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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LOUNGE] 2조6000억 투자 유치한 김범석 쿠팡 대표 | ‘제2 아마존 꿈’ 머나먼 길…수익성이 관건

  • 강승태 기자
  • 입력 : 2018.12.03 10:31:44
1978년생/ 하버드대 정치학과/ 커런트 대표/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 빈티지미디어 대표/ 쿠팡 대표이사(현)

1978년생/ 하버드대 정치학과/ 커런트 대표/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 빈티지미디어 대표/ 쿠팡 대표이사(현)

“현재 쿠팡은 몸집을 키우는 단계다. 한국 e커머스 시장이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국내 시장 공략에 집중하겠다.”

김범석 쿠팡 대표(40)가 2조원 넘는 돈을 유치한 후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소회다.

e커머스 기업 쿠팡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쿠팡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6년 10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성해 만든 펀드)로부터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국내 인터넷 기업 중 사상 최대 규모 투자금액이다. 사실 쿠팡은 이번 투자 유치 전만 하더라도 비관적 전망이 많았다. 쿠팡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손정의 회장이 쿠팡에서 손을 뗄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올해 2분기 소프트뱅크는 보유하고 있던 쿠팡 지분 전량을 비전펀드에 7억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소프트뱅크는 쿠팡에 10억달러를 투자했다. 이 때문에 소프트뱅크가 쿠팡 기업가치를 30% 낮게 평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에 쿠팡 지분을 매각한 대신 추가적으로 20억달러 투자 유치를 이끌어냈다.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며 쿠팡은 자금난 압박에서 벗어나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김범석 대표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손정의 회장의 통 큰 투자

▷반전 계기 마련한 김범석 대표

김 대표는 쿠팡을 설립하기 전부터 이미 잡지 회사 2곳을 설립해 성공적으로 매각한 경험이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에 재학 중일 때는 미국 주요 대학 소식을 담은 ‘커런트’를 창간해 뉴스위크에 매각했다. 졸업 후에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거쳐 잡지 회사 ‘빈티지미디어’를 세웠다. 김 대표는 4년간 성공적으로 운영한 뒤 다시 회사를 매각했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MBA)에 입학한 뒤 그루폰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와 ‘쿠팡’을 설립했다. 설립 당시만 해도 쿠팡은 소셜커머스 기업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e커머스 형태로 자리 잡는다.

과감한 투자와 새로운 서비스를 바탕으로 쿠팡은 국내 인터넷 기업 중 외형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한다. 2014년 매출이 3485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 5조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4년 동안 매출이 약 14배 늘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상당했다. 쿠팡은 지금까지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니라 쓰는 기업이었다. 지난 4~5년간 쿠팡은 약 14억달러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2014년 5월에는 세쿼이아캐피털로부터 1억달러, 같은 해 12월에는 블랙록으로부터 3억달러를 유치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돈은 부족했다. 무리한 투자로 적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매출은 급증했지만 매년 수천억원 영업적자가 발생했다. 그동안 쌓인 적자만 2조원에 이른다. 투자를 받은 금액은 이미 소진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김 대표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등장한 구원투수가 바로 손정의 회장이다. 손 회장은 2015년 쿠팡에 10억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이번에도 비전펀드가 쿠팡에 20억달러를 투자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국내 IT 업계는 김범석 대표에 대한 손정의 회장의 믿음이 이번 투자 유치로 이어졌다고 내다본다.

“쿠팡은 범상치 않은, 재미있는 기업이다.”

지난 2016년 손 회장은 쿠팡을 가리켜 이같이 표현했다. 손 회장은 한번 믿음을 준 기업인에 대해서는 끝까지 믿음을 주는 스타일이다. 2000년대 초반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만나 6분 만에 투자를 결정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손 회장이 다시 한 번 쿠팡을 믿은 것은 김 대표의 소신 있는 철학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 대표는 쿠팡이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해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로켓배송과 친절한 쿠팡맨은 이미 쿠팡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최근에는 배송 전문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를 세우고 제3자 물류 배송 서비스의 길을 열었다. 아울러 새벽배송과 로켓프레시(신선식품 배달 서비스) 등을 통해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한 획을 긋고 있다.

