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문화

겨울엔 남쪽에서 놀자…구불구불 남해 여행

입력 : 
2018-12-20 14:25:21

글자크기 설정

서울에서 KTX를 타고 여수에 도착한 나는 여수와 순천 여행을 끝내고 곧장 남해로 향했다. 여행지로서의 남해는 동선이 재미있다. 남해는 높은 산이 많고 해안선은 구불구불하다. 산이 많다 보니 직선상 가까운 지역도 한참을 돌아가야 도달할 수 있다. 동해안이나 제주처럼 바다에 바짝 붙어있는 도로가 없어서 경관이 더욱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다. 그래서 남해를 다 둘러볼 사람은 시간을 충분히 갖고 계획을 세우는 게 좋고, 한 곳을 콕 찍어 그곳에만 머무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나의 목적지는 남해금산의 보리암과 금산산장이었다.

사진설명
▶해탈의 시선 보리암 삼국시대 때 창건된 많은 사찰에 원효대사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해발 약 681m 금산 꼭대기에 위치한 이곳 보리암의 역사 또한 원효대사가 함께하고 있다. 서기 683년 신라 31대왕 신문왕 3년에 원효대사가 남해금산 꼭대기에 올라 움막을 짓고 수행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관세음보살을 만나자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명명하고 절을 지어 ‘보광사’라 불렀다. 남해 금산은 바위가 많고 높은 산이니 당시 보광사 건축에 참여한 사람들의 보시, 아니, 고달픔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원효대사의 보광사가 보리암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 현종 때인 1660년의 일이었다. 이유는 조선의 건국과 관련이 있다. 이성계는 조선을 창건하기 직전 보광사에 올라 백일 기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기도를 마치고 조선의 개국을 선포했다는 것은, 이미 역성 혁명이 성공했고 개국 준비의 마지막 단계로 ‘기도’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종은 보광사에 이성계의 기도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고 보광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은 뒤 보광사 이름도 ‘보리암’으로 개명하도록 했다.

보리암에 오르는 첫 번째 방법은 상주면에 있는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는 등산이다. 1코스를 선택하면 보리암까지 1시간 15분쯤 걸린다. 보리암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방법을 선택하는 게 좋다. 하지만 경사가 심한 편이어서 등산 경험이 없는 사람에겐 권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겨울이다. 또 다른 방법이자 가장 흔한 접근법은 마을버스이다. 보리암 입구 주차장이자 셔틀버스가 운행하는 복곡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를 타거나, 여유가 있는 경우 금산 정상 부근, 보리암 초입 복곡 제2주차장까지 승용차로 오르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곳이 국립공원이라는 점, 정상 부근 주차장의 혼잡 등을 생각한다면 역시 복곡주차장에서 셔틀을 이용하는 게 무난하다. 간혹 주차장에서 걸어서 정상까지 오르는 여행자들도 만날 수 있다.

나는 오전 10시쯤 복곡주차장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이미 도로는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대기 승용차로 가득, 결국 3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주차비는 소형차 기준 4000원이고 마을버스 요금은 왕복 2000원이다. 보리암이 있는 금산 일대는 국립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주차장과 매표소 곳곳에는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꽤 멋들어진 아웃도어 웨어를 입고 활동 중이었다. 10분쯤 달렸을까? 보리암 초입 주차장에서 내린 승객들은 다시 보리암 입장료 1000원을 내고 오솔길을 걸어 오늘의 목적지를 향했다. 차를 갖고 가고, 마을버스를 이용해 보리암까지 도달하는데 비수기 기준 7000원이 소요되는 셈이다(성수기 때는 8000원).

마침내 보리암에 도달했다. 보리암에서 남해를 내려다 보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도대체 이런 고산준령 바위산에 어쩌자고 절을 세웠단 말인가! 아무리 보아도 비현실적인 공간들, 단정한 가람들, 그리고 저 멀리 남해에 또박또박 서 있는 섬들과 웃는 입 모양의 남해상주해수욕장의 모습들에서 이미 마음의 위안은 받고도 남음이 있었다. 물론 인파 역시 대단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떠드는 소란은 소란을 너머 아예 묵음의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보리암은 깎아지르는 절벽 위에 있는 절 치고는 가람이 꽤 많은 편이다. 대웅전 격인 ‘보리암보광전’은 기록상 보리암 최초의 전각이지만 지금 보이는 건축물은 1968년에 중건하고 2000년에 중수한 것이다. 보광전에 모신 주불은 서천축 아유타국 허공주가 모시고 왔다고 전해지는 관세음보살(좌보처 남순동자, 우보처 해상용왕) 삼존상이다. 목조관음보살좌상불감은 2015년 1월15일 경남 유형문화재 제575호로 지정되었다. 보광전 앞에는 설법당인 ‘예성당’이 있다. 사찰의 설법당에 가면 기둥에 써놓은 말씀, ‘주련’을 유심히 읽게 된다. 어느 사찰에 가도 주련의 내용은 선하고 심오하며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무엇보다, 주련이 그 사찰의 개성을 나타내는 문장들이라 사찰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보리암 주련

