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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ghdad in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처럼 중독된다!

입력 : 
2018-12-20 14:30:00
수정 : 
2018-12-27 1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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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바그다드는 무채색 도시로 등장한다. 의인화하자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입을 닫는 과묵함, 삶의 무게에 찌든 얼굴 그러면서도 여전히 하루가 시작되면 일상으로 복귀하는 보통의 사람과 같다. 희로애락, 도시는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여 있는 연극 무대 같다. 이것을 바그다드가 표현할 수 있다면…. 바그다드는 굵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도시와 그 도시에 사는 모든 이의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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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일상이 되어 버린 도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고대부터 ‘마디나트 알 살람’, ‘평화 도시’라 불리던 바그다드는 이슬람 제국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로서 역사성을 자랑하던 이 도시의 현재 인구는 약 390만 명이다. 21세기 초만 해도 바그다드는 인구 880만 명의 큰 도시였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만에 인구가 반 토막 날 정도로 도시는 기능을 상실했고 사람들은 떠났다. 그 이유는 전쟁. 사람들은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과 두 번의 전쟁, 종교 갈등, 내전 등이 지속되면서 바그다드는 삶의 도시에서 피의 도시가 되었다. 민간인 사상자 수는 최대 1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이라크와 바그다드는 ‘전쟁의 참혹한 선물’인 가난, 학살, 폭력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서기 750년, 압바스 왕조의 통치 거점이던 바그다드. 바빌론, 크테시폰, 다마스쿠스와 함께 이슬람 제국에 새로운 중심이 된 바그다드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이 흐르고 인류 최초 문명인 수메르의 숨결이 남아 있는 이슬람의 심장부였다. 당시 바그다드 인구가 무려 200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10세기에 들어 압바스 왕조가 분열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셀주크투르크의 지배, 몽골 제국의 공격, 오스만투르크의 지배 등을 거치면서 바그바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다 20세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끝으로 바그다드는 ‘석유의 부’를 바탕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슬람 제국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막대한 부를 총과 탄약을 사는 데 지불했다. “2등 국가가 1등 국가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전쟁이 벌어진다”는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굳이 거론치 않아도 후세인의 야심은 주변국의 경계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미국은 결코 이라크를 자신의 맞상대로 여기지 않았지만 ‘미국식 질서의 거부자’로 인식한 것은 분명하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분명하게 구분하지만 전쟁의 상처는 인종, 피부색, 군복의 경계를 넘어선다. 전쟁은 군인은 물론 전쟁지의 모든 생명체에게 상처와 폐해를 끼치는 강력한 전파력을 갖고 있다. 그 상처는 다양하게 드러난다. 신체적 장애, 트라우마, 폭력성, 무기력 등이다.

영화 ‘허트 로커’는 전쟁의 참혹함을 묵묵하게 보여 준다. 과장하지도, 아프다 고함치지도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과 함께 밀려오는 전쟁에 대한 거부감은 그 크기가 만만치 않다. 무대는 바그다드. 세 명의 미군 폭발물 제거팀이 미국으로 귀환하기 38일 전부터 겪는 일을 다큐 형식으로 담아냈다. 극도의 위험을 즐기는 제임스, 유능하지만 원칙주의자인 샌본, 심약하고 허당인 병사 엘드리지, 이 팀원들은 각자에게 다가온 똑같은 전쟁을 자신만의 프리즘과 필터로 정제해 마음에 보관한다. 그것은 모두에게 상처지만 영화는 그 상처를 받아들이는 자세의 섬세한 차이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물론 이들뿐이 아니다. 평범한 이라크 인, 어린아이, 현상금 사냥꾼, 자살 테러리스트 그리고 무심하게도 폭탄이 설치된 곳에서 불과 수십 미터 옆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이라크 인이 등장한다. 그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갈림 또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 바그다드는 무채색 도시로 등장한다. 의인화하자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입을 닫는 과묵함, 삶의 무게에 찌든 얼굴 그러면서도 여전히 하루가 시작되면 일상으로 복귀하는 보통의 사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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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비트랩 폭탄을 제거하는 세 미군 2004년 이라크 바그다드, 전쟁 중이다.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라크 전역에서는 ‘작은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점령군이 된 미군에게 이라크 국민들은 가상의 적이다. 그들은 선량한 시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살 폭탄 공격을 벌이는 전사이기도 하다. 이 테러로 미군들은 이라크 정규군과의 전투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다. 시내에는 이라크의 ‘누군가’가 설치한 폭탄들이 예측불허의 장소에서 터지고 있다.

