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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재생 건축-건축이 만들어낸 디자인 드라마

입력 : 
2018-12-13 1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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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 ‘재생 건축’. 도시 안에 남겨진 오래된 사회의 유물을 허물거나 부수지 않고 지금의 환경에 맞게 되살려 내는 작업. 메이크업을 하고 최신 기능을 더해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면 오랜 공간이 스스로 일어서 에너지를 뿜어낸다. 화두는 ‘어떤 식으로 재생할 것인가’다.

사진설명
▷사진설명 -건축가 조병수의 작품인 F1963은 지역을 먹여살리던 철강 산업의 틀을 예술화했다는 면에서 가치가 높다. 조상이 살았고 내가 자라 온 고장의 산업에 대한 자긍심이 커지는 순간이다.

-*註 위항(委巷)문학 ‘위항(委巷)’은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뜻하는 말로 민간의 초라함을 일컫는다. 조선 후기 서울을 중심으로 중인 이하 계층이 주도한 한문학 활동이 당시 거주하던 이상, 윤동주로 흘러내려왔다고 전해진다.



아이 방 벽에 해마다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펜으로 표시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큰 추억인지, 심지어 그게 얼마나 소중한 보물인지 잘 알 것이다. 벽지가 낡았다는 이유로 확 다 뜯어 버리고 새하얗게 칠해 버리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도 말이다. 재생 건축은 인간사가 만들어 낸 추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공감이 이끌어 낸 디자인 작업이다. 공간은 추억을 담는 그릇이라는 화두를 가진 건축가와 지역 사회가 창조한 합심 디자인이다.

십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유럽의 사례를 연구하며 ‘우리는 언제쯤에나…’라는 자조 섞인 한숨을 쉬곤 했다. 강북의 한옥들이 나날이 사라지고 재개발이란 명목하에 아파트촌으로 뒤덮일 때마다 말이다. 심지어 뜻있는 몇몇 건축가들은 철거 직전의 집을 직접 사들여 보호하기도 했다. 건축가 김원은 작가 이상의 거처가 허물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을 막아 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위항(委巷) 문학의 유산을 살려야 서울시도 살아나고 대한민국도 삽니다.”

이미 1978년 파리 오르셰 기차역이 그 유명한 오르셰미술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1990년대 말에는 독일의 치센 제철소가 거대한 친환경 놀이공원이 됐으며, 방치되었던 런던의 화력 발전소는 1994년 테이트모던이라는 이름의 유명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이런 사례가 줄을 이으며 재생 건축 디자인에 관한 연구와 가능성을 국내에서도 접목하기 시작했고, 그 대표적이고 선구자적인 행위가 바로 선유도공원 프로젝트와 사연 많은 서울역의 변신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린이대공원 내 골프 클럽은 꿈마루광장으로, 한때 지역 사회를 먹여살리던 부산의 철강 공장은 F1963이라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벨기에 영사관은 남서울미술관으로…. 크고 작은 사례는 늘어났다. 하지만 재생 건축 디자인이 다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와중에도 지역 사회의 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디자인을 접목한 사례도 있으니까. 재생 디자인의 뿌리엔 ‘그 땅에 사는 사람’이 있다. 낡은 공간을 되살려 화제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현재 그 땅에 사는 사람과의 유대도 중요하다. 삶의 터전과 삶의 순환에 방해가 되지 않는 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서울역 고가 국제 현상 공모전에 참여했던 건축가 조성룡은 “지역과 조화되는 길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지역민, 외부인이 지나다니는 ‘길’이라는 개념은 앞으로도 대대손손 이어져야 한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반짝 이벤트성 무대가 아니라 대대손손 ‘묵묵하고 아름다운 길’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은 재생 건축 디자인의 정신적 토대다. 다행히 최근에는 지역, 사람, 땅, 한국이라는 화두를 보듬어 재생 디자인을 하는 젊은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들은 중구 뒷골목의 공장들, 성수동의 공장들, 지방 곳곳의 버려진 폐가들을 고치며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들을 고민한다. 그런 면에서 재생 건축은 거죽을 바꾸든 안을 바꾸든, 그 안에 채워지는 콘텐츠의 정서가 중요하다. 그래서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레스토랑을 운영한다거나, 지역민들과 문화 공연을 지속한다거나, 지역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돌파구가 되길 기원하며 기획해야만 한다. 결국 지속 가능한 도시란 정신적 유산이 대대손손 같은 정서로 이어져 내려오고, 그걸 사랑하는 이들이 또 대대손손 이어질 때 가능한 것이니까.

[글 한희(문화 평론가) 사진 F1963]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8호 (18.12.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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