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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분기 연속 적자 수렁 빠진 현대상선-5년간 5조 더 필요…밑 빠진 독에 물 붓기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8.12.10 09:55:57
유일한 국적 선사 현대상선이 올 들어 적자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진해운 대신 어렵게 살아남은 현대상선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국내 해운업이 고사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잖다.

현대상선은 지난 3분기 1231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손실만 4929억원에 달할 정도다. 지난해 연간 적자(4068억원)를 훌쩍 넘어섰다. 현대상선은 2015년 2분기부터 14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동안 누적 적자만 2조원에 달해 언제쯤 흑자로 돌아설지도 미지수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올 3분기 흑자전환’을 자신했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분위기다.

현대상선이 적자 늪에 빠진 것은 주력 사업인 컨테이너선 업황 부진 영향이 크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3분기 평균 877.66에 그쳐 2014년(1069)에 비해 10% 이상 떨어졌다. 글로벌 물동량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컨테이너선 공급이 넘쳐나 공급과잉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상선 전체 매출 중 컨테이너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달한다.

벙커C유 가격 상승도 실적 부진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국제유가가 하락하는 분위기지만 선박에 주로 쓰이는 벙커C유 가격은 오히려 상승세다. 11월 t당 499달러로 지난 1분기(376달러)보다 30% 이상 올랐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의 3분기 유류비는 지난해보다 731억원 늘었다. 운송비에서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30%에 달하는 만큼 현대 상선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해운 동맹으로 덩치 키워야” 의견도

현대상선이 미주 노선 호황 속에서 상대적으로 부진한 유럽 노선에 집중한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미중 무역전쟁을 앞두고 밀어내기 물량이 늘면서 미 서안 항로 운임은 지난 10월 1FEU(40피트 컨테이너 한 개)당 2587달러로 지난해 10월(1336달러) 대비 두 배 수준으로 급등했다. 하지만 유럽 항로 운임은 오히려 하락세다. 10월 기준 727달러로 1년 새 2.2% 떨어졌다. 현대상선은 지난 3월 46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선 한 개)급 선박 10척을 투입해 독자적인 유럽 노선을 개설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주가도 하락세다. 한때 8000원을 넘나들던 현대상선 주가는 지난해 10월 7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하면서 6880원 수준으로 급락했다. 이후에도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1년이 지난 지금 4000원 안팎에 그친다(11월 27일 종가 4000원). 지난 10월 30일에는 주당 3510원까지 떨어져 52주 신저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현대상선 실적, 주가가 고꾸라지면서 KDB산업은행은 고강도 경영혁신을 주문하고 나섰다. 산업은행은 현대상선 지분 13.1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1월 초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상선에 모럴해저드가 만연해 있고 혁신 마인드가 실종됐다. 주말마다 실적 보고 체계를 구성해 한 달이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으면 퇴출하겠다”고 경고했다. 최근에는 경영진 책임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채권단은 지난해 2월 한진해운 파산 이후 유일한 국적 선사 현대상선에 2조원가량을 지원해왔다. 최근에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사채(CB)를 떠안고 1조원을 추가 수혈하기도 했다. 이 자금으로 현대상선은 지난 9월 2만3000TEU급 12척, 1만5000TEU급 8척 등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했다. “초대형 선박을 확보하면 글로벌 선사와의 경쟁에서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는 것이 현대상선 측 얘기다. 2016년 구조조정 과정서 매각한 부산신항 HPNT(현대부산신항만) 지분도 연내 다시 확보할 계획이다. 거점 항만에 전용 터미널을 확보, 하역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현대상선 측은 “화주 신뢰가 높아지면서 선복 활용률, 물동량이 점차 늘어나는 분위기다. 2020년 하반기부터는 영업이익을 내 신용등급을 회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현대상선 적자폭이 갈수록 커지면서 경영 정상화를 위해 수조원을 추가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2023년까지 5조원을 더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채권단이 대규모 자금 지원을 해도 턴어라운드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장 글로벌 해운 시장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다. 글로벌 선사들은 해운 업황 악화에 맞서 잇따른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중국 해운업체 코스코는 지난해 홍콩 OOCL을 인수해 덴마크 머스크라인, 스위스 MSC에 이어 세계 3대 선사로 올라섰다. 머스크라인도 지난해 말 독일 해운사 함부르크수드를 품에 안아 2위 MSC와의 선복량 격차를 벌렸다. 일본 3대 해운사인 NYK, MOL, 케이라인은 합병을 통해 ‘ONE(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라는 세계 6위 대형 선사로 탈바꿈했다. 글로벌 상위 7대 선사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75%에 이를 정도다.

글로벌 해운사 합종연횡은 현대상선 등 중위권 선사를 고사시키기 위한 목적도 크다. 해운업은 선복량, 즉 적재량이 많을수록 운송 비용이 절약되기 때문이다. 초대형 선박을 늘리고는 있지만 현대상선 선복량은 41만TEU로 세계 1위 머스크라인(401만TEU)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대상선이 머지않아 한진해운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암울한 시나리오도 나온다. 삼일회계법인의 현대상선 회계 실사보고서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2022년까지 영업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실사 결과 2022년까지 6조3723억원의 자금 부족이 나타날 것이라는 추정치도 나왔다. 정부 지원이 없다면 자칫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다.

오형석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해양진흥공사 설립 등을 통해 본격적인 해운산업 지원에 나선 것은 희망적이지만 해운 업황 개선, 선박 대수 확장 등으로 수익성 회복이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상선 실적이 계속 악화될 경우 정부, 채권단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2015년 말 해운산업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국내 해운업계 1위였던 한진해운을 지난해 2월 파산 처분하고 2위 현대상선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글로벌 선사와 경쟁하려면 몸집이 커야 하는데 애초 덩치가 더 큰 한진해운을 죽이고 규모가 작은 현대상선을 살린 게 패착이다. 채권단이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더라도 현대상선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한국 해운업이 절체절명 위기를 맞았다.” 재계 관계자 의견은 새겨들을 만하다.

답답한 채권단은 머지않아 현대상선 경영진 교체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상선은 최근 중국법인장인 이동훈 상무를 퇴임시키고 이주명 한국본부장을 겸직하도록 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상선 측은 “연말 조직 개편을 앞두고 선제적 임원 인사를 낸 것뿐”이라는 입장이지만 해운업계에서는 현대상선 경영진 교체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적잖다. 유창근 사장 교체설까지 나올 정도다.

유 사장은 2016년 9월 현대상선 구원투수로 부임했다. 현대상선에 30여년간 몸담은 해운 전문가인 데다 인천항만공사장까지 지내면서 경험과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 사장은 최근 ‘비전 선포식’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금 조달,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통해 2020년 2분기부터 글로벌 선사를 제치고 나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2022년까지 ‘100만TEU급 선사’로 발돋움해 연 100억달러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까지 내놨다. 하지만 채권단 평가가 좋지 않은 만큼 현대상선을 계속 이끌어갈지는 미지수다.

정부, 채권단이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글로벌 선사처럼 해운사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노려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얘기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자금 지원 대신 국내 해운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해외 적자 노선을 철수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 등 과감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귀띔한다.

“글로벌 해운사마다 몸집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현대상선이 대형 선사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 중형 선사로서 아시아, 미주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여가야 한다. 얼라이언스, 즉 해운동맹과의 물류 시스템 통합 등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도 절실하다.” 서강민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 의견도 눈길을 끈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6호 (2018.12.05~12.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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