샌본(앤서니 매키)과 엘드리지(브라이언 게러티)는 미군 폭발물 처리반 즉 EOD (Explosive Ordnance Disposal) 대원이다. 팀장은 톰슨 중사(가이 피어스)로, 세 명이 팀을 이룬다. 팀장이 50kg짜리 방호복을 입고 폭탄을 해체하는 동안 두 명은 원격으로 폭탄을 터뜨리려는 자, 주변의 이라크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오늘도 출동했다. 길 한복판, 돌무더기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톰슨은 로봇에 수레를 연결해 폭탄을 폭파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움직이는 로봇. 하지만 로봇이 끌고 가던 수레의 바퀴가 빠진다. 결국 톰슨은 방호복을 입고 직접 폭탄을 설치하기로 한다. 샌본과 엘드리지는 주변을 경계한다. 이윽고 폭탄을 설치하고 천천히 돌아오는 톰슨. 그 순간 엘드리지는 휴대폰을 들고 있는 이라크 인을 발견한다.

“휴대폰 내려놔!” 엘드리지는 총을 겨누고 이라크 인에게 달려간다. 샌본이 “엘드리지, 쏴, 쏘라고!”를 외친다. 엘드리지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고함만 질러 댄다. 휴대폰을 누르는 이라크 인. 굉음과 함께 톰슨의 몸이 날아간다. 부대에 돌아온 샌본과 엘드리지. 침울하다. 엘드리지는 “나 때문에 톰슨 중사가 죽었다”고 자책한다. 샌본은 차분하게 톰슨의 짐을 정리한다. 이렇게 또 한 명의 미군이 이라크 시민의 ‘저항’에 목숨을 잃었다.

EOD팀에 새 팀장이 배치되었다. 제임스 중사(제러미 레너)다. 과묵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자신감 넘친다. 부대에 오자마자 제임스는 샌본과 엘드리지와 함께 도시에 설치된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출동한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임무이다. ‘왜?’라는 의문조차 품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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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길거리 한복판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제임스는 방호복을 입고 걸어간다. 샌본과 엘드리지는 주변을 경계한다. 이 세 명은 무전으로 연결되어 있다. 샌본이 무전기로 호출하지만 제임스는 응답하지 않는다. 답답한 샌본이 소리 지른다. 그 순간 제임스는 연막탄을 터트린다. 어이없는 샌본. 연막이 걷히자 폭탄 근처에 제임스가 보인다. 갑자기 이라크 인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제임스 앞에 선다. 권총을 든 제임스. 제임스는 차를 뒤로 빼라고 소리친다. 꿈쩍도 하지 않는 승용차. 제임스는 총 두 발을 쏘고 승용차로 다가가 총을 겨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샌본과 엘드리지는 긴장한다. 그 승용차가 폭탄을 잔뜩 실은 자살 테러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승용차는 후진한다. 제임스는 방호복 헬멧을 벗고 폭탄을 해체한다. 얼마 후, 폭탄을 확인하기 위해 선을 당기자 무려 여섯 개의 폭탄이 모습을 드러낸다. 공포에 질리는 샌본과 엘드리지. 하지만 폭탄의 실체를 확인한 제임스의 눈은 더욱 반짝이고 그의 행동은 민첩해지며 폭탄을 해체하는 손은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유연하다. 제임스는 폭탄 여섯 개를 모조리 해체했다. 숙소로 돌아온 팀원들. 샌본은 제임스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마치 이 위험한 상황을 게임처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이들은 38일이 지나면 이 지긋지긋한 이라크에서 탈출이다.

