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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고독한 미식가와, 고독한 혼밥러의 사이-미디어 속 건강한 혼밥을 배우다

이승연 기자
입력 : 
2018-12-06 11: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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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는 직업상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때때로 예상치 못한 맛집을 발견하면 뽑기에 당첨된 듯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최근 혼밥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는 푹 숙여 정수리를 정면에, 눈은 핸드폰에, 입은 의미 없는 상하운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밥을 먹는 것이 단순히 식욕을 채우기 위한 행동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혼밥 문화가 국내에 정착되는 속도에 비해, 퀄리티는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혼자 먹는 것에만 의미를 둔 채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준비했다. 미디어 속 혼밥의 고수들이라 불리는 이들의 혼밥 스킬의 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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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건강한 혼밥을 추구하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창 ‘혼밥 레벨 테스트’가 유행한 적이 있다. 혼밥 능력치를 살펴보는 이 테스트는 ‘1단계-편의점’부터, 학생식당, 분식집, 맛집, 패밀리레스토랑을 거쳐, 하이 레벨 단계 고깃집과 술집으로 마무리됐다. 사실상 혼밥이 일상적인 문화가 되면서 이제 혼밥 테스트는 어렵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외부 환경의 변화도 한몫했다. 2~3인분부터 하는 음식점엔 1인분 정식이 생겼고, 1인식 테이블 위주의 전문 고기집도 생겨났다. 여러 테이블을 두는 대신 주방을 중심으로 한 테이블을 두는 밥집도 늘어갔다.

혼밥의 문화적 현상, 외부적 환경이 뒤따르고 있는 이 시점에 혼밥의 ‘과정’과 ‘결과’에 주목해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혼밥을 통해 필수 영양소를 얻는 등의 식사의 본질은 충족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먹고 난 뒤 포만감은 물론 식사에 대한 심리적인 만족감도 있었는지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건강의학적인 부분에서 위장장애, 영양불균형 섭취, 거북목 등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주장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지난 9월, KBS 다큐멘터리 ‘다큐세상’에선 건강한 혼밥이 무엇인지를 소개한 ‘혼밥의 정석’편이 방송됐다. 방송은 일찌감치 혼밥 문화가 정착된 일본의 생활 풍경을 보여주며, 진정한 혼밥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했다. 이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첫째, 하루에 한 끼는 쌀밥을 위주로 하는 한식을 먹을 것, 둘째, 후딱 먹어 치우는 식사가 아닌 20분 동안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을 기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혼밥을 할 경우 메뉴를 고를 때부터 즐길 수 있느냐의 여부를 따져야 한다.

한 끼 식사도 오로지 나와, 식사에만 집중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자. 그러면 대충 때우며 급하게 먹기 급급했던 식사 시간이 달라지고, 식사에 포함된 영양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게 된다. 나아가 혼자 먹더라도 따뜻한 밥을 챙겨먹는, 규칙적인 혼밥 식문화를 정착해가는 과정을 지켜나가다 보면 일상엔 활력이 넘치고, 에너지가 생성되며, 스트레스 호르몬 범위는 낮아지고, 삶의 만족도 역시 높아져 가는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하루 중 30분~1시간. 짧고 사소한 시간일지 몰라도 밥을 먹을 때 내 삶의 질을 개선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기엔 충분하다. 이제는 편의점, 분식집에서 먹을 수 없는가, 있는가가 아닌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를 위해 혼밥을 즐길 수 있는가’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프로 혼밥러들의 ‘혼밥의 정석’ ▶영화 ‘리틀 포레스트’ 혜원(김태리)

