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인터뷰 “노동 양극화가 모든 문제 근원…노조도 ‘격차 해소’ 논의를”

남지원 기자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 ‘하루 8시간 근무’ 접점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

사회적 대화란? 내가 절실한 것 요구하면 상대의 요구 하나를 들어주는 것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민주노총이 알아서 할 일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문 위원장은 “탄력근로제와 ILO협약 등 노사 양측의 이슈를 다루기 위한 논의 테이블이 경사노위에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성과”라며 “단 한 가지라도 노사가 합의를 이뤄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문 위원장은 “탄력근로제와 ILO협약 등 노사 양측의 이슈를 다루기 위한 논의 테이블이 경사노위에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성과”라며 “단 한 가지라도 노사가 합의를 이뤄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 파탄 난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가 공식적으로 복원됐다. 경사노위 출범 전 1년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한국노총의 제안으로 대화기구 되살리기에 청신호가 켜졌고 노사정대표자회의까지 만들어졌지만,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늘린 것에 반발해 대화 테이블을 떠났다. 한국노총은 복귀했지만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출범 때까지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출범한 지 2주가 조금 지난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확대와 노동기본권 문제 같은 노동 이슈에서부터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복지 문제까지 광범위한 의제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다. 그 중심에 문성현 위원장이 있다. 문 위원장은 4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사회적 대화가 가능한지 회의도 들지만 하나하나 합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이 밀어붙이고 있는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해서는 ‘최대한 신속하게’ 논의를 하겠다고 했고, 민주노총이 불참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민주노총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거리를 뒀다.

- 경사노위가 간신히 출범했다.

“그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문제는 노사 모두가 사회적 대화를 정부와의 관계를 풀 지렛대로 생각한다는 거다. 정부가 사회적 대화에 목을 매는 것 같으니, ‘참여할 테니 뭘 해달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경영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논의할 때엔 불리하니까 빠지지 않았나. 사회적 대화가 정말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화는 꼭 필요하고 해야 한다.”

- 노사정위원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 노사가 중심 잡고 협의를 하도록 하겠다. 대한민국에서 노사 합의가 최고의 권위를 갖도록 만들어나가겠다. 합의를 목표로 하지만 강제하지 않고, 충분한 숙의를 통해 쟁점을 좁혀나갈 거다. 1997년 노사정위가 만들어졌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엔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고용 유연화를 강하게 요구해 정리해고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사실상 국제통화기금(IMF) 주도로 사회적 대화가 굴러갔던 거다. 이제 20년이 지났고 노조도 상당한 성과를 축적했다. 반면 노동시장 내 격차도 극심해졌다. 당시의 사회적 합의는 강요된 것이었지만, 노조도 이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책임이 있다.”

- 당장의 첫 과제는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문제다. ‘합의를 강제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3개월 안에 합의를 할 수 있나.

“경사노위 내에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든 것 자체가 성과다. 한국 사회는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서 ‘장시간노동을 줄여나간다’는 합의를 이뤘다. 그렇게 되면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성이 반드시 따라온다는 게 경영계의 주장이다. 전체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되, 경영계에서 제기한 문제는 이야기해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조건 없이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면 오·남용될 수 있다. 하루 8시간 노동은 산업사회 이후 세계가 합의한 기본 가치다. 여기서 접점을 만들 수 있다. 최소한 쟁점은 좁힐 수 있다. 국회는 빨리 합의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늦어질 수도 있고 시간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상공인 임대차 관련법 등 여러 민생법안들이 걸린 상황에서 국회가 교착되게 할 수는 없다. 최대한 밀도 있게 논의해 신속하게 결론을 내겠다.”

- 또 다른 쟁점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한 제도개선 문제다.

“탄력근로제가 경영계 쪽 요구를 받아들인 의제라면 ILO 협약은 노동계의 요구에서 나온 의제다. 노사가 추천한 공익위원들이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고 공무원들의 노조할 권리를 명시한 공익위원안을 만들었고 경영계도 2차 논의를 해보자는 입장이다. 경영계는 단협기간을 늘려줄 것, 파업 때 공장 점거를 막고 대체근로를 허용할 것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계가 합리적 근거를 댄다면 위원회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사회적 대화는 서로 상대를 인정해야 할 수 있다. 나에게 절실한 것을 요구하려면 상대의 요구 하나를 들어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주고받기를 하지 말자며 대화를 거부하는 분들도 있지만, 여기 온다는 것은 주고받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 위원장은 ‘문전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금속연맹 위원장 출신 노동운동가다. 그러나 지금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민주노총과 정부 사이에 끼여 있다. 지난달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사노위 출범식에서 문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빈자리에 눈물까지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인터뷰에서는 “민주노총이 참여할지는 민주노총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노조가 노동시장 양극화의 사회적 책임을 지고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 민주노총이 연내에는 산하 위원회에조차 들어오기 어려운 분위기다.

