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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 부도의 날’ IMF 소재로 한 최초의 영화

입력 : 
2018-12-13 09: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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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망하게 생겼는데 지들도 대책이 있겠지, 제정신이면.” 불안한 복선처럼 깔리던 영화 초반의 이 대사는 IMF 당시의 아노미 사태를 예고한다. IMF를 소재로 한 최초의 한국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김혜수, 유아인 그리고 뱅상 카셀 주연으로, 그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속속들이 보여 줌과 동시에 2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가 1997년의 상처를 잘 봉합했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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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가입, 아시아의 네 마리 용’ 등이 연일 미디어를 장식하던 1997년, 곧 닥칠 경제 위기를 예견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은 이 사실을 여러 차례 보고한다. 국가 부도까지 남은 시간 단 일주일. 현상황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매번 묵살되고, 정부는 뒤늦게 비공개 대책팀을 꾸린다. 위기 대응 방식을 두고 시현과 재정국 차관(조우진)이 강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IMF 총재(뱅상 카셀)가 협상을 위해 비밀리에 입국하고, 위기의 시그널을 포착한 뒤 과감히 사표를 던진 금융맨 윤정학(유아인)은 위기에 투자하는 역베팅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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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최초로 IMF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실제 IMF 협상 당시 비공개로 운영됐던 대책팀이 있었다는 기사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한시현 캐릭터는 ‘대책반에 이런 인물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에서 탄생했다. 국가 부도를 예견하고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은 김혜수가, 위기를 통해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재정국 차관’ 역은 조우진이, 그리고 국가 부도의 위기를 역이용하는 증권맨 출신 ‘윤정학’은 유아인이 맡았다. 다소 억지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던져 보수적인 관료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 한시현의 강한 신념과 전문성은 김혜수라서 납득되는 면이 있다. 회사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며 역베팅에 나서 승승장구하지만 자신의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한 정책과 현실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유아인의 양면적인 연기는 단연 발군이다. 대형 백화점과의 어음 거래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소박한 행복을 꿈꾸다 무방비 상태로 직격타를 맞게 된 공장장 ‘갑수’ 역의 허준호의 연기 변신도 눈에 띈다. 여기에 ‘제이슨 본’, ‘블랙 스완’, ‘라빠르망’ 등 할리우드, 프랑스를 넘나드는 세계적 배우 뱅상 카셀이 ‘IMF 총재’ 역으로 한국 영화에 첫 출연, 한국의 위기 타개에는 전혀 관심 없는 이지적이고 냉철한 IMF 총재를 연기한다. 2016년 도박 볼링 세계를 그린 영화 ‘스플릿’으로 장편 영화에 데뷔한 최국희 감독은 유아인과 허준호, 김혜수 관점을 오가며, 각자 어떻게 IMF 구제 금융 시대를 받아들였는지 보여준다. 영화 전체 플롯은 전 세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기 하루 전, 위기 상황을 미리 전달하는 퇴직 직원과, 자신들만 살아남기 위해 저질 파생 상품을 팔아 치우는 조직이 등장하는 2013년 영화 ‘마진 콜’(제러미 아이언스, 케빈 스페이시 출연)을 닮아 있다. 주가 조작을 다룬 ‘월 스트리트’ 시리즈나, 월 스트리트를 물 먹인 천재들을 다룬 ‘빅 쇼트’ 등과 비교하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IMF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만큼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라는 점, 중반을 넘어갈수록 여러 서사가 겹치고 한국적 신파가 가미되면서 극의 긴장감이 반감되는 점, ‘그러니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자’는 다소 공익 메시지 같은 어물쩍한 마무리는 위 영화들의 지속적인 긴장감에 비하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 당시 많은 대형 은행이 이사회 승인 없이 대기업 대출을 돕고, 위험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방치했으며, 미리 정보를 빼낸 재벌이 기업 장사에 나서는 이 모든 것이 자살률 42%의 고실업자 국가로 바뀌는 ‘국가 부도의 재난’을 이끌어낸 총체적인 원인이었음을 처음으로 드러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글 최재민 사진 퍼스트룩]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8호 (18.12.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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