제임스 팀은 수색대의 연락을 받는다. UN 건물 앞에 주차돼 있던 차에 폭탄이 있다는. 제임스는 승용차에 다가가 차 트렁크를 발로 내지른다. 덜컹 소리와 함께 폭탄의 실체가 드러난다. 팀원들은 경악한다. 차 트렁크에는 폭탄이 가득 실려 있다. 만약 이 폭탄이 터진다면 EOD팀이 설정한 ‘Kill Zone’ 범위를 몇 배나 넓혀야 한다. 방호복에 헤드셋을 장착하고 해체 작업을 시작하는 제임스. 샌본과 엘드리지는 이 광경을 지켜보는 수십 명의 이라크 인들을 경계하기 바쁘다. 그들의 눈에 휴대폰을 든 이라크 인이 한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샌본은 제임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빨리 해체할 수 없다면 철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순간, 헤드셋에서 들리는 샌본의 목소리가 방해된다며 헤드셋을 벗어 버리는 제임스. 폭탄은 정교하고 어렵다. 노련한 제임스도 땀을 뻘뻘 흘린다. 해체 작업에 속도가 나지 않자 제임스는 거추장스러운 방호복을 벗어 버린다.

“제임스, 철수해야 해요. 무슨 짓이야? 방호복을 벗다니. 엘드리지, 제임스에게 빨리 헤드셋 쓰라고 해.”

샌본이 악을 쓰듯 소리를 질러도 제임스는 들은 척도 않고 폭탄을 해체한다. 드디어 제임스는 폭탄을 해체했다. 차에 돌아와 땀을 씻는 제임스. 굳은 표정의 샌본이 제임스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제임스에게 주먹을 날린다.

“다시는 헤드셋을 벗지 마. 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제임스는 말없이 샌본을 바라본다. 샌본은 ‘언젠가 저 자식 때문에 내가 죽을 수도 있어’라고 제임스를 미워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현장에서의 말도 안 되는 여유에 믿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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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폭탄, 구분 없는 전장 오늘은 사막이다. 팀원들은 용병들을 만난다. 이들은 이라크 저격수나 폭탄 설치범에게 걸린 상금을 노리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팀원들과 사냥꾼들. 그 순간 총성이 울리며 용병 중 한 명이 쓰러진다. 저격수다. 1km 떨어진 흙집에 숨어든 두 명의 저격수. 제임스와 샌본은 저격용 총을 꺼낸다. 숨 막히는 순간이 계속된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 모래 바람. 그러나 기다려야 한다. 먼저 움직이면 죽는다.

“엘드리지, 총알을 가져와.” 제임스가 말한다. 당황하는 엘드리지. 총알을 꺼내지만 피 묻은 총알은 정상이 아니다. 피를 닦아 내는 엘드리지. 모든 행동이 어설프기 짝이 없다. 엘드리지에게 다가간 제임스. 그는 침으로 총알을 닦는 엘드리지를 보며 오히려 격려한다.

“잘했어 엘드리지. 그렇게 하는 거야!”

제임스는 총을 겨누고 있는 샌본 옆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 상황을 리드한다. 드디어 샌본이 저격수 한 명을 잡았다. 나머지 한 명은 움직이기 않는다. 졸음이 밀려오고, 눈에는 모래가 끼여 뜰 수가 없다. 음료수를 꺼내 샌본의 입에 대 주는 제임스. 샌본은 제임스에게서 뜨거운 전우애와 신뢰를 느낀다. 몇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움직이는 저격수. 샌본은 그를 정확히 명중시킨다. 제임스는 팀장답게 샌본과 엘드리지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이 상황을 넘긴 것이다. 부대로 돌아온 제임스와 팀원들. 차가운 맥주 한 캔, 담배 한 모금에 긴장을 푼다.

“샌본, 여자가 있나?”

“아직. 결혼을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면 아빠가 될 준비가,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 제임스는 상자를 끄집어낸다. 상자에는 그가 해체한 폭탄들의 기폭 장치들이 들어 있다.

“이거 한번 보라고. UN 건물 앞 기억나? 차에 불 났을 때, 그때 가져온 거야. 기폭 스위치지. 솜씨가 대단한 녀석이야. 그리고 이것도. 우리 첫 임무 때 가져온 거야. 거의 죽을 뻔했지.”

“이건 뭐지?” 샌본은 군번 줄에 걸린 반지를 꺼낸다.

“결혼반지야. 그것도 날 거의 죽일 뻔 했지.”

“그거 알아? 누군가를 죽일 뻔 했던 이런 물건들을 모은다는 게 말이야. 정말 흥미로운 일이라고.”

