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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gograd in ‘에너미 앳 더 게이트’…스탈린과 히틀러, 오기 대결이 부른 지옥

입력 : 
2018-12-06 11: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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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 참전 군인 저격수의 숙명적 삶과 죽음을 다룬 영화다. 제목인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문 앞의 적, 눈앞의 적’을 뜻하는 것으로, 영화에서는 저격 총의 조준경으로 바라보는 적을 의미한다. 이 영화의 무대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비극적인 전투가 벌어진 볼고그라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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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고그라드를 흐르는 볼가강변 위키피디아ⓒOkansoyluturk, 위키피디아ⓒAlonso de Mendoza
▶볼고그라드의 옛 이름, 스탈린그라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960km에 거리에 위치한 인구 110만 명의 도시 볼고그라드. 유럽에서 저수량이 가장 많은 볼가강이 흐르는 곳이다. 러시아 하면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 그리고 2014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소치 정도만 알고 있는 ‘상식적인 일반인’에게 볼고그라드는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옛 지명이 ‘스탈린그라드’라는 것을 알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스탈린그라드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역사상 가장 최악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독일군과 소련군 그리고 민간인까지 더해 총 200만 명이 불과 6개월 만에 사망했다. 1942년 8월21일부터 1943년 2월2일까지 이어진 이 전투는 현대 전쟁사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시 독일과 소련의 모스크바 전투, 6.25전쟁 때 미군과 중공군의 장진호 전투와 함께 ‘세계 3대 겨울 전쟁’으로 불린다. 독일군은 스탈린의 이름이 붙은 이 도시를 점령해 스탈린에게 치욕을 안겨 주면서 동시에 러시아 남쪽의 코카서스 유전을 장악하기 위해 30만 명의 병사를 보냈고, 소련 역시 스탈린의 이름이 붙은 이 도시를 사수해야 한다는 지상 과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름 하나에 무고한 젊은 병사가 무려 200만 명 가까이 죽은 ‘어리석은 전투’였다.

이 도시의 본래 이름은 ‘차리친’이었다. 레닌에 이어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자 뒤늦게 아부꾼들은 러시아 혁명 내전에서 차리친을 황제의 군대로부터 지켜 낸 스탈린의 공적을 되살려 ‘스탈린그라드’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권력은 유한한 것.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는 스탈린 격하의 일환으로 이 도시의 이름을 1961년 볼고그라드로 바꾸었다.

이곳에는 스탈린그라드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마예프 쿠르간’ 언덕에 거대한 조각상이 있다. 이 석상의 이름은 ‘조국의 어머니가 부른다’로 1967년 스탈린그라드 승전 25주년을 맞아 높이 87m의 기념상을 세운 것이다. 언덕에서 석상까지의 계단은 200개. 이 역시 전투 200일을 상징한다. 칼을 높이 든 어머니가 참전한 아들과 딸을 격려하는 모습이라는 이 석상은 소련과 러시아를 이어 가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흔적은 이뿐만 아니다. 당시 전투에 쓰였던 무기를 녹여 만든 전쟁 기념물 그리고 포격을 맞은 흔적이 완연한 5층짜리 건물인 전쟁 박물관도 있다. 전쟁 박물관에는 당시 전투에서 숨진 전사자의 이름이 벽면에 가득하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횃불이 24시간 꺼지지 않는다.

또한 볼고그라드에는 치열했던 전투를 기억나게 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바실리 자이체프’다. 그는 소련의 전설적인 저격수였다. 그의 총은 독일군에게 공포였다. 바실리는 소총 하나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영웅이 되었고, 전쟁이 끝나고 이곳에 묻혀 ‘신화’가 되었다.

바실리의 숙명적 삶과 죽음을 다룬 영화가 바로 ‘에너미 앳 더 게이트’다. 제목인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문 앞의 적, 눈앞의 적’을 뜻하는 것으로 영화에서는 저격 총의 조준경으로 바라보는 적을 의미한다. 영화는 바실리 자이체프와 바실리를 저격하기 위해 독일에서 파견된 저격수 쾨니히 간의 숨 막히는 대결을 다룬다. 두 사람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꼭 죽여야 하는 존재다. 숨통을 조이는 긴장감, 한 발에 생명을 거는 저격수의 운명이 생생하다.

