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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겨울비가 촉촉이 내렸다. 봄비는 내리면 내릴수록 따스한 봄기운이 더 만연해진다. 그러나 겨울비는 내리면 내릴수록 겨울 한가운데로 간다. 비가 그치고 나니 날씨가 쌀쌀해진다.

미세먼지가 사라져서 좋은데 추워진다니 온몸이 움츠러든다. 기상청에서는 중부 일부와 강원도, 경기도 일부 그리고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지방에 한파주의보를 내렸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은 최저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광양 다압면 다사마을  개화한 홍매화
▲ 홍매 광양 다압면 다사마을 개화한 홍매화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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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매화나무 전지 작업을 하려 다닌다. 전지 작업을 하지 않으면 수형을 망칠 뿐만 아니라 꽃과 열매가 엉망이 된다.

필요 없는 가지를 툭툭 털어버리고 말끔해진 녀석들을 보니 '무소유'란 단어가 생각이 난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처럼 불필요한 가지를 떨어버린 녀석들. 가녀린 가지에 초롱초롱하게 달린 꽃눈이 쑥쑥 커지는 것 같다. 새해가 오기도 전에 벌써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매년 이맘때쯤 아버지와 매화나무 전지작업을 하러 다니면서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봄이면 매화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곳이 있다.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이다. 이곳에는 한겨울에 꽃이 피는 매화나무가 있다. 소학정 마을이다.
  
광양 다압면 소학정마을 개화한 백매화
▲ 백매화 광양 다압면 소학정마을 개화한 백매화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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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도 그곳을 지나가면서 힐긋 그 녀석을 쳐다보았는데 꽃이 보이진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벌써 꽃이 필 리 없지." 지난해에는 1월 4일쯤 예쁜 매화를 보았다.

한 발짝 일찍 찾아온 매화

오늘(23일)도 습관처럼 녀석을 힐긋 쳐다보면서 지나치려는데, 하얀 눈이 가지 사이에 점점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어젯밤에 분명 비가 왔는데. 설마 매화나무에 눈이 왔나 반신반의하면서 녀석에게 다가갔다.

매화꽃이 피었다. 거짓말처럼 꽃이 피어 있었다.
 
매년 만나는 매화꽃인데...아버지는 봄은 맞이한 듯 기뻐합니다.
 매년 만나는 매화꽃인데...아버지는 봄은 맞이한 듯 기뻐합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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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면 지난해에 사진 찍어 놓은 매화라고 오해할 성싶다."

함께 지켜보던 아버지는 한겨울에 핀 매화나무의 개화를 믿지 못하시는 듯했다. 매년 피는 꽃인데 왜 이렇게 반가울까. 아버지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따스한 봄날에 만나면 다정하게 정감을 나눌 수 있으려만, 볼이 얼얼한 한겨울에 녀석을 만나니 걱정이 앞선다. 북풍한설을 마다치 않고 피어나는 매화를 보니 옛 선비들의 정서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들은 녀석을 벗 삼아 굳은 지조와 사랑을 시화에 표현했으리라.
  
활짝 핀 홍매화
 활짝 핀 홍매화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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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정 마을에 하얀 매화가 피었다면 이 마을과 1km 정도 떨어진 다사마을엔 분명 붉은 매화가 피웠을 것이다. 백매와 첫 만남의 기쁨도 잠시, 오던 길을 뒤돌아 다사마을로 갔다.

주택 입구 쪽 울타리 곁에 살고 있는 매화나무에는 붉은 매화가 정말 피었다. 다른 매화나무들은 침묵을 하며 따스한 봄의 개화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 저 백매와 이 홍매는 무슨 약속이라도 한듯 꽃을 피웠다. 

찬바람에 흩날리는 홍매화의 찐한 향이 코끝에서 느껴진다. 찬 바람에 활동이 뜸한 꿀벌 한마리 꽃향기를 놓치지 않고 찾아왔다. 한 겨울에 횡재한 듯 꽃송이 사이로 분주하게 날아다닌다.

태그:#매화, #광양, #다압, #백매, #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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