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하다 못해 수북이 쌓여 있는 눈을 발로 차며 걸어간다. 컴컴하다 못해 칠흑 같은 어둠 속 희미한 불빛 속에서 "오빠야?"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아내다.
열 번쯤 보냈으려나. 뉴욕의 12월을. 오늘은 뉴욕의 화려한 연말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세계 어느 곳보다 화려한 12월 뉴욕 한가운데 있던 이방인 셰프에 대하여.
샴페인을 들고 터트리려 준비하고 덕담이 오가는 사이 나는 마음 한구석이 짠 해온다. 집에 있는 돌도 안 된 아들 녀석과 아내 얼굴이 스쳐서일까? 오늘은 꼭 같이 새해를 맞자는 아내의 당부가 떠올라서일까?
2010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
60초 카운트다운이 사작되고 많은 사람이 TV를 통해 타임스스퀘어를 보고 즐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뉴욕에서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번도 그 자리에서 연말을 즐기지 못했다. 늘 키친 안에서 맞이했던 12월의 마지막 날.
세계 여러 사람들과 눈 마주치며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 인사를 수도 없이 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발자국 소리마다 귀 기울이며 추운 겨울날 베란다에서 기다렸을 아내가 있는 집으로 말이다. 내가 느끼고 기억하는 뉴욕의 연말이다.
화려한 뉴욕 맨해튼 그 어딘가에서는 화려하지 않게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지내는 한국인 셰프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재미있고 멋진 뉴욕의 연말에 대해 글을 쓰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우리나라가 아닌 세계 제일의 도시에서 외국인으로 일하는 그들이 떠올랐다. 10년 전 내 모습처럼 말이다.
타임스스퀘어의 화려한 불빛이 아닌 100년도 넘은 낡은 지하철을 타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꿈을 좇고 있는 그들이 있기에, 아니 연말이면 세계 곳곳의 쉼 없이 달리는 셰프들이 있기에 우리가 맛있는 연말(행복한 연말)을 보낼 수 있지 않을 까라는 너무나 주관적인 얘기를 하게 되었다.
2018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제 10년 전 카운트다운에 늘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던 바람에 응답할 시간이다. 응답했다 2018.
[송훈 더훈 레스토랑 총괄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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