물론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끝난 지 벌써 76년,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 역시 찾기 힘들어 지금의 볼고그라드는 관광지처럼 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삭제되지 않는다. 주검이 된 200만의 목숨들, 그들에게 이 도시의 이름 ‘스탈린’은 과연 어떤 가치가 있었는가, 아니면 생과 사의 갈림에서 그저 살기 위해 총을 들었는가, 하는 질문은 지금 별 의미도 없고, 답할 사람도 없다. 그래도 당시 얼어붙은 볼가강을 건너 죽음의 땅 스탈린그라드로 향하던 영화 속 이름 없는 병사의 무거운 발길은 지금 다시 봐도 애처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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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 솜씨로 소련의 영웅이 되다 1920년 우랄산맥, 눈 덮인 들판. 다섯 살 소년 바실리 자이체프는 총을 겨누고 있다. 그 옆에는 할아버지가 있다. 들판에는 말 한 마리가 묶여 있다. 말은 몸부림을 친다. 말을 응시하는 반짝이는 눈. 바로 늑대다. 바실리는 사냥총으로 늑대를 노린다. 노련한 사냥꾼인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사냥꾼으로 살아가기 위한 사격술을 가르치는 중이다. 말에게 서서히 접근하는 늑대. 바실리의 손가락이 방아쇠로 향한다. 그리고 조금씩 방아쇠를 당기지만 총구는 가늘게 떨리고 있다. 겁을 먹은 바실리는 이미 늑대에게 진 것이다. 말에게 달려가는 늑대, 그때 총성이 울린다. 할아버지가 방아쇠를 당겼다.

군인이 된 바실리(주드 로)의 독백이 흐른다. “나는 돌이다. 나는 정지해 있다. 아주 천천히 나는 입속으로 눈을 집어넣는다. 그렇게 하면 놈이 내 입김을 볼 수 없게 된다. 나는 여유를 가지고, 놈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내게는 단 한발의 총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놈의 눈을 겨냥한다. 나는 떨지 않는다. 내게 두려움은 없다.”

1942년, 세계는 죽음의 전쟁터로 변했다. 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프랑스를 점령하며 유럽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볼셰비키 혁명 후 공산 정권이 들어선 소련. 스탈린은 히틀러와 1939년 ‘독소 불가침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히틀러에게 협정은 그저 한 장의 휴지였다. 그에게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포함한 거대한 제3제국 건설이 꿈이었다. 더구나 히틀러는 평소 유대인, 집시, 공산주의자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히틀러는 독일군에게 소련 점령을 지시했다. 독일군 기갑사단은 모스크바로 진격해 들어갔다. 소련은 인해 전술로 독일을 막아 냈다. 그 무렵 히틀러는 소련 남부 유전 지대를 장악하기 위해 우랄산맥 남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그 길목에 스탈린그라드가 있다. 히틀러에게 스탈린그라드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군수 기지, 유전으로 가는 길목, 볼가강과 연결된 수송로 그리고 무엇보다 스탈린의 이름을 붙인 도시를 점령함으로써 소련에 상징적인 승리를 거두고 싶어 했다. 마찬가지다. 스탈린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도시의 사수를 명령했다. 소련의 젊은이들은 불과 일주일 훈련을 받고 군복만 입은 채 스탈린그라드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중에는 바실리도 있었다.

스탈린그라드는 지옥이었다. 하늘에서는 독일 폭격기가 폭탄을 퍼부었다. 배를 타고 볼가강을 건넌 바실리. 총조차 없었다. 일부 병사에게만 총이 지급되고 나머지는 5발의 총알이 든 탄창만 지급되었다. 동료가 죽으면 그의 총을 들고 오로지 전진하는 것만이 전술이었다.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정치부원들은 “우라, 우라(진격, 진격)”를 외쳤다. 독일군이 소련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빗발치는 총알, 군인들이 죽어 갔다. 소련군은 후퇴했다. 하지만 ‘후퇴는 용서 없다’는 정치부원들이 되돌아서는 자기 편 소련군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곳 없는 병사들은 그저 죽는 것밖에 선택이 없었다.

바실리는 쓰러졌다. 온 사방이 시체였다. 그때 누군가 움직인다. 정치 장교 다닐로프(조셉 파인즈)다. 바실리와 다닐로프는 기어서 부서진 벽에 기댔다. 건너편에는 독일군 장교와 부관 그리고 3명의 병사가 있었다. 장교는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었다. 다닐로프는 총으로 장교를 저격하려고 했지만 피범벅된 눈으로는 제대로 겨냥할 수 없었다. 그때 바실리가 “폭탄이 터지는 순간에 쏘세요”라고 말하자 다닐로프는 바실리에게 묻는다. “총을 쏠 줄 아나?” “네, 조금요.”

