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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능차 속속 성과 내는 현대차-모터스포츠·N브랜드…글로벌 시장서 두각

  • 배준희 기자
  • 입력 : 2018.12.24 09:09:42
현대차 ‘i20 랠리카’가 호주 코프스하버(Coffs Harbour)에서 지난 11월 열린 2018 WRC 시즌 마지막 대회 호주 랠리(13차전)에서 주행 중인 모습.

현대차 ‘i20 랠리카’가 호주 코프스하버(Coffs Harbour)에서 지난 11월 열린 2018 WRC 시즌 마지막 대회 호주 랠리(13차전)에서 주행 중인 모습.

최근 현대자동차가 고성능차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잇따라 거두고 있다. ‘N’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현대차의 고성능차 개발은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직접 챙기는 중장기 프로젝트다. 벤츠 등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는 핵심 기술 개발을 발판 삼아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고성능차 시장 공략을 기회 삼아 ‘가성비 좋은 대중적인 차’라는 이미지를 벗고 차별화된 브랜드 정체성을 쌓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 고성능 라인업은 기존 양산 자동차 엔진을 고출력으로 튜닝해 별도 브랜드를 붙이는, 일종의 프리미엄 차량으로 보면 된다. 지금까지 현대차의 고성능차 브랜드 N 타이틀로 선보인 차는 2가지다. N은 연구개발센터가 있는 ‘남양’과 주행 성능 테스트센터가 있는 독일 ‘뉘르부르크링’의 영문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첫째는 2017년 유럽 시장에 내놨던 ‘i30N’이다. 국내용은 2018년 6월 출시된 ‘벨로스터N’이다. i30N은 유럽에서만 판매되기 때문에 벨로스터N은 국내에서 판매되는 현대차의 첫 고성능차다.

현대차가 고성능차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크게 2가지 이유로 분석된다.

첫째는 기술력 향상과 이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차별화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BMW, 벤츠, 아우디 등은 저마다 최초·최고의 기술을 선도하며 프리미엄 브랜드 반열에 올라섰다. 벤츠는 자동차 충돌 테스트를 처음 개발해 적용했다. BMW는 최초의 자동차용 알루미늄 V8 엔진을 개발하고 남다른 주행 기술을 확보해 ‘시어 드라이빙(sheer driving·운전하는 재미)’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쌓았다. 디젤게이트로 체면을 구겼지만 아우디는 혁신적인 디젤 엔진으로 평가받는 직분사 터보 디젤 엔진(TDI)을 개발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성능차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라며 “이는 결국 브랜드 이미지 제고로 이어져 중장기적으로 다른 차량 판매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모터스포츠와 고성능차에 대한 정 수석부회장의 개인적인 애착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대학 시절 짐카나(Gymkhana·원뿔 모양 파일론을 세워두고 가장 빠른 시간에 해당 코스를 돌거나 빠져나오는 기록 경기) 대회에도 출전하는 등 전문 레이서 교육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정 수석부회장은 주요 모터스포츠 경기 결과를 빠지지 않고 챙길 정도로 애정이 깊고 전문지식도 상당하다. 이 같은 관심이 현대차의 모터스포츠 참여와 고성능차 개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모터스포츠 대회 잇단 호실적

출전 중단했던 아픈 기억 설욕

N브랜드, 국내외 판매량 선전

이런 배경 덕분에 현대차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2018년에는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올 시즌 ‘i30N TCR’로 처음 출전한 월드투어링카컵(WTCR)에서는 종합우승을 거머쥐었고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서는 현대모터스포츠가 2016년부터 3년 연속 준우승을 따냈다. WTCR은 자동차 제조사의 직접 출전은 금지하고 제조사 경주차를 구매한 프로 레이싱팀만 출전하는 대회다. 현대차는 i30N TCR이라는 경주용 자동차를 세계 프로팀을 대상으로 판매하는데 i30N TCR로 출전한 ‘이반뮐러팀’이 종합우승을, ‘BRC레이싱팀’이 종합 준우승을 각각 차지했다.

특히 WRC에서의 호실적을 보고받은 정 수석부회장의 감회가 남달랐을 터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WRC는 F1과 함께 세계 자동차 경주 대회 양대산맥으로 통한다. 이 대회는 전용 서킷에서만 진행되는 F1과 달리 세계 13개국에서 자갈길과 눈길, 산길 등을 연간 1만㎞ 이상 달려 승부를 겨룬다. 내구성과 정비 기술, 코스별 주행 전략 등이 종합적으로 버무려지지 않으면 결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이 때문에 한국 자동차 브랜드가 이 대회 1위에 오르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앞서 현대차는 2000년대 초반 WRC에 참여했지만 기술력의 한계로 출전을 중단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이후 2014년 다시 복귀해 첫해 4위에 오르며 설욕했다.

