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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영칼럼] 협력이익공유제는 무리수

  • 홍기영 기자
  • 입력 : 2018.12.24 11:00:29
대기업 이익 일부를 중소기업에 나눠주는 ‘협력이익공유제’가 뜨거운 감자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다. 대기업이 협력사와 함께 신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해당 업체에 배분하는 제도다. 정부는 시행 대기업에 법인세 감면과 정책자금 우대 혜택을 준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재계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고 주주이익을 침해하는 처사라며 의원입법에 강력히 반발해 귀추가 주목된다.

협력이익공유제는 ‘메커니즘 디자인’이라는 경제학 이론에 기반한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주인-대리인 문제나 정보 비대칭성에 따른 시장 실패 때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기업 간 거래의 진실을 알아내고 과격한 방법 대신 합리적인 방식으로 쌍방이 만족하는 해법을 찾아내는 시도다. 정부는 모든 거래가 아니라 혁신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대·중소기업이 계약을 맺고 가치를 창출해 서로 나누도록 제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사실 시장 실패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하도급 거래에서 주로 발생한다. 휴대폰이나 자동차 메이커인 대기업이 부품을 발주하는 경우, 갑을의 역학관계가 납품 단가를 좌우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제품 생산 계획에 맞춰 설비투자에 나서는데 발주처가 부품을 사주지 않으면 꼼짝달싹 못하게 되는 ‘홀드업’ 문제에 봉착한다. 계약이 갑자기 변경되거나 거래가 끊기는 경우, 약자인 중소기업은 위험과 손실을 몽땅 떠안게 된다. 협력이익공유제는 이론적으로 중소기업이 혁신투자를 늘리고 대기업도 이익을 얻는 상생 모델이 될 수 있다.

현행 성과공유제와는 취지가 같지만 방식은 다르다. 성과공유제는 대기업이 원가 절감, 품질 향상에 따른 직접적 이득만 중소기업과 나누는 방식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제조원가가 노출되면 대기업이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나설 수 있어 중소기업이 기피하는 측면이 있다. 성과공유제를 실행하는 대기업은 91곳, 중소기업은 329곳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협력이익공유제는 매출액과 영업이익 등 재무적 성과만 인정한다. 납품 물량을 늘려주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고 현금 배분만 가능하다.

성과공유제를 업그레이드하는 협력이익공유제는 현실적으로 여러 맹점을 갖는다. 대기업은 사적 이익을 강제적으로 나누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 원리를 부정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를 주주이익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본다. 정부가 법제화를 강행할 때는 부품 구매처나 사업기지를 해외로 옮길 수밖에 없다는 강경 입장도 나온다. 금리와 환율, 유가, 원자재 가격 등 대내외 변수가 급변하는데 수많은 기업이 함께 매출액과 영업이익 목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다. 특히 재무적 성과에는 협력업체의 기여도뿐 아니라 전략·생산·재무·마케팅 전반에서 일어나는 대기업 스스로의 혁신활동 결과가 담겨 있다. 수많은 협력사별 기여도는 측정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탁상행정의 폐해가 걱정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협력이익공유제에 대해 일단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시행 과정에서 1차 협력업체와 2, 3차 협력업체 사이에 양극화가 심화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도 우려된다. 중소 제조업체 가운데 이미 대기업과 협력하는 업체에만 특혜를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특혜를 받는 중소기업은 기존 거래에 안주하거나 진입장벽을 만들 수도 있다. 협력이익공유제는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시행돼야 한다. 법제화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참여를 강제하기보다는 당근을 줘 자율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은 최근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며 제조업 부흥을 주문했다. 공약도 현실에 맞게 수정·보완해야 한다. 또 다른 정책 실패를 예방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9·신년호 (2018.12.26~2019.01.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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