▷혼밥 레벨 ★★★ 혼밥 유형 사계절 제철 재료를 활용한 손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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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ASMR로도 유명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 혜원은 도시에서 고시 공부와 함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그녀의 주식은 편의점 도시락. 그것마저도 차디찬 냉장고 속에 있던 것을 틈틈이 꺼내먹기 일수다. 시험에 떨어진 혜원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가 고파서.’ 혜원은 직접 농작물을 키우고 한끼 한끼 만들어 먹기 시작한다. 영화는 ‘우아한 먹방’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매 장면마다 잘 차린 한 끼 식사를 담고 있다. 특별한 의미를 담지 않은 음식들이지만 한 끼를 해 먹어도 대충 해 먹는 법이 없다. 특히 배춧국, 아카시아 꽃 튀김, 밤 조림, 잘 말린 곶감 등의 음식은 그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인 만큼 시간적인 공을 들인다. 영화의 음식을 맡았던 진희원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영화 작업 이후 “나 자신을 위해 공들여 밥상을 차리면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나 아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정들이 선사하는 무심한 위로를 늘 마음에 두고 작업했다”고 밝힐 정도로, 혜원의 혼밥과 한끼 음식은 그녀의 지친 도심 생활의 기억을 천천히 달래주는 요소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이노가시라 고로

▷혼밥 레벨 ★★★☆ 혼밥 유형 맛집 지도 작성, 음식과의 대화 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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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만화가 원작인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수입물품 유통업자 이노가시라 고로가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다니는 일상을 소개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음식을 먹는 포상의 행위.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라는 이 작품의 주제처럼, 주인공 고로는 하루 업무 중, 또는 일을 마치고 허기가 질 때면 홀로 음식점으로 향한다. 평범한 우리네 모습과 같다. 그동안 국내 드라마에서 혼밥러들이 대체로 각각의 사연이 있거나,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 당당함을 매력으로 내세웠다면, ‘고독한 미식가’ 속 고로는 자연스러운 먹방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혼밥 방법 역시 간단하다. 한끼 정갈하게 나오는 음식은 천천히, 충분히 씹어먹고 음미한다. 그리고 사장님(또는 요리사)이 알려주는 ‘가장 맛있게 먹는 팁’ 또한 절대 놓치지 않는다. 한입 맛볼 때마다 표정과 생각을 통해 음식 맛을 표현하는데,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고소하면서도 달아서 입에 감긴다’ ‘그래그래, 이런 게 기쁜 거라고’ ‘나는 마치 인간 화력 발전소다’ 등으로 공감을 자아내는 평을 남긴다. 그의 먹방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침이 고일 수밖에.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구대영(윤두준)

▷혼밥 레벨 ★★☆ 혼밥 유형 음식 인플루언서, 식도락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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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의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중에서도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가 포커스를 맞춘 것이 바로 ‘맛있는 밥 먹기’이다. 올해 초 방영된 시즌3를 포함해, 시즌1, 2에서도 프로 혼밥러의 모습을 보여준 주인공 구대영(윤두준). 그는 상당한 식도락가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먹을 때도 나름의 철학이 있다. 바삭거리는 탕수육의 식감에 결 좋은 파이 조각을 떠올리며, 중국 음식에서 프랑스의 향기를 느끼는 정도랄까. ‘식샤를 합시다’라는 인기 맛집 블로거로 분한 구대영(시즌1 참고)은 항상 푸짐한 음식 사진 대신,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찍어 올리곤 했다. SNS 속 다 똑같아 보이는 음식 사진이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눈 앞에 진짜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사진 찍기보다 먹기부터 해야 할 테고, 국물까지 싹싹 비워야 진정한 맛집이라는 것. 그렇게 그는 맛집 인증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뒤바꾸는 등 매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혼밥의 기술을 선보였다. ▶드라마 ‘단짠오피스’ 도은수(이청아)

▷혼밥 레벨 ★★☆ 혼밥 유형 음식 인플루언서, 식도락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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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딩 맛집 탐방 드라마 ‘단짠오피스’. 극 속의 주인공인 도은수(이청아)는 30대 싱글 직장인 여성이다. 그녀는 맛있는 한 끼 식사의 여유를 안다. 다 같이 모여 먹는 직장 점심 시간에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혼자 찾은 벤또(일본식 도시락) 가게. 주변의 조용한 분위기에서 도은수는 마치 일본 여행을 온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녀의 혼밥 스킬 역시 숙련된 모습이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엔 휴대전화에 시선을 두지 않고, 오픈 주방에서 셰프들이 숙련된 손놀림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그리고 가게 코스 요리의 장점을 십분 활용, 음식이 차례대로 나올 때마다 혼자 온 것을 인식할 시간 없이 음식에만 집중을 한다. 다양한 음식 중에서 ‘뭘 먼저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처럼 평일 점심 시간, 하루쯤은 인적이 드문 나만의 아지트나 단골 맛집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잠시 동안 복잡한 현실을 잊는 진정한 직장인의 점심의 맛을 볼 수 있다.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 ‘밥블레스유’ 이영자, ‘나혼자 산다’ 화사

