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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2대주주 부상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경영권 위협보단 호텔·땅 활용한 배당 압박

  • 배준희 기자
  • 입력 : 2018.12.03 09:19:28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가 한진그룹을 상대로 실력 행사에 나설지 주목된다.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가 한진그룹을 상대로 실력 행사에 나설지 주목된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인 KCGI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면서 국내에서도 주주행동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는 단순히 주주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CEO(최고경영자) 선임이나 배당 확대 등 기업 경영에 큰 목소리를 내는 전략을 구사하는 자본을 뜻한다. 향후 행동주의 투자 전략을 표방한 헤지펀드가 우후죽순 생겨날 경우 경영권 분쟁이 잦아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KCGI는 채권 애널리스트 출신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로 지난 7월 설립됐다. 강 대표는 자타공인 ‘지배구조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LIG그룹의 사모펀드 운용사인 LK파트너스 대표 자리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사모펀드 업계에 발을 들였다. LK파트너스 시절 55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해 요진건설산업 지분 45%를 취득하며 2대 주주로 올라 이목을 끌었다. 강 대표는 지분 취득 후 기업 경영이 안정되자 2년여 만에 지분을 되팔아 높은 수익을 거뒀다. 지난 7월 LK파트너스에서 독립해 사모펀드 운용사 KCGI를 설립했다.

KCGI는 지배구조 때문에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 기업가치를 올려 수익을 내는 것이 목표다. 첫 타깃으로 삼은 기업이 한진그룹이다. 지난 11월 15일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한진칼 지분 9% 보유 사실을 밝히면서 한진그룹을 겨냥했다. KCGI는 ‘경영 참여 목적의 투자’라고 공시하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17.8%)에 이어 2대 주주 지위를 꿰찼다. 한진칼은 한진그룹의 지주회사다. 대한항공, 진에어, 한진, 칼호텔네트워크 등을 계열사로 갖고 있다.

공시가 알려진 후 한진칼 주가는 지난 11월 16일 14.75% 상승한 2만8400원까지 치솟았다. 한진칼에 대한 의결권 확보 대결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과 주주가치 제고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KCGI 측이 지난 11월 19일 입장문을 내고 “기존 경영진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며 “경영권을 위협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밝히면서 주가는 다시 7% 가까이 하락하는 등 롤러코스터를 탔다. KCGI는 입장문에서 “한진칼은 한진그룹 지주회사로 그 계열사들이 유휴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투자가 지연돼 매우 저평가된 상태”라며 “주요 주주로서 감시·견제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하면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 KCGI 1호 펀드가 지분 9%를 취득한 것을 경영권 장악 의도로 해석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경영권 위협보다는 주요 주주로서 경영활동에 관한 감시·견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KCGI 측은 “조만간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겠다”며 상세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물밑서 한진 측과 협상 나설 가능성

요구사항 거부 시 내년 주총서 표대결

증권가에서는 강 대표가 곧바로 임시주총 등을 소집해 세(勢) 대결을 벌이기보다는 당분간 물밑에서 한진그룹 측 주요 경영진과 직접 만나 요구사항 등을 전달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본다. 국내 헤지펀드 운용사 임원은 “먼저 회사와 협상을 벌인 뒤 결렬될 경우 언론을 통해 요구사항을 공개하고 주총 등에서 실력 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한진칼을 고른 것도 최근 오너 일가 갑질 이슈 등으로 여론전을 펼치기 유리한 구도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촌평했다.

1순위 요구안은 불필요한 자산 매각과 재평가, 이를 통한 배당 확대 등이 거론된다. 한진칼 시가총액은 1조6000억원 수준이지만 한진칼이 보유 중인 서울 종로구 송현동과 인천 율도 등 토지 가치의 장부가만 5500억원에 달한다. 제주에도 정석비행장과 민속촌, 제동목장 등 대규모 토지를 갖고 있다.

한진칼이 지분 100%를 보유한 비상장 기업 칼호텔네트워크도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다. 칼호텔네트워크는 그랜드하얏트인천과 제주KAL호텔, 서귀포KAL호텔, 제주파라다이스호텔을 두고 있다. 호텔 수익성이 좋지 않은 탓에 칼호텔네트워크는 지난해 영업손실 252억원을 기록했다.