사 바 극 락 자 재 유 沙婆極樂自在遊

사바와 극락 세계를 자유자재로 거니시며

재 시 법 시 무 외 시 財施法施無畏施

재물과 법을 가리지 않고 베푸시고

수 연 득 도 무 량 중 隨緣得度無量衆

한량없는 중생을 인연 닿는대로 구하시니

각 득 기 소 성 보 리 各得其所成菩提

바라는 바 깨달음을 모두 이루게 하시네

잠 시 첨 앙 제 번 뇌 暫時瞻仰除煩惱

잠시 동안 우러러 보는 것만으로 번뇌가 모두 없어지니

일 심 억 념 수 원 성 一心憶念隨願成

한 마음으로 생각하면 원하는 것을 이루리라

천 수 천 안 자 비 력 千手千眼慈悲力

천수천안의 자비하신 힘으로

무 차 평 등 함 해 탈 無差平等咸解脫

차별없이 평등으로 모두 해탈케 하시네

사진설명
어려운 한문이고 생소한 단어들이라 금세 와닿진 않지만 자유, 재물, 베풂, 인연, 구도, 바람, 깨달음, 번뇌, 이룸, 자비, 평등, 해탈 등의 뜻만 생각해도, 이 여덟 구절에서 우리의 삶과 바람, 심지어 탐욕과 욕망까지 모두 받아들이고 아우르는 넉넉함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산과 계곡과 바다, 그리고 인간 세상이 한 눈에 들어오는 금산을 닮은 문구들이 아닌가. 보광전 뒤쪽에는 산신각이 있다. 현판에는 산령각이라고 써 있는데, 무엇이든 상관없다. 보리암이 산에 있으니 산신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또한 자신과 가족, 친구,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장소다. 극락전은 보리암 가람 가운데 가장 큰 집으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불로 모셔져 있다. 2000년에 완공된 가람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원불을 모신다 해서 만불전이라고도 한다.

보리암전3층석탑은 가야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돌아올 때 풍파를 만나 물길이 막혀 고난을 겪다 이 탑을 싣자 뱃길이 열려 무사히 돌아갔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원래 가야 본거지였던 현재 김해시 구지봉 호계사에 봉안되었던 것을 원효대사가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전해진다. 오래 전, 그 옛날옛적에,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보리암을 찾는 불자가 가장 많이 가는 곳은 해수관세음보살상이다. 보리암 불자가 기증해 헬리콥터로 운반해서 세워진 이 불상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한다.

사진설명
▶보리암 못지 않은 공력의 공간 ‘금산산장’

보리암을 빠져 나와 금산 정상을 향해 걷는다. 정상까지는 200m. 정상 근처에는 부소암, 두모입구, 단군성전, 금산산장 등이 있다. 금산산장은 백만 불짜리 뷰를 지닌 국내 최고도 절벽 산장이다. 대체 누가, 언제, 이곳에 이런 유럽 성같은 산장을 만들었을까. 알아보니, 이곳은 원래 비구니 전용 암자였다고 한다. 수백 년 동안 도량으로 이용되어 오던 곳이 왜 개인에게 팔렸는지 그 연유는 아직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일제시대 때 개인이 암자를 사 산장으로 영업을 시작한지도 100년이 되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산장이라 숙박은 물론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다. 얼마 전까지는 막걸리 등 술과 질펀한 안주도 팔았지만 금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산장 영업과 관련된 법률도 바뀌면서 이제 금산산장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다. 물론 흡연도 금지다.

산장 안방에는 할머니 두 분이 앉아 계신다. 두 분 모두 40년 넘게 산장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다. 높은 산, 맑은 물,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상주군과 바다의 섬들, 일 년 내내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 소리 영향일까? 내가 산장에 머문 30분 남짓 동안 두 사람의 노래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늘 기분이 좋은 상태이신가 보다.

사진설명
산장에서 파는 음식은 해물파전(1만 원), 메밀김치전병(1만 원), 나물볶음밥(7000원), 컵라면(3000원), 식혜(3000원), 캔커피(3000원), 사이다(2000원), 콜라(2000원), 생수(1000원)가 전부다. 산꼭대기에서 이 정도 메뉴면 훌륭하고 가짓수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은 직접 할머니들에게 해야 하는데, 계산은 현금으로만 하고 테이블로 가져가고, 다 먹으면 지정된 장소에 반납하는 일은 손님이 해야 한다. 음식은 커다란 둥근 쟁반에 올려주는데, 먹기 전 쟁반을 들고 아찔한 바위들과 계곡, 먼 바다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것은 SNS 이웃에 대한 미덕이기도 하다. 음식 맛은 개인에 따라 평가가 천 가지 만 가지다. 등산을 한 사람에게는 모든 게 꿀맛이고, 먹방이 취미인 사람에게는 ‘분위기 맛에 먹기’이기도 하고, 그냥 마을버스 타고 올라와 요기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남해의 특별한 동네들