샌본은 제임스에게 묻는다. 어떻게 폭탄 앞에서 그렇게 용감하고, 무모할 정도로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제임스, 어떻게 하면 돼요? 죽을 위험을 무릅쓰면 돼요?”

“글쎄, 나도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아. 아무튼 그건 아닌 것 같아.”

“제임스, 당신은 항상 과감하게 목숨을 던져 가며 해치우잖아요.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지만. 안 그래요?”

“그래, 그랬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샌본, 넌 아냐? 난 정말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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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16일 전. 오늘은 특별 임무다. 폭탄을 만드는 아지트를 기습하는 것. 팀원들은 수색대와 함께 이라크 인 집에 쳐들어간다. 눈치를 챈 걸까. 사람은 없다. 하지만 피우다 남은 담배, 뜨거운 찻주전자 등 방금까지 사람이 있었던 흔적은 곳곳에 있다. 방문을 열자 수없이 많은 폭탄이 놓여있다. 다른 방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지막 방문을 연 제임스는 말없이 탁자를 노려본다. 피가 흥건하다. 어린 소년의 시신에 폭탄에 설치되고 있었다. 이라크 저항군은 어린 아이를 인간 폭탄으로 만들고 있었다. 제임스는 분노한다. 그는 그 아이가 베컴이라고 생각했다. 베컴은 미군 부대에서 포르노 DVD 등을 파는 미군 ‘하우스 보이’. 살가운 베컴은 미군들은 물론 제임스도 무척 귀여워한 아이였다. 제임스는 베컴의 시신을 안고 걸어 나온다. 모든 병사들이 입을 다문다. 그날 밤, 제임스는 무리한 작전을 편다. 이라크 저항군이나 테러분자들에 대한 수색이나 공격은 다른 부대의 임무. 제거팀은 설치된 폭탄만 제거하면 된다. 제임스는 베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는지 샌본과 엘드리지의 반대에도 수색 작전을 편다. 어둠으로 덮인 이라크 인 주거지. 세 갈래 길이 나온다. 제임스는 한 명씩 수색할 것을 명령한다. 모두 주저하지만 제임스는 수색을 강행한다. 어쩔 수 없이 골목으로 뛰어드는 샌본과 엘드리지. 잠시 후 총성이 울린다. 제임스와 샌본이 도착하자 엘드리지는 이미 쓰러져 있다. 다리를 관통한 총알에 다리뼈는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엘드리지는 부상 당한 채 본국으로 귀환한다. 엘드리지는 제임스에게 악담을 퍼붓는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언젠가 너 때문에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 전쟁 미치광이야.”

제임스는 이번에도 말없이 돌아선다. 그리고 밤에 이라크 인 거주지를 홀로 찾는 제임스. 그는 그곳에서 이라크 인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부대로 귀환한다. 부대 앞에서 무릎을 꿇린 채 검문을 당하는 제임스. 미군들은 한밤중에 사복을 입고 부대로 오는 제임스를 이라크 자살 테러범으로 오인한 것이다.

“무릎 꿇어. 옷 벗어.” 누구도 믿지 못하고, 또 믿어서도 안 되는 곳이 바로 바그다드다. 며칠 후, 베컴이 부대에 나타난다. 베컴은 살아 있었다. 죽은 어린 아이는 베컴이 아니었다. 베컴을 보고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는 제임스. 그는 이미 폭탄 외에는 어떤 것에도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자네가 이 폭탄을 해체한 건가, 제임스 하사?”

“네 대령님. 제가 했습니다.”

“대단하군! 자넨 대단해. 지금까지 해체한 폭탄이 몇 개인가?”

“네, 873개입니다, 대령님.”

“뭐? 정말, 대단하군! 그런데 어떻게 해야 폭발물을 그렇게 많이 해체할 수 있는 건가?”