▷혼밥 레벨 ★★★★★ 혼밥 유형 맛집 내비게이터, 정해진 레시피 준수는 물론, 내맘대로 먹는 음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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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이영자에게 ‘맛있게 먹는 법’을 운운하기는 입 아프다. 사람들이 TPO에 맞춰 스타일링을 하듯, 그녀는 TPO에 맞춰 음식을 선택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이영자가 추천하는 ‘맛집 Pick’은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대표 음식 섭렵부터, 때론 ‘썸’ 대상인 셰프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가서 종종 혼밥을 즐길 줄 알고, 과거 개그맨 시험 8수 끝에 합격하고 나서 먹었다는 만두 넣은 라면을 자취생들의 최고의 호사식품으로 꼽으며 추천해주기도 한다. 무엇이든 그 순간에 가장 어울릴 만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된다는 것이 그녀의 혼밥 지론이다. 올 여름 대한민국에 곱창 대란을 불러 일으킨 화사의 혼밥 스킬도 살펴보자. 대낮에 찾아간 곱창집.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에 ‘나 홀로’ 모듬 곱창을 즐겼던 화사. 혼밥 레벨 테스트 중에서도 고난이도 수준을 쉽게 해내는 여자 아이돌의 모습은 그 전까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화사가 쏘아 올린(?) 곱창 대란은 그렇게 시작했다. 곱창을 한 입 가득 맛볼 때마다 ‘흐음~!’ 감탄사를 날리는가 하면, 곱창이 느끼할 때쯤엔 매콤한 곱창 전골을 먹어 입맛을 달래며, 배가 부른 상태에서 뭔가 아쉬울 때쯤에는 볶음밥 추가를 요청한다. 이 장면에는 시청자들의 박수 찬사가 이어지기 충분했다.

▶드라마 ‘혼술남녀’ 진정석(하석진)

▷혼밥 레벨 ★★★ 혼밥 유형 ☞ ‘감정 낭비’ 별로, ‘시간 낭비’ 별로, 고로 ‘회식 자리’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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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맛집을 찾는 한 남자. 다른 손님이 ‘멀쩡하게 생겨서 혼자서 웬 궁상’이라고 뒷담을 까도 주인공 진정석(하석진)은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그에게 혼밥, 혼술은 일종의 힐링 타임이다. 럭셔리한 혼술로서 지친 하루를 보상받는 셈이다. 그의 혼밥 스킬은 어떨까. 먼저, 음식이 나오면 온전한 상태에서 곧바로 ‘인증샷’을 찍는다. 사진을 SNS에 올리고 나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음식 맛을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기분 좋은 술 한잔이 함께 한다. 음주는 절대 혈중 알코올 농도 0.08%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그만의 원칙. 이 기준을 따르다 보면 오늘 하루도 고생한 스스로를 위로하고, 대접받는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혼술이 어렵다는 이들을 위해 진정석의 말을 빌려본다. “나는 혼술이 좋다. 하루 종일 떠드는 게 직업인 나로선 굳이 떠들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이, 이 고독이 너무나 좋다. 혼술을 즐기는 덴 나만의 원칙이 있다. 첫째, 퀄리티 있는 분위기에서 마신다. 둘째, 퀄리티 있는 안주와 함께 한다. 셋째, 퀄리티 있는 음주 문화를 지향한다. 절대, 혈중 알코올 농도 0.08%를 넘지 않는다. 그 상태가 내가 딱 기분 좋게 마신 수치니까.”(-‘혼술남녀’ 中) [글 이승연 기자 사진 포토파크, 매경DB, tvN, MBC, 각 영화·드라마 스틸컷]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7호 (18.12.1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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