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꾼이 된 포로들, 패배자 아닌 희생자들”

고희진 기자

미군·인민군 등 이념 넘은 탭댄스팀 그려…웨스 앤더슨 같은 따뜻한 색감 ‘반전 영화’

전형적 해피엔딩 피해 제작사에서 ‘난색’

“재연돼선 안될 비극 외면하고 싶지 않아”

영화 ‘스윙키즈’ 감독 강형철.   사진 제공 NEW

영화 ‘스윙키즈’ 감독 강형철. 사진 제공 NEW

동화 같은 화면에 날카로운 현실을 스며놓은 영화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스윙키즈> 얘기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속에 잊혀가는 인간을 되살리기 위해 영화는 “아이 원트 저스트 댄스(I want just dance)”를 외친다. 외침은 스크린 안에서 극장 바깥으로 흐른다. 이때 관객은 작품이 ‘댄스의 외피를 입은 전쟁 영화’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과속 스캔들> <써니>에 이어 이번에도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을 선보인 강형철 감독(44)을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국으로 파견 온 미국 군인 잭슨(재러드 그라임스)은 자본주의 진영 선전을 위해 수용소에 탭댄스팀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미군 부대에서 춤을 추던 양판래(박혜수)와 피란 중 인민군으로 오해받아 이곳에 들어온 강병삼(오정세), 중공군 출신 포로 샤오팡(김민호)이 합류한다. 아직 정식 단원은 아니지만, 북에서 온 로기수(도경수)는 팀의 에이스다. 19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2015년 초연한 뮤지컬 <로기수>가 원작이다.

영화 <스윙키즈>에서 양판래 역을 맡은 배우 박혜수.

영화 <스윙키즈>에서 양판래 역을 맡은 배우 박혜수.

초반 영화는 이들이 함께 춤을 추고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린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생각날 수도 있다.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유명한 영화는 동화 같은 세계 속에 암울한 시대상을 담았다. <스윙키즈> 속 포로수용소 내의 미군 건물도 분홍색 노란색 등 산뜻한 색깔로 칠해져 있다. 푸른 하늘과 만나 동화 같은 느낌을 배가한다. 감독은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번 영화에 그의 색감을 특별히 참조하진 않았지만, 정각 앵글은 과거 단편 작업 때부터 많이 사용해왔다”며 “배우와 미장센이 동기화돼서 움직일 때, 영화 속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정각 앵글을 자주 쓴다”고 말했다.

유쾌하던 영화는 이곳이 ‘전쟁터’임을 상기하며 변하기 시작한다. 강성 인민군 포로가 들어오며 수용소에는 이념 전쟁이 격화한다. 댄스팀의 운명 역시 사상 홍보 수단으로 여겨질 뿐이다. 결말 역시 전형적인 해피엔딩은 아니다. “일반적인 룰이 아니라 (제작사에서도) 당연히 싫어한” 엔딩을 고집한 이유를 감독은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로 갈음했다.

그는 “영화는 기본적으로 전쟁에 관한 얘기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메시지의 영화인데 ‘디즈니’적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며 “전쟁 상황에서 스윙키즈들이 희생자일지언정 패배자는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스윙키즈>에서 인민군 로기수 역으로 출연한 배우 도경수.

영화 <스윙키즈>에서 인민군 로기수 역으로 출연한 배우 도경수.

댄스팀이 잠시 해산됐을 때, 강병삼과 샤오팡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춤으로 대화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우스운 몸짓이지만, 국적과 이념 그리고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두 사람이 소통하는 장면은 묘한 감동을 준다.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Modern Love)’에 맞춰 로기수와 양판래가 마음껏 춤추는 장면도 눈에 띈다.

음악은 중요한 장면마다 변곡점 역할을 한다. 베니 굿맨 ‘싱싱싱(Sing Sing Sing)’, 정수라 ‘환희’에 맞춘 탭댄스가 흥겹다. 잭슨의 피아노 연주로 흐르는 바흐 ‘평균율 1권 1번 다장조’,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 ‘더 크리스마스 송(The Christmas Song)’은 극의 흐름을 정리한다.

감독은 영화를 재즈에 비유했다. 그는 “좋은 영화는 한 편의 재즈 같다고 항상 생각해왔다”며 “각각의 세션이 자기 실력을 뽐내다가 결국 하나의 멜로디로 뭉치는 재즈처럼, 영화도 배우들이 연기라는 자기만의 악기를 가지고 솔로, 앙상블을 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작 <마약왕> <PMC: 더 벙커>에 비해 배우 이름값이 약하지 않으냐는 평이 있지만, 우려하지 않는다. 감독은 도경수를 “웹드라마 <긍정의 체질>을 보고 능청스럽게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며 “그는 배우로서 테크니션적인 면모와 예술가적 자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칭찬했다. 박진주, 오정세, 재러드 그라임스 등이 연기한 조연 캐릭터도 기능적으로 소비되지 않고 제 사연을 풀어냈다.

충무로에선 강형철 감독을 데뷔 이후 실패가 없었던 연출자로 꼽는다. 전작 세 편이 모두 흥행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나는 늘 실패해왔다. 앞선 세 편의 작품 안에 모두 성공과 실패가 공존했다”며 “작품을 찍고 싶은 욕망은 전 작품의 실패에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세 번째 작품 <타짜-신의 손>은 “스타일에 너무 집중하지 않았나” 후회한다고 했다. 감독은 “친구가 ‘영화 안에는 감독이나 작가가 많이 투영돼야 하는데, <타짜>에는 네가 잘 안 보여서 아쉬웠다’는 얘기를 한 적 있다”며 “<스윙키즈>에는 나를 좀 더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Today`s HOT
영국 찰스 3세의 붉은 초상화 총통 취임식 앞두고 국기 게양한 대만 공군 연막탄 들고 시위하는 파리 소방관 노조 2024 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예선전
시장에서 원단 파는 베트남 상인들 이라크 밀 수확
로드쇼 하는 모디 총리 미국 UC 어바인 캠퍼스 반전 시위
조지아, 외국대리인법 반대 시위 총격 받은 슬로바키아 총리 광주, 울산 상대로 2-1 승리 미국 해군사관학교 팀워크! 헌던 탑 오르기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