“안 죽으면 됩니다, 대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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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의 마지막 임무다. 광장, 경계를 펴고 있는 미군에게 이라크 남성이 다가온다. 미군들은 그에게 총을 겨누고 “서라”고 소리친다. 남성은 팔을 들고 뭔가를 호소한다. 무릎을 꿇은 남성은 재킷을 벗는다. 그 남성의 상체에는 수십 개의 폭탄이 매달려 있다. 미군은 혼비백산해 남성에게서 멀리 떨어진다. 제임스는 그에게 다가간다. 샌본과 미군들은 제임스를 제지하지만 제임스는 듣지 않는다. 제임스는 휴대폰으로 이라크 통역과 통화한다. 폭탄을 매단 남성은 이 폭탄을 제거해 달라고 하소연한다. 제임스는 그를 진정시키고 폭탄을 해체하려 하지만 폭탄은 굵은 자물쇠 수십 개로 단단히 매여 있다. 폭탄에 연결된 시계는 불과 몇 분의 여유밖에 없음을 알려준다. 제임스는 기구를 가져와 온 힘을 다해 자물쇠를 자른다. “딱!” 겨우 하나를 풀었다. 시계는 이제 초 단위로 접어들었다. 제임스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라크 인 남성에게 말한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한다. 절망에 가득한 이라크 인 남성의 눈동자, 미안함과 무력함에 거의 울 것 같은 제임스. 제임스는 그 남성을 뒤로 하고 뛰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 폭탄이 터진다. 광장은 굉음으로 가득하고 이라크 인 남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과연 그 남성은 자살 테러리스트인가, 아니면 인간 폭탄이었을까. 제임스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본국으로 귀환한 제임스. 집에는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다. 제임스는 쉽게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한다. 슈퍼마켓에 간 제임스와 아내. 제임스는 너무나 쉬운 물건 사는 것조차 못한다.

잠시 후, 제임스는 어쩔 줄 모른다. 수많은 시리얼. 제임스는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뿐이다. 그중 하나를 집어 빈 카트에 던져 넣는다. 집.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 제임스는 옆에서 이야기한다. 이라크에서 폭탄을 해체하던 순간을. 아내는 듣고만 있다. 그날 밤, 제임스는 어린 아들과 놀아 준다. 그리고 아들을 바라보며 독백하듯 말을 쏟아 낸다.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동물이랑, 엄마랑, 아빠랑, 잠옷도 좋아하는구나. 이것들이 네 전부지? 안 그래? 그거 알아? 너도 나이가 들면 지금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더 이상 특별하지가 않아. 이 놀이 상자도 그렇고. 아마도 그저 스프링이랑 인형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겠지.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그런 식으로 다가온다고. 그리고 내 나이쯤 되면 너한테 의미가 있는 건 한두 가지로 줄어들 거야. 내 경우엔… 지금, 하나뿐이지.”

이라크 주둔 미 공군 기지. 미 본토에서 막 도착한 수송기에서 군인들이 내리고 있다. 군복을 입은 제임스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다시 지원해 이라크에 온 것이다. 폭탄과 죽음이 있는 곳에. 제임스가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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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격렬함은 마약처럼 중독된다 이 영화는 2008년 캐서린 비글로우가 불과 1100만 달러(한화 약 120억 원)의 ‘저예산(?)’과 스타 배우를 쓰지 않고 만든 영화다. 영화는 당시 미국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가장 흥미 없으면서 괴로운 주제’인 ‘이라크 전쟁’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2002년 ‘웨이트 오브 워터’, ‘K-19 위도우메이커’ 이후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에게 이 영화는 재기작이었다. 그녀는 해외로 나갔다. 영화는 2008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인권 영화 네트워크상, 청년 영화상을 받으면서 비로소 존재감을 알렸다. 2009년 미국에서 개봉했다. 언론과 평단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허트 로커’는 그해 천문학적 흥행 기록을 세운 캐서린 비글로우의 ‘전 남편’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와 경쟁했다. 결과는 ‘허트 로커’의 일방적인(?) 승리.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음향상, 음향 편집상 등을 휩쓸며 캐서린 비글로우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감독이 되었다.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하는 군인들을 묘사한다. 폭발물 제거반은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을 쌓은 특수 부대. 폭탄 테러로 인해 연간 수천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바그다드에서 이들은 절실한 존재였다. 폭발물 처리는 위험성 때문에 탐지 로봇을 사용하기도 하나, 특수 방탄복을 입은 EOD 대원들이 직접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 해서 언제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대원들의 심리적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허트 로커’는 EOD 대원들의 현실 캐릭터를 통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총알이 난무하고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는 익숙한 전쟁 영화가 아닌, 누구보다 강한 심장을 장착한 대원들의 공포와 긴장감을 세밀한 심리 묘사로 밀도 있게 그려 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를 보는 듯한 실재감이다.

