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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행복을 거머쥐는 공간, 주방…주방 디자인이 행복을 조율한다

입력 : 
2018-12-06 10: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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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주방 디자인 설계가 앞으로의 일상 행복지수를 좌우할 것이다. 주부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성별 불문, 나이 불문, 가족 수 불문. 주방은 잡념을 버리고 육체 활동에 몰입함으로써 행복을 거머쥐게 하는 집안 유일의 공간이니까.

설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주방 기기 배치는 쉽지 않다”고. 요리를 하는 사람의 평소 습관, 그리고 주방 기기 4대 천왕(냉장고, 개수대, 도마, 레인지)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선이 효율적이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게 된다. 요리 순서를 의식하지 않고 만든 부엌은 아노미 그 자체다. 이렇게 되면 조리를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무려 1926년 건축가 마가레테 쉬테 리호츠키가 ‘프랑크푸르트 키친’이라는 지금의 시스템 키친의 원형을 창조해 낸 것 아니겠는가.

세월이 흘러 2018년. 프랑크푸르트 시스템 키친 디자인 이후 거의 백 년 가까이 흐른 시점. 최근 우리는 더더욱 본능적으로 주방 디자인에 매달리고 있다. 삶이 풍요로워지고 공간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될수록 이 현상은 두드러진다. 전체 가전 시장의 30%인 글로벌 빌트인 시장은 450억 달러(50조 원) 규모인데, 이 중 유럽과 미국이 반쯤을 차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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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주방은 구성원 간의 행복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 동선과 기능은 기본이고 개인의 개성에 맞도록 심미적인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세심히 디자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단 가족이 모이는 유일한 시간, 그리고 가족이 누리는 풍요로운 대화의 시간을 보장하는 공간이라는 점이 이 현상을 부추긴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인기를 끌던 배경엔 ‘누구를 위해 사는 삶인가’라는 화두가 자리한다. 치열하게 낮 시간을 보낸 뒤 가정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가족 간의 유대감이야말로 거친 낮 시간을 이겨낼 힘이라는 걸 담보한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주방 디자인은 중요하다. 요리를 하는 주체가 다양해진 것도 한몫한다. 여기에 더해 오픈 키친도 매우 인기다. 조리를 하는 사람과 세팅하는 사람이 하나가 되고, 요리를 기다리며 서로 풍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친구나 가족 간의 파티를 하기에도 매우 적당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왁자한 부엌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 일인 가구도 마찬가지다. 일인 가구 성장세가 가속화되면 작은 공간에 알차게 들어찬 효율적 주방 가구 디자인이 활기를 띤다. 한동안 레토르트 식품을 예쁜 식기에 담아 먹는 게 유행처럼 번졌던 건, ‘한 끼 때우는’ 방식의 궁색함이 자존감과 행복지수를 떨어뜨린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결국 나홀로 식사는 ‘나홀로 만찬’ 혹은 ‘셀프 맞춤 건강식’으로 진화하기 시작했고 연이어 홀로족들은 주방 디자인에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이들에게 주방은 일상 마사지 공간이다. 집중해서 하나의 요리를 만들 때 ‘딴 생각이 안 난다’는 것, 그리고 ‘내 뜻대로 작품이 뚝딱 완성된다’는 만족감이 자존감, 자신감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된다.

심리 치료사들은 공황장애 같은 현대인의 질병을 치유하는 데 ‘손으로 하는 행위’, ‘자연의 물성을 만지는 행위’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흙을 반죽해 도자기를 만드는 것, 빵을 반죽하고 굽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에게 주방은 ‘치유의 공간’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주방은 이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디자인 요소다.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취향에 맞도록 디자인되는 것, 무조건 사용자(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7호 (18.12.1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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