“민주노총 출신으로서의 책임감과 참여하길 바라는 기대감으로 1년 넘게 왔다.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 민주노총이 어떻게 할지는 민주노총이 알아서 할 일이다. 스스로 내부 조건 속에서 결정할 일이다. 제조업이나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상황이 아주 안 좋지 않나. 이 산업들의 주력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다.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미래의 혁신성장이 가능한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현대차 노사, 대우조선 노사끼리는 풀 수 없는 일들이 쌓이고 있다. 초기업 단위로 노사정이 모여야 한다. 국민들이 민주노총 들어와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민주노총의 책임과 역할이 필요한 시기다. 1월 대의원대회에서 잘 논의해 참여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

- 지난해 노사정위원장에 취임하면서 ‘노동계가 노사정위를 불신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 문제들을 해소하는 일을 했다. 금호타이어와 중소 조선업체, 쌍용자동차 문제는 노사정 대화를 통해 풀렸다. 기업별 노사문제를 사회로 끌고 나온 거다. 국회에서 노사정위원장이 개별 기업 문제에까지 관여하느냐는 질책도 들었는데, 노사가 상생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필요해서 간 것이다. 현장의 대립과 갈등도 노사정이 모이니까 풀리는구나, 이런 걸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 앞으로도 개별 기업 문제에 관여할 계획인가.

“싸움은 해 본 사람이 가장 잘 말린다. 현장이 안정돼야 사회적 대화도 가능하다. 유성기업 폭력사태 같은 갈등도 중재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저렇게 격하게 부딪치는 걸 내버려두고 무슨 대화를 할 수 있나.”

경사노위는 새로 출범하면서 사회정책까지 다루는 기구로 위상이 높아졌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문제를 논의할 테이블도 만들었다. 법에 명시된 경사노위의 존재 의의도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근원은 노동시장 양극화”라며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는 왜 중요한가.

“노동시장 내 격차는 우리 사회 대부분의 문제의 근원이다. 최저임금이 문제라면 경제위기 해법은 간단하다. 올리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가장 크다. 일자리 10개 중 2개는 임금도 많고 고용도 안정적인데 8개는 나쁜 일자리다. 그러니까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 것이다. 청년실업 때문에 결혼을 안 하니 출산율이 떨어진다. 기를 쓰고 좋은 대학을 졸업해야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니 교육 문제가 생긴다. 지난 30년 동안 노동운동으로 노동자들이 얻은 성과는 정의로운 것이지만, 그로 인해 노동시장 내에 큰 격차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노조 안에서 그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지 토론해야 한다. 이미 일부 노조들이 연대기금을 만들었고, 금속노조는 하후상박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확산시켜야 한다. 물론 개별 노조의 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광주형 일자리 같은 시도가 대단히 중요하다. 새롭게 시작하는 산업, 새롭게 취업하는 영역에서 사회적 합의로 원·하청 격차가 없는 노동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 광주형 일자리 합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노총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상황에서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적절치 않다. 다만 광주형 일자리의 원칙 중 하나인 ‘적정임금’은 원·하청 간 격차를 해소하는 문제로 굉장히 중요하다. 정부가 제공하는 주택·교육·보육 등 ‘사회적 임금’으로 기업이 줄인 임금을 보전해 경쟁력을 올리겠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사 합의로 사회적 임금과 기업 임금을 합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 국내외 대기업들이 한국에 새로운 투자를 할 단초가 될 수도 있다.”

- 위원장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단 한 가지라도 합의를 하는 것. 그런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지만 노사가 어떤 문제라도 합의를 해내면 거기서부터 희망도 생기지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경사노위를 자문기구가 아니라 의결기구로 대접해주기로 약속했다. 노사 주체들과 정부가 노력해서 아름다운 합의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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