제목 ‘허트 로커’는 미군들이 쓰는 슬랭으로 ‘벗어날 수 없는 물리적 또는 감정적인 고통의 기간’을 뜻한다. 대개 전쟁에서 부상, 패배,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을 겪은 뒤 그 충격이나 고통, 우울감 등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때 ‘허트 로커에 갇혔다’고 말한다. 각본가 마크 볼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뜻한다고 설명하며 폭탄이 터지기 직전, 그걸 깨달은 병사가 바로 ‘허트 로커’ 상황에 있는 것이라고 전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자막이 한 줄 뜬다.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The rush of battle is a potent and often lethal addiction, for war is a drug). 이것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이다. 죽음을 곁에 끼고 있는 전쟁터에서 누구는 무너져 버리고, 또 누구는 마약을 먹은 것처럼 죽음과 살인의 광기에 사로잡히고 만다. 제임스는 ‘전쟁 마약’ 중독의 전형이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감정의 결을 갖고 있다. 한순간의 실수로 몸이 가루가 될 수 있는 폭발물 제거 작업에서 제임스는 오히려 살아 있음을, 희열을 느낀다. 제임스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해야 할 가족 곁에서 오히려 무기력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미숙아처럼 행동한다. 결국 다시 전쟁터로 향하는 그는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전쟁 중독’에 빠진 것이다. 영화는 제임스를 통해 아직도 진행형인 전쟁 후유증을 보여 준다. 국가, 사회, 개인들이 맞는 전쟁의 눈높이는 다르다. 당연히 전쟁은 끝나도 개인에게 남아 있는 ‘전쟁터’는 숨길 수 없는 화상처럼 그들을 지배한다. 미국에게도 이라크 전쟁은 월남전 이후 다시 맞은 ‘늪’이었다. 수만 가지 이유로 전쟁을 시작하고 승전하고, 종전을 선언했지만 그 전쟁에 참전했던 수십 만 군인과 이라크 국민들에게 전쟁의 후유증은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았다고 영화는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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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전 세계인이 누려야 할 권리다 영화의 배경은 이라크 전쟁이다. 세계는 이 전쟁을 ‘이라크 전쟁’, ‘제2차 걸프전’ 혹은 ‘이라크 자유 작전’으로 부른다. 이름은 중요치 않다. 또 세계 유일 패권국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 후세인 정권의 대량 살상 무기 생산에 대한 선제 공격, 이라크의 인권 회복, 중동 질서 재편 등의 이유 또한 별로 중요치 않다. 그것은 승자의 대외적인 명분이자 기록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쟁의 피해나 후유증의 몫은 정복자인 미군도, 피정복민인 이라크 인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은 2003년 3월20일, 미국의 이라크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공식 종전은 9년 뒤인 2011년 12월15일 이루어졌다. 물론 2003년 5월,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한 직후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 무력의 상징 항공모함 갑판에 등장해 ‘임무 완수’라고 쓰인 플래카드 앞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 압도적인 공세였다. 개전 후 불과 3주 만에 미군은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했다. 그리고 미국은 후세인을 찾기 위해 2년 동안 이라크 전역을 수색한 끝에 2003년 12월14일 후세인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년간의 재판에서 후세인에게 살상 혐의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하고 2006년 12월30일 사형을 집행했다. 그해 후세인의 두 아들인 우다이와 쿠사이는 미군 폭탄에 맞아 사망했다. 이 전쟁으로 후세인 가문이 멸문 당한 것이다.

미국은 전쟁에서 이겼다. 하지만 이라크는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미국은 후세인 정권 대신 친미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라크는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비록 독재지만 국가를 유지했던 정권의 붕괴는 이라크를 무정부 상태로 만들었다. 가장 큰 흔들림은 종교였다. 이슬람 안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는 공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었다. 두 종파는 대립했다. 그들은 종교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고 이는 곧 무장 집단으로 발전하였다.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무력, 경제권, 종교 등을 장악하고 반대파와 피의 전쟁도 불사했다. 두 종파의 ‘공동의 적’은 미군이었다. 독실한 종교적 믿음으로 무장한 이들은 자살 작전도 불사해 미군을 괴롭혔다.