총을 받은 바실리는 겨냥한다. 첫 발, 정확하게 장교의 머리를 관통한다. 그리고 병사 한 명이 쓰러진다. 또 한 명. 이때 독일군이 수류탄을 꺼내 바실리에게 다가온다. 바실리는 그 독일군도 사살한다. 저격을 눈치채고 뛰어가는 독일군 부관. 그 역시 바실리의 마지막 총알에 쓰러졌다. 다닐로프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다. ‘조준경도 없는 총으로 정확하게 저격하다니.’

다닐로프는 정치장교들에게 바실리의 무용담을 설명한다. 그리고 “바실리 같은 영웅이 필요합니다. 그는 인민에게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한다. 바실리는 저격병으로 발탁된다. 그에게는 이제 조준경이 달린 총이 지급되었다. 바실리의 천부적인 저격 솜씨는 곧 소련군에게는 희망이, 독일군에게 공포가 되었다.

바실리의 무용담은 다닐로프의 글로 옮겨져 국민들에게 퍼져 나갔다. 바실리는 소련의 영웅이 되었다. 그를 본받아 저격여단에 지원병이 몰렸다. 공산당은 바실리를 영웅시하며 그를 소련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바실리와 다닐로프는 소련군과 국민에게 희망과 승전의 소식을 전한다는 공통의 목적에서 우정도 싹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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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저격수의 생사를 건 결투 어느 날, 어린 소년 샤샤의 집에 간 바실리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타냐(레이첼 와이즈). 대학생으로 자원 입대했다. 바실리와 타냐는 연인이 되었다. 삶과 죽음이 수없이 교차하는 바실리의 세계. 그 역시 마음속으로는 갈등과 번민에 휩싸여 있었다. 조준경으로 바라보는 적군의 얼굴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바실리에게 타냐는 유일한 위로였다. 하지만 다닐로프 역시 타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타냐를 향한 다닐로프의 마음을 눈치 챈 바실리는 자신의 마음을 살짝 감춘다. 전쟁터에서도 사랑은 싹트고, 누군가는 사랑을 감추어야 했다.

독일군은 바실리를 제거하기 위해 베를린에서 저격병을 호출했다. 전선에 도착한 저격병은 쾨니히 소령(에드 해리스). 독일군 최고 저격수이자 저격 학교 교관이다. 쾨니히는 바실리의 동선과 저격 습관 등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그에게 독일군 장교가 묻는다.

“그를 어떻게 잡을 건가요?”

“그가 나를 찾도록 해야지.”

바실리는 여느 때처럼 파트너와 합동 작전을 편다. 하지만 이내 함정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진퇴양난의 순간, 바실리와 동료가 있는 쪽으로 폭탄이 터지기 시작한다. 바실리는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겁에 질린 동료는 뛰쳐나간다. 그 순간, 쾨니히의 총이 불을 뿜는다. 동료가 쓰러지고 바실리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쾨니히는 통신 수리병을 미끼로 바실리의 위치를 파악하려 한다. 그는 포로로 잡은 소련군에게 독일 군복을 입혀 일부러 노출시킨다. 바실리의 파트너 쿨리코프(론 펄먼)는 수리병을 저격한다. 하지만 바실리는 “이상해요. 저 수리병들은 일부러 죽으라고 보낸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만 쿨리코프는 듣지 않는다. 바닥이 무너진 건물. 옆으로 건너뛰는 쿨리코프와 바실리. 그 순간, 총성이 울리며 쿨리코프는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두 번에 걸친 쾨니히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바실리는 의기소침해진다. 한편 소련군은 다닐로프에게 빨리 쾨니히를 제거하고 ‘바실리의 영웅담’을 이어 나가라 재촉한다. 다닐로프는 바실리에게 “내게 방법이 있다. 쾨니히 옆에 우리 편을 붙여 놨다”고 격려한다. 그는 바로 어린 소년인 샤샤다. 샤샤는 쾨니히가 이곳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 잔심부름을 시키면서 데리고 있는 아이다. 쾨니히는 샤샤에게 묻는다.

“그런데 너는 왜 독일군을 돕니?”

“그건, 더 강하기 때문이에요. 이 전쟁에서 독일군이 이길 것 같아서요.”

