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제 값 받는 날까지
60대 촌놈치고 한때 문청(文靑)이 아니었던 경우는 드물 것이다. 정지용의 절창 ‘향수’의 배경을 빼박은 너른 들과 뒷동산이 잘 어우러진 고향의 자연환경과 도회지 하숙생활에서 비롯된 고독감은 사춘기에 가없는 상상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고, 교과서보다 문학서적 등에 탐닉하도록 만들었다.
고교 독후감대회 입상 기념으로 받은 신석정 시인의 <난초 잎에 어둠이 내리면>이라는 시가집 한 권은 ‘시인’을 꿈꾸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하지만 정작 대학에 진학하면서 군사정권 시절 대다수가 겪어야 했던 ‘학생운동 의식화 세례’를 거치면서 시인의 꿈은 접어야 했다. 그럼에도 한손엔 ‘시인의 꿈’을 잡고 고민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1984년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접한 순간, 나는 결국 시인을 포기했다. 이른바 청록파류의 서정시가 시의 전형이라고 여겨왔던 나에게 <노동의 새벽>은 새벽녘에 정수리에 들이붓는 폭포수였다. 당시 참여 시인의 첨단이라 여겨지던 신동엽과 김지하를 뛰어넘는다는 평단의 호평을 받은 그가 노동자인 데다 동갑내기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처절하고 감동적인 노동의 서사” “노동의 운명에 대한 진실한 증언” 등의 평을 받은 이 시집은 나처럼 분수를 모르던 숱한 문청들에게 시인에 대한 꿈을 접게 만들었으리라. 금서조치에도 불구하고 100여만부가 팔린 이 시집의 가치는 노동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한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중략)/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