이라크의 각처에서 저격병, 무장 세력 그리고 폭탄이 설치된 부비트랩이 미군의 목숨을 노렸다. 이라크 전쟁 9년 동안 미군 희생자는 4000여 명, 그중 개전 초기 전투 사망자는 불과 400명, 나머지 3600명이 이른바 ‘이라크 저항군(미군의 시각에서는 이라크 반군)’의 손에 희생되었다. 이 끝없는 전쟁에서 미국과 미국민은 극도의 피로감과 전쟁 회의론이 생긴 것이다. 이 지난한 전쟁 기간 중에 미국민은 이라크라는 단어조차 듣기 싫어했다. 몇몇 영화들이 도식적이고 전형적인 방법으로 이라크 전쟁을 조명했지만 실패했던 것이 바로 그 이유다. 그럼에도 ‘허트 로커’는 미국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때문이다. 영화는 전쟁을 시작한 미국 정치권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도, 미군의 영웅화나 이라크 반군에 대한 혐오 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황폐화시키는가, 이라크 인 역시 자살 테러의 주동자이면서도, 자살 테러의 희생자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그 극명한 증거는 마지막 장면에서 폭탄을 몸에 매단 이라크인이다. 제임스가 폭탄을 제거하려 애쓰지만 결국 죽은 이라크 인은 과연 자살 테러리스트인가, 아니면 테러의 희생자인가. 명확한 답은 없지만 그 역시 이 ‘전쟁의 희생자’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 단초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다. 1990년 8월2일, 이라크는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점령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더불어 가장 친미 국가인 쿠웨이트에 대한 이라크의 침공은 미국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후세인은 미국의 참전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그는 이란과의 전쟁 후유증, 원유 가격의 붕괴로 정권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후세인은 그 타개책으로 쿠웨이트를 선택했다. 하지만 미국은 유엔에서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 승인이라는 대외적인 명분을 바탕으로 다국적군을 결성했다. 34개국 68만 명의 다국적군은 이라크와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1991년 1월17일, 미군 45만 명을 주력으로 한 다국적군은 ‘사막의 폭풍 작전’을 개시했다. 압도적 화력의 미군 앞에 이라크군은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패배했다. 미국은 개전 한 달 동안 공군력으로 이라크군 주력을 격파하고 이어 2월24일 지상군을 투입해 불과 100시간 후인 2월28일 쿠웨이트를 수복했다. 이때 미군은 쿠웨이트에서만 지상전을 전개하고 이라크에는 공중 폭격만 해 후세인 정권이 유지될 수 있었다.

전쟁 후 후세인은 군사력을 키웠고 미국은 새로운 국제 질서 개편에 몰두했다. 2001년 미국 본토가 ‘공격’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알 카에다에 의한 9.11 테러가. 미국은 이 두 가지 키워드, 알 카에다와 테러를 이라크의 후세인과 관련 지었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에서 이라크, 북한,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리고 미국은 차근차근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릴 대외적인 명분 쌓기와 군사력 집중을 병행했다. 후세인 정권이 이라크에서 없어져야 할 명분은 유엔이 금지한 ‘대량 살상 무기’ 즉 핵무기를 이라크가 개발, 은닉 보유하고 있으며 이보다 더 위중한 상황은 생화학 무기 역시 개발 중이라는 것이었다. 또 있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려 독재와 폭력에 신음하는 이라크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선사하겠다는 것.

하지만 수십만 미군이 이라크 전역을 이 잡듯 뒤졌지만 위의 증거들은 나오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정보망을 자랑하는 미국의 정보 오류든 의도된 정보든 그 결과 역시 다 지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이라크에 봄은 오지 않았다. 이라크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국민 대부분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불안정하다. 종교와 종족 분쟁, 여전히 불안한 치안, 경제 회복 속도 저하, 수니파 무장 단체 ‘이슬람 국가 IS(Islamic State)’의 존재 등등 풀어야 할 난제가 가득하다.

모두에게 ‘행복한 전쟁’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또 전쟁 시작 단추를 누르는 주인공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퇴장한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는 그 땅에 사는 국민들이 지고 가야 하는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이라크 전쟁이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평화는, 전 세계인이 누려야 할 권리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Daum영화]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9호 (18.12.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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