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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테마가 있는 곳] 포르투갈에서 英·佛 백년전쟁이 빚은 `신의 물방울`을 맛보다

고서령 기자
입력 : 
2018-12-24 04:01:07
수정 : 
2018-12-24 10: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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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와인투어

도루강 따라 `도루밸리` 형성
루비빛 포트와인은 꼭 맛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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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는 도루강의 하류에 자리한 포르투갈 제2의 도시다.
포르투를 여행하면서 포르투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이 질문을 받았다. "와인을 한국어로 뭐라고 해요?" 그냥 똑같이 와인이라고 하면 된다고 했더니 정말이냐며, 너무나들 좋아한다. '고맙습니다'와 '와인'만 현지어로 할 줄 알면 어디서든 잘 지낼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진짜 자신 있어 보였다.) 포르투 사람들에게 와인은 그 정도로 중요하다. 끼니마다 물처럼 와인을 마시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그런 포르투에서 꼭! 정말 꼭! 맛봐야 하는 것이 바로 포트와인이다. 포트와인은 포도의 당이 알코올로 변하기 전에 알코올 도수 77도 이상의 브랜디를 섞어 만드는 와인이다. 와인 발효 과정에서 강한 브랜디를 섞으면 효모가 죽어 발효가 멈추는데, 미처 알코올로 바뀌지 못한 포도의 당 때문에 일반 와인보다 훨씬 달콤하다. 또 강한 브랜디를 섞었으므로 알코올 도수도 20도 정도로 높다. (일반적인 레드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12~14도 정도)

어디서든 이런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오로지 포르투갈 포르투(정확히는 포르투와 도루밸리 지역)에서 만든 것만 '포트와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포르투의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에는 크고 작은 포트와인 셀러(Celler, 저장소)가 26곳 있는데, 대부분 방문객들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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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하우스 포트와인 투어.
현재 포르투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포트와인 셀러인 '샌드맨하우스(Sandeman House)'를 찾아갔다. 1790년 스코틀랜드인 조지 샌드맨이 런던에서 오픈한 포트와인 회사다. 이후 1811년, 포트와인을 숙성시킬 장소로 현재의 포르투 와인 저장소를 구입했다고 한다. 이곳에선 포르투갈 대학생들의 교복인 검은 망토 차림을 한 가이드가 와인 셀러 곳곳을 보여주며 포트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왜 포트와인 하우스가 포르투가 아닌 런던에 처음 문을 연 걸까? 여기서 역사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전쟁을 벌였던 1337년부터 1453년. 프랑스에서 수입한 와인을 즐겨 마시던 영국 귀족들은 프랑스와의 전쟁 때문에 와인을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되자 고민이 깊어졌다. 허구한 날 비가 내리고 으슬으슬한 영국 땅에서 포도를 길러 와인을 빚는 건 불가능한 일. 영국인들은 프랑스를 대체할 땅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찾아낸 곳이 포르투갈의 도루강이었던 것. 도루강 상류의 '도루밸리(도루밸리는 도루강 하류의 포르투에서 차로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이 지역은 지금도 와이너리들로 빼곡하다)' 지역의 기후는 포도를 재배하기에 완벽했다. 한껏 들뜬 영국인들은 도루밸리에서 열심히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만들어 배에 실어 영국으로 보냈는데, 웬걸, 영국으로 가는 동안 배 안에서 와인이 다 상해버리고 만 것이다.

어떻게 하면 와인이 상하지 않게 보존하면서 영국까지 운반할 수 있는지를 고민고민한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포트와인이다. 발효 중이던 와인에 높은 알코올 도수의 브랜디를 섞어서 효모를 다 죽이고 와인이 더 이상 발효되지 않게 한 것. 브랜디가 거의 방부제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포트와인은 전쟁 중에도 와인을 마시려는 영국인들의 대단한 집념이 만들어낸 술이랄까. 아무튼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맛있는 포트와인을 마실 수 있으니 그 당시 영국인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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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레드와인도 아니고 루비, 토니 와인은 뭐냐고? 쉽게 말하면 색깔에 따라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루비는 말 그대로 영롱한 붉은빛 루비색을 띤다. 영어로 '갈색'이라는 뜻인 토니(Tawny)는 어둡고 붉은 갈색빛이다. 루비는 어린 포트와인 몇 가지를 블렌딩해 최장 3년 정도만 오크통에 숙성시킨 후 병입하는 와인이다. 과일향이 많이 나고 강한 맛을 가졌기 때문에 식후에 초콜릿, 치즈케이크 등 디저트와 함께 마시기 좋다.

토니는 몇 가지 빈티지 와인을 블렌딩해 짧게는 3년, 길게는 40년까지 오크통에 숙성시켜 병입하는 와인이다.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루비처럼 강한 맛은 옅어지고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이 많이 난다. 애플파이, 아몬드파이, 말린 과일 등을 곁들이면 좋다.

포트와인은 1리터당 설탕이 100g 정도 들어있는 것과 같을 정도로 꽤 고칼로리다. 그래도 괜찮다. 포르투는 걷기 좋은 도시니까. 많이 마시고 많이 걸어 다니면 0칼로리! 그렇다고 술 취해서 걸어 다니지는 마시길. 음주는 적당히.

[포르투(포르투갈) = 고서령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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