“아니야, 샤샤. 네가 초콜릿을 좋아하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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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샤의 마음 속 영웅은 바실리다. 다닐로프는 샤샤를 이용해 쾨니히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고, 쾨니히는 바실리의 동선을 파악한다. 거짓 정보에 속아 미리 매복한 쾨니히 뒤로 바실리가 접근한다. 노련한 쾨니히는 이를 눈치채고 역습한다. 위기에 빠진 바실리. 움직일 수가 없다. 이때 바실리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온다. 바로 타냐다. 타냐는 유리 조각으로 햇빛을 반사시킨다. 순간 시야를 잃은 쾨니히. 바실리의 총이 불을 뿜는다. 쾨니히는 손에 상처를 입는다. 쾨니히는 샤샤가 자신의 계획을 소련군에게 알려주었다고 짐작한다. 그날 밤, 바실리와 다닐로프는 마주 앉는다. 다닐로프는 타냐가 자신의 마음의 몰라 준다며 바실리에게 말한다. 바실리는 오히려 다닐로프에게 “나를 더 이상 영웅으로 만들지 마세요. 당신이 만들어 준 그 허상의 무게가 이제는 견딜 수 없어요”라고 부탁한다. 이때 샤샤가 나타나 다닐로프에게 쾨니히의 근황을 알려준다. 어린아이를 이용하는 다닐로프에게 분노하는 바실리. 하지만 다닐로프는 “바실리, 내가 저 아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야. 저 아이가 너를 믿기 때문에 자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야”라고 말한다. 바실리는 말없이 다닐로프를 쳐다본다.

며칠 후, 바실리는 샤샤가 알려준 장소에 매복한다. 매복은 외로운 싸움이다. 적과 긴장과 그리고 몰려오는 잠과의 사투다. 잠깐 잠이 들어 버린 바실리. 오히려 쾨니히에게 역습을 당하지만 죽은 척하고 시체 더미에 몸을 숨긴다. 이때 한 군인이 시체를 뒤지고 다닌다. 그는 바실리의 몸에서 군번 줄을 떼어 낸다. 위기를 넘기는 바실리. 하지만 군번 줄을 손에 넣은 군인에 의해 ‘바실리는 죽었다’는 소문이 퍼진다. 이 소문이 어린 샤샤의 귀에도 들어갔다. 바실리가 죽었다고 슬퍼하는 샤샤. 쾨니히는 그런 샤샤를 달랜다.

“샤샤, 슬퍼하지 마.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내가 아직 죽이지 않았거든.”

전투는 더욱 치열해진다. 폭탄은 사방에서 터진다. 결국 타냐도 폭탄에 맞는다. 이 소식을 들은 다닐로프는 타냐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타냐를 사랑하던 그는 절망감에 빠진다.

다닐로프는 바실리의 파트너가 된다. 쾨니히는 쉽게 바실리의 조준경에 들어오지 않는다. 숨 막히는 대결이 펼쳐진다. 그때 다닐로프가 바실리에게 말한다.

“바실리, 내가 어리석었네. 인간은 언제까지나 인간일 수밖에 없어. 신형 인간은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이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네. 하지만 부러워할 것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 웃음, 우정… 내게는 없지만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 이 사회에서, 심지어는 소련의 사회에서조차 부유한 자와 빈곤한 자는 언제나 존재할 걸세. 재물에 부유한 자, 재물에 빈곤한 자. 사랑에 부유한 자, 사랑에 빈곤한 자. 타냐는 돌아오지 않을 걸세. 그녀는 죽었네. 자, 바실리, 내가 지금 놈의 위치를 알려주겠어.”

다닐로프가 몸을 일으키자, 곧바로 총성이 울린다. 쓰러지는 다닐로프. 잠시 후, 쾨니히가 서서히 몸을 드러낸다. 그는 천천히 다닐로프가 쓰러진 쪽으로 움직인다. 순간, 몸이 오싹한 쾨니히. ‘누군가,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고개를 돌려본다. 바실리의 총이 자신을 겨누고 있다. 이미 승부가 난 것을 깨달은 쾨니히는 천천히 몸을 펴고 모자를 벗는다. 한 발의 총성. 쓰러지는 쾨니히 뒤로. 바실리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두 달 후, 수백만 명이 희생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소련군의 승리로 끝났다. 바실리는 타냐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바실리는 그녀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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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독재자의 오기 대결이 부른 지옥도 영화는 프랑스 감독 장 자크 아노가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든 구 소련의 인물이 중심이다. 고독한 한 발의 승부를 해야 하는 저격수의 심리와 그들의 ‘죽음의 게임’을 밀도 있게 표출했다. 윌리엄 크레이그의 동명 소설 『Enemy at the Gates: The Battle for Stalingrad』가 원작이다. 작가는 바실리 자이체프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상상과 추리를 더해 ‘팩션’을 완성했다.