배당성향 확대도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한진칼의 지난해 현금성 자산은 2463억원으로 집계됐지만 배당금으로는 75억원을 배정했다. 2017년 배당성향(총 배당금/순이익)은 3.4%, 배당수익률(주당배당금/주가)은 0.7% 수준이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 배당수익률 1.4%의 절반에 그친다.

이 같은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음 수순은 주총에서 KCGI와 조양호 회장 일가의 표 대결이다. 증권가에서는 현실적으로 한진그룹 측이 오너 일가를 설득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주총에서 표 대결로 진검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 경우 첫 공격 시점은 내년 3월 주총이 유력하다. 당장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과 윤종호 한진칼 감사 등 한진칼 등기임원 7명 가운데 4명의 임기가 내년 3월 17일 만료된다. KCGI는 우호 세력과 연합해 새로운 이사진 선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표 대결은 KCGI에 유리한 국면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앞서 지난 6월 한진칼 지분 8.35%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경영진 관련 문제로 공개서한을 보낸 적이 있어 우호 지분 결집 가능성은 높은 상태다. 이사 선임은 보통결의 사항으로 주총 참석자 가운데 절반 이상, 전체 주주의 25% 이상 찬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감사 선임은 KCGI 측에 절대 유리하다. 대주주 전횡을 막기 위한 ‘3%룰’ 때문이다. 지분을 3% 초과해 보유한 주요 주주는 감사 선임 과정에서 3%를 초과하는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한진칼 지분 28.9%를 갖고 있는 오너 일가나 지분 10%가량을 확보한 KCGI 모두 감사 선임 과정에서 3%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만 가능하다. 감사가 교체되면 경영진 견제가 훨씬 수월하다.

양지환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총 표 대결로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을지는 우호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한진그룹이 국민적 공분을 샀던 점을 감안하면 많은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위임할 가능성도 있다. 이사회 장악 이후에는 한진칼의 적자 사업부 정리를 위한 호텔·부동산 매각, 계열사 경영 참여 시도 등이 예상된다. 이번 지분공시로 한진칼 주가는 2019년 주총 표 대결 전까지 상당 기간 급격한 변동성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갈 길 먼 토종 행동주의 펀드

성장 잠재력 크지만 수익률 줄줄이 마이너스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토종 자본으로 만들어진 행동주의 펀드는 총 3개다. 운용 규모는 민망한 수준이다. KB자산운용이 지난 3월 주주행동주의를 지향하며 내놓은 ‘KB주주가치포커스’ 펀드 설정액은 수십억원 수준에 불과하고 라임자산운용의 ‘라임-서스틴데모크라시’,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의 ‘행동매(梅)주식’ 등 사모펀드 규모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첫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주목받았던 라임-서스틴데모크라시 펀드는 출시 2년이 넘었지만 설정액 50억원 미만 ‘자투리’ 펀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상 개별 펀드가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최소 5~10%가량의 지분이 필요한데 국내 행동주의 펀드 규모는 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규모가 워낙 작다 보니 수익률도 볼품없다. 라임-서스틴데모크라시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11월 16일 기준) -7% 수준이다. 행동주의 공모펀드 중에서는 KB자산운용의 주주가치포커스와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10년투자주주행복’ 펀드 수익률이 각각 지난 3월, 7월 설정 이후 -8.5%, -7.5% 수준에 그쳤다.

수익률은 부진해도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성장할 여건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 등 주주환원 중심으로 정부 정책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서다. 지난해 국내 상장사의 평균 배당성향은 약 16%로 일본(34%)이나 중국(30%)보다도 크게 낮다. 물론 단기간에 급성장하기는 힘들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국은 행동주의 펀드를 두고 ‘기업 사냥꾼’이란 인식이 강해 국내 여론을 의식한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부진한 탓이다.

재계에서는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기업을 지킬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함께 나온다.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집중투표제 등을 의무화한다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도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장치를 도입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5호 (2018.11.28~12.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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