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자의 여행
니컬러스 스파크스 지음·이리나 옮김
마음산책 | 416쪽 | 1만5800원
처음엔 가벼운 여행 에세이라 생각했다. <노트북> <병 속에 담긴 편지> 등을 집필해 할리우드 베스트셀러 제조기라고 불리는 저자는 어느날 우편함에 꽂힌 3주짜리 세계일주 전단을 보고 형과 함께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한다. 3주에 호주, 페루, 에티오피아 등을 도는 패키지 여행이 구도, 깨달음 따위를 거론할 만큼 거창할 리 없다. 그들은 리마의 이국적인 바에서 TV로 슈퍼볼 경기를 보고, 프놈펜의 킬링필드 전시관을 둘러본 직후엔 벼룩시장 쇼핑 일정을 따른다.
하지만 이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성공한 백인 남성 소설가’는 여행담 곁으로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크게 다쳐도 병원에 가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 연이은 부모님의 사고사와 뇌종양으로 인한 여동생의 죽음, 소중한 아들의 자폐증까지. ‘일부러 소설 속 주인공에게 부여된 시련’이라 해도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고 손사래 칠 만한 일들의 연속 가운데 그는 여행지의 한 해변에서 성서 고린도전서의 한 구절을 읊는다. “너희가 감당 못할 시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삶은 감당할 만한 일들과 감당치 못할 일들의 연속이다. 어떤 불행은 상처 이후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억지로 지어낸 미소는 의외로 삶을 한결 살 만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여행기가 유쾌하고 부질없어 보일수록 그가 견뎌온 삶의 무게는 판에 새긴 무늬처럼 도드라진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지금, 이 책을 여행에 대한 에세이보다는 삶에 대한 에세이로 바꾸어 부르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