영화의 주제는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당연히 개인의 이상, 가치는 먼지 같은 존재가 된다. 이 영화의 무대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비극으로 몰고 간 두 주인공, 즉 스탈린과 히틀러의 인간과 전쟁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말이 있다. 스탈린은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고 했고, 히틀러 역시 “삶이란 무엇인가? 삶은 곧 국가다. 개인은 어떻든 죽어야 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지난 세기의 인물이지만 이 두 사람이 지배하던 시절, 인간의 존엄은 그저 책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본래 저격수의 존재는 ‘공포’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들지 모르므로 죽음의 사자인 것이다. 물론 저격수 역시 또 다른 저격수의 목표가 된다. 늑대를 잡기 위해 더 강한 늑대가 필요하듯 저격수를 잡기 위해서는 저격수가 제격이다. 바실리는 총을 잘 쏜다는 이유만으로 인민의 영웅이 되었다. 그가 영웅이 된 것은 그의 저격 솜씨가 패전에 시달리는 모두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은 ‘독일군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된다. 물론 그 이면에는 독재자 스탈린, 히틀러의 ‘오기’ 대결도 있었다. ‘스탈린그라드’를 꼭 점령해야 하는 이유, 이 도시를 절대 사수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전쟁의 승패도 그 이유지만, ‘스탈린’이라는 이름값으로 무려 200만 명의 목숨이 희생된 것이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다. 도대체 이 도시가 무엇이기에, 두 독재자의 광기가 폭발했으며 군인과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야 했는가,이다.

차리친이 스탈린그라드로 이름이 바뀐 것 역시 역사적 사건에서 기인한다. 1919년 러시아에서 ‘붉은 혁명’이 일어났다. 1919년 5월, 적군 16만 명이 장악하고 있던 차리친에 백군 25만 대군이 몰아닥쳤다. 백군은 도시를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차리친의 적군은 구원을 요청했지만 공산당 지도부는 사수 명령만 내렸다. 이때 지방 볼셰비키 군사평의회 책임자였던 스탈린이 차리친 구원을 주장했다. 백군의 집요한 공격에 차리친은 백군에게 넘어갔지만 적군이 1920년 이 도시를 탈환했다. 백군은 차리친을 빼앗기고 이후 적군과의 전투에서 승기를 놓치면서 러시아 적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이 전투에서 적군은 8만 명, 백군은 13만 명이 사망했다. 이때 적군의 지휘관이 바로 스탈린이었다. 1924년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하자 공산당은 스탈린의 차리친 전투의 공로를 앞세워 이 도시 이름을 스탈린그라드로 바꾸었다. 스탈린 역시 이 도시에 애착을 가졌다. 그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하던 스탈린그라드에 트랙터, 탱크, 전기, 기계 등 각종 공장을 지어 스탈린그라드를 소련 남부 최대의 공업 도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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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투 히틀러는 유럽에서의 승전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독일의 세계 지배를 위한 전략을 구상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러시아였다. 히틀러는 러시아를 독일 민족의 원료와 식량 창고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1941년 6월22일, 히틀러는 ‘바르바로사 작전’ 명령을 내렸다. 독일군 146개 사단 300만 명, 전투기 2000대, 전차 3000대를 동원한 소련 침공이었다. 히틀러는 독일군을 3개 방면으로 진출시켰다. 북부 방면 군의 목표는 레닌그란드, 중부 방면 군은 모스크바, 그리고 남부 방면 군은 우크라이나의 곡창 지대를 향했다. 전쟁 초기 독일군은 승기를 잡았다. 소련은 모든 힘을 다해 저항했다. 몇 개월의 전투에서 소련군은 거의 몰살당했다. 스탈린은 겨울이 오기를 기다리며 초토화 작전을 지시했다. 철수하면서 모든 것을 불태웠다. 독일군은 그저 황량한 땅만 점령했다. 또한 스탈린은 모든 군수 공장을 해체해 우랄산맥 서쪽으로 집결시켰다. 그곳에 다시 기계를 조립하고 전차, 대포, 총, 탄약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모스크바만은 지키라고 명령했다. 히틀러의 참모들은 독일군 주력 부대를 중부군에 집중해 모스크바 함락을 주장했지만 히틀러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코카서스의 유전 지대와 광활한 농장 지대 점령을 지시했다. 히틀러는 남부군이 러시아 남부를 장악하면 롬멜이 지휘하는 아프리카 군단이 이집트와 터키를 점령하고 남부군과 조우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는 한마디로 망상에 가까웠다. 하지만 히틀러는 누구의 조언도 듣지 않았다. 그는 ‘위대한 아리안족의 독일 제국 건설’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구나 히틀러는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하자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해 스탈린에게 치욕을 안겨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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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부군의 주력 부대는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장군이 지휘하는 독일 6군. 약 33만 명의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로 진격했다. 이때가 1942년 7월17일, 여름이다. 스탈린그라드는 폐허가 되었다. 600대의 독일군 폭격기에 도시는 파괴되었다. 시민 4만 명이 독일군의 폭격에 희생됐다. 하지만 이 부서진 건물과 잔해들이 소련군의 엄폐물이 되었다. 소련군은 시베리아에서, 우랄산맥 서쪽에서 수없이 많은 군인을 스탈린그라드 방어에 투입했다. 독일군의 기갑 전술은 이 스탈린그라드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시가전이 벌어졌고 양측의 저격수들이 독일군과 소련군의 생명을 노렸다. 소련군은 그야말로 인해전술로 버텼다. 많은 군인들이 희생되었지만 하루가 지나면 또 그만큼의 신병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독일군은 지치기 시작했다. 장기전에 돌입하자 곧 러시아에 무서운 혹한이 불어닥쳤다. 독일군의 보급은 점차 끊기기 시작했다. 그해 11월, 소련군은 대규모 반격 작전을 실시했다. 약 100만 명의 소련군을 동원한 ‘천왕성 작전’이었다. 독일군은 고립되기 시작했다. 독일 6군 사령관 파울루스는 베를린에 타전했다. ‘지원병 요청, 혹은 철수.’ 히틀러는 둘 다 거부하고 오로지 ‘현재 위치 사수’를 명령하면서 오히려 사령관 파울루스를 육군 대장에서 원수로 진급시켰다. 이는 죽음을 의미했다. 독일군의 원수가 항복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파울루스는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독일군의 전차는 움직이지 못했다. 기름도 얼어 버렸다. 병사들은 군복, 식량, 탄약이 없었다. 그는 1942년 2월2일, 소련군에 항복했다. 히틀러의 광기와 스탈린의 폭주가 제대로 만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마무리 된 것이다.