김 대표는 평소 “ ‘많은 고객이 쿠팡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말을 듣기 위해 일한다”고 강조한다. 김 대표의 ‘고객 지향주의’ 또한 손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요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손 회장은 “김범석 대표가 보여준 거대한 비전과 리더십은 쿠팡을 한국 e커머스 시장의 리더이자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터넷 기업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고 밝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쿠팡의 기업가치를 90억달러로 평가했다. 2015년 50억달러보다 2배 높게 재평가 받은 셈이다. 쿠팡은 이번 유치한 자금을 물류 인프라 확대, 결제 플랫폼 강화와 소프트웨어 개발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벌써부터 쿠팡은 투자받은 돈을 바탕으로 국내 한 모바일 결제 플랫폼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나온다.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e커머스 ‘쩐의 전쟁’ 서막

쿠팡의 대규모 자금 유치로 인해 국내 e커머스 시장을 둘러싼 치킨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내 e커머스 시장은 매년 크게 성장하며 올해 1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성장세가 가파른 만큼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은 온라인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조 단위 금액을 쏟아붓고 있다. 신세계는 1조원 투자를 유치받아 ‘쓱닷컴’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롯데 또한 3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SK텔레콤 자회사인 11번가도 사모펀드 운용사인 H&Q코리아로부터 50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쿠팡은 기존 e커머스 기업인 11번가, 이베이옥션은 물론 신세계와 롯데 등 전통의 유통 강자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소비자 욕구에 맞춰 발 빠르게 투자할 수 있는 실행력과 자금력이 관건이다. 결국 ‘끝까지 버티는 쪽이 승자’인 싸움이다.

이 과정에서 쿠팡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적어도 2~3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한다. 지금까지 쿠팡은 매년 적자 논란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쿠팡 측은 ‘계획된 적자’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의 빠른 성장성과 비전이 없었다면 소프트뱅크로부터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었겠느냐”고 말한다.

쿠팡 지분은 미국법인인 쿠팡LLC가 100% 보유하고 있다. 이번 투자로 비전펀드는 쿠팡LLC의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 최대 주주로 올라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쿠팡 투자 주체가 소프트뱅크에서 비전펀드로 바뀌었다는 점은 쿠팡의 향후 경영 행보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비전펀드는 손 회장이 2016년 10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성해 만든 펀드지만 사우디 정부계 투자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가 최대 출자자(48.6%)다. 소프트뱅크(30.1%)는 PIF 지분에 훨씬 못 미친다. 손 회장은 쿠팡의 적자를 감내했다. 하지만 비전펀드의 나머지 출자자들이 쿠팡의 적자를 계속 용인할지 미지수다.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 모델 확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펀드는 만기가 있고 언젠가는 자금 회수를 고민해야 한다”며 “(쿠팡이) 더 이상 수익 모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쿠팡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기업은 아마존이다. 아마존 또한 쿠팡과 마찬가지로 지나칠 만큼 ‘고객 만족’에 중점을 뒀다. 그러다 보니 설립 후 10년 가까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아마존과 쿠팡의 다른 점이 있다. 아마존은 유통에 돈을 쏟아부어도 될 정도로 다른 곳에서 돈을 벌었다는 점이다. 바로 클라우드 서버 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AWS)’다. 아마존이 급성장한 것은 유통망 혁신도 있지만 AWS가 자금을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다.

쿠팡은 아직 AWS와 같은 ‘돈줄’이 없다.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델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1~2년 뒤 쿠팡은 또 위기론에 직면할 수 있다. 그때는 구원투수도 없다. 이번 투자 유치가 ‘수혈’이 아닌 ‘투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익성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제기되는 배경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범석 대표는 “쿠팡을 매각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앞으로 김 대표가 어떤 묘안을 갖고 쿠팡을 운영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6호 (2018.12.05~12.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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