‘독일마을’은 관심과, 부담이 동시에 일어나는 마을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라 독일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니 관심이 가기도 하지만, 그곳이 오롯한 관광지만도 아닌,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사시는 동네라 시끄럽게 웃고 떠들기는 다소 미안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독일마을은 메인 스트리트 주변은 음식점 중심의 상업지역으로, 그 이외의 지역은 펜션을 겸한 거주지로 조성되어 있다. 독일마을은 독일식 가옥에 머물며 독일 문화를 접하고, 가까운 바다와 농촌 풍경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매력적인 여행지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독일마을은 1960년대 독일로 돈벌이 하러 떠났던 분들의 역이민, 재정착, 투자 등을 위해 남해군에서 조성한 마을이다. 그들이 어떻게 그 옛날 독일까지 가게 되었는지, 현지에서의 삶은 어땠는지 등은 독일마을 맨 꼭대기 광장 ‘도이쳐 플라츠’에 있는 ‘파독전시관’에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독일마을 중심 도로변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문을 열고 있는데, 점심 시간이라 그런지 집집마다 적지 않은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독일마을 오리지널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도이쳐 플라츠에 위치한다. 이름은 ‘도이쳐 임비스’. 임비스는 독일어로 ‘포장마차’를 뜻하는데, 이곳에서는 독일 정통 소시지와 맥주를 남해 특산물인 유자, 흑마늘, 멸치 등과 조합해서 판매하고 있다. 독일 가정, 주택, 정원을 체험하고 싶다면 독일마을에 문을 열고 있는 41곳의 펜션에서의 숙박을 권한다. 단, 독일마을 홈페이지에서 한 집 한 집 확인을 한 뒤 취향에 맞는 집을 선택하는 게 좋다.

사진설명
사진설명
독일마을은 자생적 마을이 아닌, 남해군의 마케팅에 의해 형성된 곳이다.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래서일까? 남해군에는 ‘미국마을’도 있다. 독일로 재미 본 남해군이 이제 ‘역이민 가정’ 유입을 위한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러다 남해 일대에 일본마을, 중국마을, 영국마을도 생기는 건 아닐지…. 미국 마을은 이동면 용소리 일대에 조성되었는데, 미국식 주택에서의 숙박 외에는 상업지구가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조용하고 따뜻한 남해의 풍경을 만끽하며 지낼 수 있는 환경으로 조용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식 목조주택 건축을 원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꽤 많이 이어지고 있다. ‘들꽃효소마을’은 남해에 조성된 마을 가운데 가장 특화된 마을이라 할 만하다.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 이곳은 ‘발효효소’를 기반으로 남해 특유의 깨끗한 자연과 풍광을 건강과 치유 프로그램으로 조합한 체험형 힐링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단순한 ‘숙박’, 또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구체적으로 배우고 만들어 보는 ‘체험’, 그리고 건강을 위한 본격 프로그램인 ‘단식’ 프로그램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숙박은 건강 주거 웰니스 건축 재료의 정점에 있는 ‘생황토’와 ‘편백’으로 지은 펜션 형태다. 이용 시기와 객실 크기에 따라 일박에 8만 원에서 35만 원이다. ‘체험프로그램’에는 ‘디톡스 힐링여행’, ‘힐링캠프’, ‘체험활동’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디톡스 힐링여행’은 신체의 자가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비우고 채우는 프로그램’이다. 장 건강, 만성 피로, 잦은 감기, 스트레스, 체내 독소 누적 등이 염려되는 사람들의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뉴라이프 힐링캠프’는 난치병 전문의인 김진목 박사(부산의대 통합의학센터 협진의)가 주도하는 니시의학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힐링체험프로그램’은 남해 여행자 또는 지역 시민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천연허브식초 만들기’, ‘차가버섯비누 만들기’, ‘천연소이캔들 만들기’, ‘발효액 만들기’, ‘공장견학과 건강강의’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단식프로그램은 마을 내 ‘뉴라이프 단식원’에서 실시한다. 1단계로 ‘피를 맑게 하는 단식 프로그램’, 2단계 ‘장을 건강하게 하는 생채식 프로그램’, 3단계 ‘평소관리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설명
사진설명
▶남해편백자연휴양림 건강한 생태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축복이다. 전국의 휴양림들이 그런 건강 보물들이다. 특히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최근 최고의 수종으로 인정받고 있는 편백나무가 가득한 숲이라는 점, 산책로가 개방(주차 유료)되어 숙박객이 아니라도 누구나 편백 숲의 은총을 심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산책로 정상에 오르면 남해바다가 눈 앞에 펼쳐져 있어서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곳이다. 요즘 휴양림 여행의 대세인 ‘숲 해설 프로그램’ 역시 운영 중이다. 일반이용객의 정기 해설은 1일 2회 운영하며, 숲 해설 예약이나 단체 고객의 요청이 있을 시 협의를 통해 수시 참가가 가능하다. 코스는 30분, 60분 두 가지가 있다. ‘목공체험’도 휴양림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 나뭇잎 향기 체험하기, 편백나무 구별법, 책갈피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예약 필수로 휴양림 숙박은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예약 사이트에서 이용 가능하다.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이영근, 남해군청 웹사이트 발췌]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9호 (18.12.25)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