모터스포츠 성과에 발맞춰 최근 N브랜드는 국내외 판매량에서도 고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성과가 두드러지는 것은 해외 시장이다. 유럽에서 판매 중인 i30N은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시장에서만 올 들어 지난 11월까지 누적 기준 6172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미 올 한 해 판매 목표치인 2800대를 100% 이상 초과 달성했다. 특히 고성능차의 본고장 독일에서의 선전이 두드러진다. 전체 판매량 가운데 2017년 9월 판매를 시작한 독일에서만 3500대가량 팔려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해외 언론에서도 호평이 잇따른다. i30N은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의 자매지인 아우토빌트스포츠카가 선정한 ‘올해의 스포츠카 2018’에 올랐다. i30N은 2018년 6월 호주자동차연합이 주관하는 베스트카 어워드에서 ‘최우수 스포츠카’로 선정된 데 이어 11월 현지 자동차 전문 웹사이트인 ‘드라이브’가 주관한 ‘올해의 차’에서도 최고의 고성능차로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도 유의미한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벨로스터N은 2018년 6월부터 11월까지 5개월 만에 누적 판매 1035대를 달성했다. 당초 현대차는 국내에서는 아직 고성능차에 대한 저변이 부족하다고 보고 눈앞의 판매량보다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기술력 입증에 주력할 계획이었다. 벨로스터N의 판매 목표에 대해 공식적으로 함구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벨로스터N 누적 판매량이 1000대를 돌파하자 내부적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는 N브랜드가 높은 동력 성능과 주행성,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분석한다. i30N은 2.0 가솔린 터보 엔진이 탑재돼 최고 출력 275마력(PS), 최대 토크 36㎏f·m의 강력한 동력 성능과 민첩한 응답성을 자랑한다. N 모드, N 커스텀 모드를 포함한 5가지의 다양한 주행 모드를 제공한다.

벨로스터N의 3대 특장점으로는 코너링 악동(곡선로 주행 능력), 일상 속 스포츠카, 레이스 트랙 주행 능력 등이 꼽힌다. 기본 차량만으로도 트랙 위를 경주하듯 즐기며 달릴 수 있다는 것이 현대차 설명이다. 벨로스터N에 탑재된 고성능 2.0 터보 엔진은 최고 출력 275마력과 최대 토크 36㎏f·m의 동력 성능을 자랑한다. 특히 고성능에 최적화된 전륜 6단 수동변속기를 조합해 우수한 변속감은 물론 뛰어난 가속 성능을 구현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량 중 이 정도 성능을 발휘하는 모델이 대부분 중형급 이상이고 가격이 4000만원대가 넘는다는 점에서 벨로스터N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2019년은 현대차 고성능차 도약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월 12일 인사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양웅철 연구개발담당 부회장, 연구개발본부장인 권문식 부회장 등 1954년생 부회장을 퇴진시키고 알버트 비어만(Albert Biermann) 차량성능담당 사장을 연구개발본부장에 앉혔다. 현대차그룹이 외국인 임원을 연구개발본부장에 임명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고성능차 등 핵심 기술 개발에 대한 정 수석부회장 의지가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 비어만 본부장은 2015년 현대차에 합류하기 전까지 7년간 BMW의 고성능 브랜드 M의 연구소장(Head of Engineering for BMW M)직을 담당해왔다.

당장 현대차는 고성능차에 대한 저변 확산과 함께 다른 차종으로 N모델 확대 적용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이르면 2019년 중 국내에 스포츠 드라이빙을 체험하고 트랙 주행을 할 수 있는 ‘드라이빙 스쿨’을 건립한다. 현대차는 드라이빙 스쿨이 설립되면 기아차나 제네시스 등 다른 브랜드의 차도 운전해볼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N모델의 확대 여부도 기대를 모은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반 모델에도 고성능 이미지를 담은 ‘N Line’ 트림을 추가하고 순차적으로 적용 모델을 확대할 예정”이라며 “특히 국내에서는 모터스포츠 저변과 운전의 즐거움을 확대하기 위해 드라이빙 아카데미, 벨로스터N컵 대회 등을 통해 소비자들과의 교감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8·송년호 (2018.12.19~12.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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