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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마스터셰프 송훈의 음식생각] 응답하라 2010

입력 : 
2018-12-10 04:01:09
수정 : 
2018-12-10 10: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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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2시 뉴욕 맨해튼.

소복하다 못해 수북이 쌓여 있는 눈을 발로 차며 걸어간다. 컴컴하다 못해 칠흑 같은 어둠 속 희미한 불빛 속에서 "오빠야?"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아내다.

열 번쯤 보냈으려나. 뉴욕의 12월을. 오늘은 뉴욕의 화려한 연말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세계 어느 곳보다 화려한 12월 뉴욕 한가운데 있던 이방인 셰프에 대하여.

사진설명
2010년에는 내가 뉴욕 24스트리트 11번지, EMP(Eleven Madison Park)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다. 수많은 주문이 쏟아져 나오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리저리 주방 안에선 한바탕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나니 12월 31일 마지막 밤 12시가 다 되어간다. 손님들과 함께 어우러져 '뉴 이어(New Year)'를 맞을 생각에 다들 들뜬 표정이다. 셰프(30명 이상) 모두가 폿(Pot)과 국자를 들고 꽹가리를 치듯 굉장한 소리를 내며 줄지어 손님 테이블 사이사이를 오간다. 레스토랑 내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된다. 환호성이 오고 가며 새해를 맞이하는 재밌는 광경이다.

샴페인을 들고 터트리려 준비하고 덕담이 오가는 사이 나는 마음 한구석이 짠 해온다. 집에 있는 돌도 안 된 아들 녀석과 아내 얼굴이 스쳐서일까? 오늘은 꼭 같이 새해를 맞자는 아내의 당부가 떠올라서일까?

2010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

60초 카운트다운이 사작되고 많은 사람이 TV를 통해 타임스스퀘어를 보고 즐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뉴욕에서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번도 그 자리에서 연말을 즐기지 못했다. 늘 키친 안에서 맞이했던 12월의 마지막 날.

세계 여러 사람들과 눈 마주치며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 인사를 수도 없이 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발자국 소리마다 귀 기울이며 추운 겨울날 베란다에서 기다렸을 아내가 있는 집으로 말이다. 내가 느끼고 기억하는 뉴욕의 연말이다.

화려한 뉴욕 맨해튼 그 어딘가에서는 화려하지 않게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지내는 한국인 셰프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재미있고 멋진 뉴욕의 연말에 대해 글을 쓰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우리나라가 아닌 세계 제일의 도시에서 외국인으로 일하는 그들이 떠올랐다. 10년 전 내 모습처럼 말이다.

타임스스퀘어의 화려한 불빛이 아닌 100년도 넘은 낡은 지하철을 타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꿈을 좇고 있는 그들이 있기에, 아니 연말이면 세계 곳곳의 쉼 없이 달리는 셰프들이 있기에 우리가 맛있는 연말(행복한 연말)을 보낼 수 있지 않을 까라는 너무나 주관적인 얘기를 하게 되었다.

2018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제 10년 전 카운트다운에 늘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던 바람에 응답할 시간이다. 응답했다 2018.

[송훈 더훈 레스토랑 총괄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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