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득에 상관없이 전기 사용량이 많다는 이유로 ‘폭탄’ 수준의 요금을 부담시키는 누진제를 개편하기로 했다. 영국 독일 등처럼 누진제를 아예 폐지하는 방안도 유력한 검토 대상이다. 내년 누진제 폐지를 확정하면 1974년 제도 도입 후 45년 만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1~2인 가구의 전기요금이 오를 것이란 점에서 최종 결정까지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 6개월 내 결론난다
누진제, 내년 말 폐지 가능성

산업통상자원부는 11일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었다. 올여름 폭염으로 ‘전기료 폭탄 청구서’를 받아든 가구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누진제 폐지 여론이 확산된 데 따른 조치다. TF는 정부와 한국전력공사, 학계, 국책연구기관, 법조계, 시민단체 관계자 등 15명 안팎으로 구성됐다. 공청회 등 의견 수렴 및 국회 협의 과정을 거쳐 내년 7월 이전까지 최종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이용환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지난여름 폭염 때 누진제를 한시 완화했지만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며 “누진제 완화와 보완, 폐지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누진제는 3단계다. 전력 사용량이 200㎾h 이하(1구간)면 ㎾h당 93.3원을 적용하지만, 2구간(201~400㎾h)에는 187.9원, 3구간(400㎾h 초과)에는 280.6원을 적용한다. 다자녀가구 등 전기 사용량이 많은 가정에선 1~2구간 가정에 비해 훨씬 많은 요금을 내는 구조다.

전력업계에선 누진제 폐지를 가장 현실성있는 대안으로 꼽는다. 정부가 2016년 기존의 6단계 구간을 3단계로 줄였는데도 매년 ‘요금 폭탄’ 논란이 반복된다는 점에서다. 미국 일본 독일 등에선 전기요금 누진제를 아예 적용하지 않거나 누진배수를 평균 1.5배 안팎으로 낮게 책정하고 있다.

“1~2인 가구 전기료 급등”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해도 한전 손익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전기를 적게 쓰는 가정에서 더 많은 요금을 징수해 다소비 가구의 요금 감소를 상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원가 이하로 전기를 써온 1~2인 가구의 부담이 급등할 것이란 게 정부 고민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작년 한전의 전력 판매단가인 ㎾h당 108.5원(평균)을 1~3구간에 동일하게 적용할 경우 1400만 가구(1~2구간)의 요금 부담이 높아진다. 특히 1구간 사용자 800만 가구의 전기료가 급등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전력 다소비 가구인 850만 가구(3구간) 부담은 크게 낮아진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누진제를 폐지하면 전기를 많이 쓰는 고소득층 요금만 깎아준다는 ‘부자 감세’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산업부와 한전은 지난 10월부터 국내 1만 가구를 대상으로 주택용 전기 사용 실태를 조사했다. 가구 소득과 구성원 수 등 가구별 특성과 전기 사용량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게 골자다. 실태조사 결과 “저소득층이 꼭 전기를 적게 쓰는 건 아니다”는 결과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누진제 폐지를 확정하면 ‘계시별 요금제’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계시별 요금제는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요금을 차등화한 것이다. 상가 등 일반용과 산업용에는 이미 도입됐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