하지만 전투의 결과는 끔찍했다. 독일군과 루마니아, 헝가리 등 주축군은 무려 85만 명이, 소련군은 113만 명이 전사했다. 역사상 한 전투에서 200만여 명이 전사한 것은 전례가 없었다. 당시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의 생명은 약 24시간이었고, 독일군은 7초에 한 명씩 희생되었다고 한다. 두 독재자의 헛된 욕망의 결과가 지옥을 낳은 것이다.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소련군의 희생은 너무나 컸다. 그들은 오로지, 사수와 공격이라는 선택 앞에서 죽음을 맞았다. 당시 소련은 후퇴하는 아군들에게도 무차별적인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어차피 후퇴해도 죽고, 공격해도 독일군의 총에 죽는 상황이었다. 영화는 이 스탈린그라드 전투 비극의 한 단면을 담았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저격수다. 영어로 ‘스나이퍼 Sniper’라 부르는 저격수는 영화의 매우 흥미로운 소재다. 저격수 한 명의 역할은 군에서 거의 1개 중대의 발을 묶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저격수는 실제적인 피해보다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심리적 공포감을 안겨 주는 존재였다. 베트남전에서의 미군 기록에 따르면 미군이 1인당 20발을 쏴야 적군 한 명을 사살했는데, 저격수는 적 한 명 사살에 약 1.3발 정도면 됐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저격수로 핀란드의 ‘시모 해이해’를 꼽는다. 그는 20세기 핀란드와 소련의 겨울 전쟁에서 무려 소련군 542명을 사살해 당시 소련군이 확전을 주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의 두 주인공인 바실리 자이체프와 에르빈 쾨니히는 약 400명을 저격한 기록을 갖고 있다. 사람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를 기록으로 매기는 것은 잔혹한 짓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저격수로 복무했던 군인들은 제대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심하게 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Daum영화]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7호 (18.12.1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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