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과학’이 아무리 첨단화돼도 ‘인간 영역’ 이해 없인 수사 못해

유희곤 기자

과학수사의 한계

한국의 과학수사 역사는 구한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검찰청 검찰역사관에는 1905년 ‘박화실 살인사건’의 검시문안과 시신 상태를 기록해 놓은 장부가 보관돼 있다(왼쪽 사진). 그러나 때로는 과학수사의 한계와 윤리 문제가 종종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미국 새크라멘토시 경찰은 DNA 추적으로 연쇄살인범 조지프 드앤젤로(오른쪽)를 검거하기 위해 사건과 무관한 용의자 혈족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의 과학수사 역사는 구한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검찰청 검찰역사관에는 1905년 ‘박화실 살인사건’의 검시문안과 시신 상태를 기록해 놓은 장부가 보관돼 있다(왼쪽 사진). 그러나 때로는 과학수사의 한계와 윤리 문제가 종종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미국 새크라멘토시 경찰은 DNA 추적으로 연쇄살인범 조지프 드앤젤로(오른쪽)를 검거하기 위해 사건과 무관한 용의자 혈족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2년 4월4일,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40대 여성 ㄱ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목 졸림에 의한 질식이었다. 검찰은 평소 ㄱ씨와 잘 알고 지내던 박모씨(52)를 살인 혐의로 그해 5월22일 구속 기소했다.

박씨는 사망 시간대로 추정되는 2012년 4월3일 오후 11시30분~다음날 오전 1시 사이 ㄱ씨와 함께 있었다. 박씨의 손톱에서 범행도구인 담요와 같은 성분의 섬유가 검출됐다. 박씨가 평소 ㄱ씨에게 추근댄 만큼 살해 동기도 충분했다. 사망추정 시간대에 자신의 알리바이를 조작했다가 발각된 것도 심증을 더했다. 검찰은 부검 결과 ㄱ씨의 위에서 다량의 졸피뎀 성분이 검출되자 박씨가 ㄱ씨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간음하려다가 실패한 후 목 졸라 살해했다고 의심했다.

대구 40대 여성 살인사건
각종 수사 기법 동원하고도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

경찰과 검찰은 직접적인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박씨의 유죄를 입증하려고 각종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박씨는 사건 4년여 만인 2016년 8월17일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1·2심 모두 박씨가 범인일 수도 있지만 증거가 부족했다고 판단했고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고 봤다.

법원은 검찰의 ㄱ씨 사망시각 추정 방법이 변수가 너무 많아서 정밀하지 않고, 박씨 손톱에서 나온 섬유 한 올은 ㄱ씨 사망 이전에 붙은 것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평소 두 사람 관계를 고려하면 성관계를 거부했다는 게 다툼의 동기는 될지언정 살인 동기로는 미약하고, 박씨가 진술을 번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범인으로 추궁받는 상황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박씨의 수면제 구매 이력도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ㄱ씨가 오전 1시 이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충분하고 박씨가 아닌 제3자의 범행 가능성을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면서 에둘러 검경의 부실 수사를 비판했다. 지난 4월 대구지법 형사1부(재판장 임범석 부장판사)는 국가가 박씨에게 형사보상금 3090만원, 형사비용보상금 15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ㄱ씨 사망 사건은 ‘과학’ 영역이 아무리 고도화·첨단화하더라도 수사라는 ‘인간’ 영역이 꼼꼼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사건 실체 규명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학수사의 한계와 윤리 문제는 종종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미국에선 지문 감정 잘못해
엉뚱한 사람을 테러범 지목
과학수사 강국의 한계 노출

과학수사의 한계는 과학수사 기법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잘못된 지문 감정으로 엉뚱한 사람을 피의자로 지목한 일이 미연방수사국(FBI)에서 벌어졌다. FBI는 2004년 3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발생한 열차 폭탄테러 사건 용의자로 오리건주 변호사인 브랜든 메이필드를 체포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이 메이필드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2주 후 해당 지문과 일치하는 알제리 국적의 다른 진범이 잡혔다. 이후 지문 감식에 오류 가능성이 높아 감식 결과만으로 범죄자를 100% 단정할 수 없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42년 전 활동한 연쇄살인범
DNA 분석으로 검거했지만
사생활 침해 윤리적 비판도

대표적 과학수사 기법인 유전자(DNA) 수집은 때로 윤리적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미 새크라멘토시 경찰은 1976~1986년 캘리포니아주 일대에서 발생한 12건의 연쇄 살인 사건과 50여 건의 강간 사건 범인인 ‘골든 스테이트 킬러’를 42년 만에 검거했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피의자 조지프 제임스 드앤젤로(72)는 전직 경찰이었다. 애초 미 경찰은 1990년대 초반 DNA 감정을 실시해 해당 사건들이 모두 한 사람의 범행인 것을 확인했지만 당시 갖고 있던 DNA 데이터베이스(DB)에는 일치하는 DNA가 없었다.

이후 경찰은 미국의 가족 계보 사이트인 ‘GEDmatch.com’에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 정보를 가명으로 올렸다. 자체 보유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DNA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의 가족을 찾아주는 이 사이트는 용의자와 혈통이 같은 사람의 정보를 알려줬다. 경찰은 사이트가 알려준 사람의 뒤를 밟아 그가 버린 음료수캔과 휴지를 수거해 범인의 DNA와 대조한 후 이 사람과 혈족 관계인 드앤젤로를 붙잡았다고 한다.

범인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찰이 사건과 무관한 사람의 DNA 정보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수집하고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윤리적 비판이 제기됐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국내에서는 2017년부터 시행 중인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한 통제장치를 마련해놨다”면서 “검찰에서도 신원 정보와 DNA 데이터 정보를 완전히 분리해 관리한다”고 말했다.

과학수사 역량을 키우려면
장비·시설 고도화 못지않게
연구 예산과 인력 확충 필요

대검 측은 과학수사 역량을 키우려면 수사 기관의 연구·개발(R&D)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조남관 대검 과학수사부장은 “올해 대검 과수부(NDFC) 예산 198억원 대부분이 시설 유지·보수나 인건비로 사용되고 연구·개발 예산은 17억여원에 그치고 있다”면서 “장비나 시설의 고도화 못지않게 과학수사 연구 예산과 인력을 늘리는 국가 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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