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문학에 각인된 욕망의 땅, 서울

이영경 기자

서울탄생기

송은영 지음

푸른역사 | 568쪽 | 2만9000원

[책과 삶]문학에 각인된 욕망의 땅, 서울

“서울은 넓다. … 이렇게 넓은 서울도 삼백칠십만이 정작 살아 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집은 교외에 자꾸 늘어서지만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일자리는 없고, 사람들은 입만 까지고 약아지고, 당국은 욕사발이나 먹으며 낑낑거리고, 신문들은 고래고래 소리나 지른다.”

소설가 이호철이 1976년 발표한 <서울은 만원이다>는 당시 서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소설 속 서울의 모습은 현재 서울의 이미지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압도적인 도시의 크기, 인구의 과잉, 일자리와 주택의 부족….

저자는 현재 서울의 토대가 1960~1970년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빠른 경제성장과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이촌향도’의 급류 속에 서울은 거대해지고, 과밀화되고, 건물과 도로가 지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몰아냈다. 국문학자인 저자는 문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작가들이 포착한 서울의 모습을 통해 서울이 현대도시로 탄생하는 역사적 과정을 추적한다. 김승옥, 최인훈, 박완서, 이문구, 이청준, 윤흥길, 조세희 등 작가 16인의 소설 110편을 분석해 1960~1970년대 서울의 축도를 그려냈다.

서울의 탄생과정을 추적하는 데 허구의 장르인 소설을 이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 텍스트에는 사람들의 일상, 욕망, 의식과 무의식 등을 비롯한 일상적 삶의 세계부터 특정한 공간을 선택하고 재현하는 방식과 결합된 정치적 지향성과 이데올로기의 심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가 숨어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 책의 목표를 “서울을 재현한 문학 텍스트라는 ‘육체’에 각인된 ‘감수성의 고고학’”이라고 밝힌다.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도시 서울에서 이제 저편으로 사라진 기억들은 1960~1970년대 문학 작품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책은 두 가지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나는 서울의 역사적 변화를 날카롭게 짚어내는 지은이의 통찰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60~1970년대 작가들이 얼마나 예민하게 당시의 시대를 포착해냈는지를 보며 ‘과거의 텍스트’를 재발견하는 기쁨이다.

총 3부로 이뤄진 책은 1부에서 1961~1966년 본격적 도시개발이 이뤄지기 전의 시기를 다룬다. 이 시기 인상적인 것은 서울을 향한 맹목적인 동경이다. 서울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해 1960년 244만명에서 1966년 379만명에 달했다. 저자는 본격적 경제개발이 이뤄지기 전인 이 시기에 이촌향도를 추동한 것은 경제적 요인만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경제적·문화적·정서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욕망의 집결지’로 서울이 기능했다는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은 이를 상징하는 텍스트다. ‘무진기행’에서 윤희중과 사랑을 나눈 하인숙은 “서울에 가고 싶어요, 단지 그거뿐이에요”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기저엔 ‘서울’이 있었다. 저자는 ‘무진기행’이 유명해진 배경엔 1960년대 중반 독자들이 공유했던 ‘서울에 대한 갈증’에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이어 이 작품이 ‘무진’을 서울보다 열등한 공간으로 배치함으로써 “서울과 지방 간의 상징적 위계질서”를 만들어냈다고 평한다.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찍은 사진작가 전민조의 사진이다. 상류층 아파트의 대명사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농부를 대비시킨 구도로 두 공간의 계급적 차이와 시간적 거리를 동시에 보여준다. 푸른역사 제공

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찍은 사진작가 전민조의 사진이다. 상류층 아파트의 대명사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농부를 대비시킨 구도로 두 공간의 계급적 차이와 시간적 거리를 동시에 보여준다. 푸른역사 제공

2부에선 서울에 도시개발의 광풍이 몰아닥친 1966~1972년을 다룬다. 김현옥 시장이 취임해 ‘불도저’식 도시개발 정책을 펼치면서 서울엔 대대적 변화가 도래한다. 김현옥은 서울 시내 주요 도로를 깔았고, 한강·강남·여의도 개발도 그의 손에서 시작됐다. 400동의 시민아파트를 짓고, 빈민들을 서울 외곽 변두리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다. 당시 재개발 정책으로 밀려난 도시 빈민들의 삶은 ‘와우아파트 붕괴’를 소재로 삼은 최인훈의 ‘하늘의 다리’(1970), 경기도 광주대단지로 강제 이주된 도시 빈민들이 민란에 가까운 소요를 일으켰던 광주대단지 사건을 그린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에서 나타난다.

3부에선 강남개발이 본격화된 1972~1978년을 다룬다. 박완서의 <낙토의 아이들> 등을 통해 당시의 강남 도시 경관과 중산층의 일상생활과 이면의 허위의식을 읽어낼 수 있으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생존의 위협을 받는 도시 빈민의 처절한 상황과 당시 계급투쟁의 장이된 서울 빈민지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은 굵직한 서울의 변화를 읽어내는 동시에 문학을 통해 당시 생활상의 변화와 도시민의 의식을 세밀하게 복원해낸다. 일례로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통행금지제도는 ‘전쟁’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통행금지가 가까워지면 모든 사람이 조급해진다. … 피란민들이 마지막 열차에 매달리는 풍경이다. ‘막차’ 그렇다. 이리하여 6·25의 얼굴은 밤마다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는 소설 속 구절을 인용하며 ‘빨리빨리’라는 한국인의 습성의 기원은 전쟁에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서울의 개발이 역사에 대한 자기성찰 없이 서구의 미디어와 관광객의 시선, 때로는 체제 경쟁을 해야 하는 북한 사람들의 시선, 서구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내부인의 시선에 의해 이뤄졌다고 이야기한다.

동시에 서울의 문제를 국가의 개발주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으며 “서울 사람이 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얼마간 동조자이자 공범자”였다며 현재 우리를 향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상당수 국민이 국가 폭력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도, 동시에 위장전입과 학벌주의를 당연시하고 부동산 투기 마인드로 집 구입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당연한 상태”에 빠진 우리에게 문학은 자기성찰의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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