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 슈퍼맨’ 아쿠아맨…DC 영화 흑역사 깨나

김경학 기자
영화 <아쿠아맨>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아쿠아맨>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미국 히어로 만화의 양대 산맥은 ‘마블코믹스’과 ‘DC코믹스’다. 2007년까지만 해도 둘은 할리우드에서도 팽팽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아이언맨>(2008)을 필두로 ‘마블영화세계(MCU)’ 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두며 DC의 모회사인 워너브러더스는 위협을 느꼈다. 워너브러더스는 2013년 <맨 오브 스틸>로 MCU에 대항할 시리즈의 출발을 알렸다. 시리즈는 ‘DC세계(DCU)’ 또는 ‘DC확장세계(DCEU)’로 불린다. <300>(2006)으로 액션 영화의 새 스타일을 연 감독 잭 스나이더에게 메가폰을 맡겼다. <맨 오브 스틸>은 흥행과 평가 등 여러 면에서 나쁘지 않았다.

자신감을 얻은 워너브러더스는 히어로 한 명이 주인공이 아닌 히어로 여러 명이 동시에 나오는 첫 영화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을 선보였다. 감독도 잭 스나이더 그대로였다. 그러나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시쳇말로 ‘폭망’이었다.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날렵하면서도 샤프한 배트맨은 둔한 철 덩어리로 나왔다. 비단 배트맨뿐 아니라 <맨 오브 스틸>의 강력했던 슈퍼맨은 허약 체질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됐다. 해외 성적은 차치하고, 국내 관객은 226만명을 기록했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처음으로 만난 영화임을 감안하면 매우 저조한 성적이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는 할리 퀸만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스티스 리그> 포스터.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저스티스 리그> 포스터.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2017년 5월 두 번째 단독 영화 <원더 우먼>을 내놨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여파로 국내 관객은 217만명에 그쳤지만, 여성 감독 패티 젠킨스는 홍일점에 불과하던 원더 우먼을 DC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전사로 변모시켰다. 같은 해 11월 사실상 ‘DC 어벤져스’인 <저스티스 리그>가 개봉했다. 감독은 ‘에이스’ 잭 스나이더였다. 결과는 또 ‘폭망’이었다. MCU를 따라가려 했지만, 이야기뿐 아니라 시각효과 기술에서도 못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관객은 179만명으로 DCU 영화 중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워너브러더스는 지난 5편 중 3편이 혹평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을까. <저스티스 리그> 개봉 1년 만에 단독 영화 <아쿠아맨>을 내놨다. 잭 스나이더는 <원더 우먼>에 이어 <아쿠아맨>에서도 제작으로 한 발 물러났다. 메가폰은 <쏘우> <인시디어스> <컨저링> 등을 선보였던 ‘공포 장인’ 제임스 완에게 맡겼다. 제임스 완은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으로 블록버스터 액션 연출에도 능력이 충만함을 증명했다. 마치 “내가 블록버스터 액션을 안 만들어서 그렇지, 만들면 잘 만든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공포 장인과’ ‘히어로물’의 만남이라는 신선한 조합으로 제작 초기부터 주목을 받은 <아쿠아맨>이 19일 개봉한다.

영화 <아쿠아맨>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아쿠아맨>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아쿠아맨’ 아서 커리(제이슨 모모아)는 쉽게 말해 수중 슈퍼맨이다. 슈퍼맨 못지않은 속도로 물 속을 날아다닌다(팔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헤엄을 친다). 인간과 해저 왕국 아틀란티스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커리는 물 속에서 괴력을 발휘한다. 물 밖에서도 총탄을 피하고, 무쇠칼을 두 동강 내는 등 웬만한 히어로 못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

<아쿠아맨>은 그의 탄생부터 성년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짧게 보여준다. 아틀란티스의 왕이자 자신의 이부동생 옴(패트릭 윌슨)은 지속적으로 해양 세계를 오염시키는 인간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다. 영화의 주 내용은 아쿠아맨이 옴에 맞서기 위해 메라(앰버 허드)와 함께 전설의 ‘아틀란의 삼지창’을 찾아 다니는 것이다.

영화 <아쿠아맨>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아쿠아맨>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틀란티스 등을 시각화한 바다 속 세계다. 그동안 지구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히어로 영화는 많았지만, 해수면 아래를 배경으로 한 히어로 영화는 거의 없었다. 영화에는 상어·고래·가오리 등 실존 생물부터 카라덴 등 가상의 생물까지 다양한 해양 생물이 등장한다. 인물들도 마치 물 속에 있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 머리카락과 옷을 조금씩 움직이고, 목소리에도 울리는 효과 등을 더했다. 이 때문에 관객은 마치 거대한 아쿠아리움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또 드럼 치는 문어, 문어를 형상화한 공주의 드레스, 물을 공급해주는 지상용 스쿠버 장비, 다양한 특성을 지닌 7개의 해저 왕국 등 해양 히어로 영화다운 볼 거리가 풍부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아쿠아맨과 메리가 수많은 트렌치 전사들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이다. 이 장면만으로도 시각적으로는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다만 매우 새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수중 세계 아틀란티스는 공기 대신 물이 있다는 것뿐이지, 다른 히어로 영화에서 많이 본 도시(특히 MCU의 아스가르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아쿠아맨>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아쿠아맨>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온 몸에 문신을 한 채 물고기와 소통하는 독특한 능력도 가진 혼혈의 히어로 아쿠아맨은 기존 히어로들과 차이점이 분명 있다. 영화도 이같은 차이를 살리려 했다. 특히 아쿠아맨과 메리가 악당에게 쫓기는 시칠리아 액션 장면은 새로운 형태로 만들었다. 주인공이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추격 장면은 진부하지만, <아쿠아맨>은 마치 롱테이크처럼 쫓기는 두 인물을 교차로 보여줘 신선함을 준다. 또 총 대신 창술을 선보이고, 기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도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 특히 트렌치 왕국을 방문했을 때는 거의 공포 영화 수준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시각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받을지 몰라도 이야기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영화 속 빌런(악당)은 옴과 블랙 만타, 두 명이다. 블랙 만타가 왜 아쿠아맨을 증오하게 되는지는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반면 옴은 턱없이 부족하다. 단순히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존재이고, 어머니 아틀라나 여왕을 죽게 만든 혼혈 이부 형이라는 이유를 ‘말’로 설명하는 게 전부다. 삼지창을 찾아 “7대양” 곳곳을 누비는 모험적 재미를 줄이더라도, 아쿠아맨만의 개인적인 내면을 더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143분,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아쿠아맨>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아쿠아맨>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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