생명이 IPO를 결정했다고 주주 간 계약을 철회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신 회장이 되사야 할 FI 보유 지분 24%의 가치는 약 2조원으로 알려졌다. FI 측은 회계법인에 의뢰해 지분가치를 평가해 이 같은 가격을 산정했고 관련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신 회장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신 회장이 풋옵션 가격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FI 측이 제시한 가격이 행사 가격으로 결정됐다.

계약 조건상 평가보고서 제출 후 한 달 뒤인 올해 안에 신 회장은 FI 지분을 되사야 한다. 신 회장이 조 단위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신 회장은 법률상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되고 양측은 중재 소송에 돌입한다. FI 측이 승소하면 FI들은 신 회장의 교보생명 지분이나 재산을 압류, 처분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신 회장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결국 신 회장은 풋옵션 절차를 그대로 진행하면서 IPO 등 카드로 FI들의 풋옵션 철회를 설득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 때문에 자본시장에서는 신 회장 측이 FI에게 끌려다니는 식으로 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본다. FI들은 풋옵션이라는 확실한 압박 카드를 쥐고 있지만 신 회장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향후 IPO 조건 협상 과정에서 신 회장 입장은 풋옵션 철회를 끌어낼 만한 당근을 FI에게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FI들이 IPO에 동의하고 풋옵션 철회를 결정하더라도 남은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구주 매출과 신주 발행 비율 등 기본적인 구조를 어떻게 정할지부터가 난제(難題)다. FI 입장에서는 구주 매출을 통한 투자금 회수와 수익 실현이 당면 과제다. 그러나 구주 매출로만 IPO를 할 경우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힘들다. 기업공개가 FI의 차익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될 경우 시장에서 흥행을 보장하기 어렵다.

결국 FI의 차익 실현뿐 아니라 자본 확충 효과까지 얻으려면 신주 발행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30%대 중후반에 불과한 신 회장의 현 지분율로는 신주 발행에 따른 지분율 희석 효과 등이 거슬릴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헤지펀드의 공격이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신 회장 측은 신주의 상당 부분을 사들여야 할 텐데 자금 조달이나 우군 확보 등이 만만치 않은 과제다. 신주를 지나치게 많이 발행하는 것도 기존 주주 지분가치가 떨어질 수 있어 FI들이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다.

업황과 증시 부진으로 IPO 시장에서 제대로 된 몸값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역시 교보생명의 고민이다.

통상 금융사 기업가치는 순자산(자본총계)에 PBR(주가순자산비율)을 곱해 산정한다. 현재 삼성생명·한화생명·오렌지라이프 등 상위 상장 생보사의 평균 PBR은 0.54배 수준이다. 2년 전만 해도 0.8배 수준이었지만 새 회계기준 등 자본건전성 부담에 따른 투자심리 악화로 보험업 전체 밸류에이션이 낮아졌다.

올 3분기 말 별도 기준 교보생명의 자기자본(자본총계)은 9조4313억원이다. 업계 PBR을 적용한 예상 시가총액은 4조9000억여원 수준이다.

그러나 2012년 투자 당시 어피니티컨소시엄은 순자산의 0.93배 가격에 교보생명 지분을 사들였다. 이를 고려하면 IPO를 하더라도 FI들이 손실을 보지 않을 방도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가장 최근에 상장한 ING생명에 견줘본다면 투자 관점에서 교보생명이 ING생명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공통된 판단이다. 금융투자업계는 낮은 배당성향, ING생명보다 높은 고금리 계약, RBC 하락 우려 등을 불안 요소로 꼽는다. ING생명은 2013년 이후 40% 이상의 배당성향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이에 반해 교보생명의 최근 배당성향은 16%대에 불과하다.

한 자산운용사 CIO(최고운영책임자)는 “보험회사는 성장성보다 배당을 보고 투자를 한다. 교보생명이 투자 대상으로서 매력을 높이려면 현재보다 배당성향을 대폭 끌어올려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이 조건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상장을 하더라도 높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8·송년호 (2018.12.19~12.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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