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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빌라 사보아-사람이 살아 더 빛나는 디자인

입력 : 
2018-12-20 09: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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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인간의 생활을 담는 기능적 그릇이다.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의 편리를 위해 건축가들은 조물주처럼 삶과 자연환경을 살펴 왔고 놀라운 지능으로 시설과 동선을 구축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그 이름도 유명한 르꼬르뷔지에다. 그가 디자인한 건축물 빌라 사보아에 대한 색다른 전시가 열렸다. 건축이 왜 사람과 가장 친밀한 디자인인지 단박에 알려주는 그런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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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꼬르뷔지에는 혁명가다. 단순한 건축가라고 하기엔 인간의 삶에 끼친 영향이 너무 크다. 그가 설계 디자인을 할 때 줄창 부르짖었다는 ‘집은 삶을 담는 기계’라는 문장은 전 세계인을 두부모처럼 반듯하게 나눠 담은 ‘아파트’라는 형태로 지금까지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그의 수많은 건축물, 그러니까 건축 순례를 다니는 사람들의 성지인 빌라 사보아, 씨트로앙, 유니테 다비타시옹 등엔 그의 고집스런 기능주의가 담겨 있다. 그는 기능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주거 공간을 설계할 때 다섯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게 바로 현대 건축의 5요소다. 향후 100년간 현대 건축을 대표하게 된 그 구조는 한마디로 ‘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둥이 중요하다’는 것. 철근 콘크리트 기둥들이 모서리를 지지하는 반듯한 사각형의 구조. 이 발상의 전환이 유럽과 나아가서는 전 세계 건축을 뿌리째 바꿔 놓았다. 그는 또한 이를 위해 다섯 개의 구체적인 디테일을 설파했는데, 그 첫째가 ‘필로티’다. 필로티는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대신 땅에서 떨어져 있어 공간을 만든다. 이를 주차장이나 여가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 외에 자유로운 평면, 해가 훨씬 잘 드는 수평 창, 건축가가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는 입면, 그리고 옥상 정원을 강조했다. 이전까지의 고정 관념을 산산조각 낸 상상조차 못 하던 디자인 디테일! 건축 순례자들에게 그의 작품이 성지가 된 것은 이 현대 건축의 5요소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론가가 아니었다. 입으로 뱉은 논리는 현실에서 반드시 구현해 내고야 마는 실천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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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꼬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 장 마크 사보아, 장 필립 델롬 저. 오부와 펴냄
이번에 효자동 the reference에서 열린 ‘르 꼬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 전은 그의 5대 요소를 모두 집약한 파리의 빌라 사보아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건 건축전이 아닌 건축전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전시는 건축의 탈을 쓴 그림일기다. 빌라 사보아는 건축의 5대 요소를 그대로 반영해 만들어진 기능적 조합이지만 심미적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다. 그만큼 완벽한 비율로 아름다움을 뽐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절색의 건축물은 사연이 많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940년에서 1945년까지 독일군에게 점령당했고 형태를 알 수 없게 훼손됐다. 이후 창고로 쓰이다 1960년 철거 명령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시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나서 빌라 사보아는 구사일생으로 복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구구절절한 사연이 그림책으로 엮여 나왔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장 필립 델롬에 의해 말이다. 그는 지난 90년간의 빌라 사보아의 역사를 붓끝으로 되살렸다. 그림 속의 사보아 부부, 그리고 르꼬르뷔지에는 한마디로 아름답다. 간결한 라인, 바다 위에 솟은 한 척의 배 같은 위풍당당한 흰 공간, 구조와 소재의 세련됨. 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는 건축가와 건축주. 그래서 이 전시는 디자인이란 사람의 온기를 입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대명제를 증명한다. 특별하고 소중한 디자인 전시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오부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9호 (18.12.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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