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기술의 경계 위를 서핑하는 시대

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세상의 기반 구조에 대한 대변혁이 진행되고 있다. 한자리에 앉아서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소통하며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심층 연결'의 세상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나아가 과거엔 전문가의 영역으로 치부돼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까지 가능해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역사는 증명했다. 좋은 기술은 반드시 선의의 뜻으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의 걱정은 걱정에 그치지 않고 보편화될 기술의 두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걱정은 기술이 그동안 인간 사회가 구축해 놓은 신뢰를 파괴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AI)은 어떤 사람의 말투나 습관, 사투리마저도 금방 배운다. 이로써 사람의 판단 능력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한 보이스 피싱의 공격이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며, 중요 인물 발언을 흉내 내는 가짜뉴스의 생산이 비일비재해질 것이 자명하다.

두 번째 걱정은 인간 사회 대상 직접 공격 위험성이다. 시각 지능이 있는 소형 드론에 살상무기를 장착하면 인터넷에서 학습한 특정 얼굴을 찾아 공격하는 것이 현재의 기술로도 쉽게 구현될 수 있다.

세 번째 걱정은 단순 노동 일자리 침탈이다. '아마존고'의 무인슈퍼는 이미 수많은 점원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자율주행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속도를 보고 있으면 버스나 택시 등 운송업이나 택배 일자리의 대부분을 기술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 디지털 기술의 두 얼굴이다. 이와 같이 심층 연결된 세상에서 디지털 기술의 침투는 국경으로도 막을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규제로도 영역을 지켜 내기 어렵다.

세상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기술은 계속 경쟁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논에 막아 둔 물이 넘치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면 둑이 터져서 농사를 망칠 수 있다. 기술이 바로 그와 같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기술의 진보는 사람의 일자리만 빼앗아 가는 게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국가 및 사회 전체의 존립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술의 도입을 늦출 수도 없다. 새로운 편리성과 욕망이 또 다른 비즈니스의 기회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130만명, 북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가 그 가능성을 먼저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들은 사이버 세상을 국가가 보증하는 합법 공간으로 만들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자영주권을 발행하고 은행 계좌를 열어 줬다. 클라우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사이버 공간을 국토로 편입시켜서 거대한 비즈니스 공간을 선점해 가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가고 있다. 이렇듯 기회와 위협은 같은 파도를 타고 밀려오기 마련이고, 이처럼 우리 생활 주변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알게 모르게 곧 우리 생활 저변을 바꾸게 될 것이다. 밀려오는 파도를 피할 수 없다면 물결쳐 오는 파도 위를 지혜롭게 서핑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서핑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신기술의 수용에 대한 사회 합의다. 직업의 소멸은 1차로 무직자를 양산하는 문제가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더 큰 둑에 물이 차오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게 뻔한 기술 대체에 따른 직업의 과금·과세 방법과 다양한 이해 집단 간 수익 분배 방법 등을 선제 대응하는데 사회 뜻을 모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합의만 이뤄진다면 우린 아직 늦지 않았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하고 멋진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따른 패러다임 격변 시기에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미래 예측이 오히려 미래 예측을 방해할 수도 있다.

지금은 규모와 속도 면에서 과감하고 신속하게 새로운 성장 시장에 자원을 재분배하고, 전혀 다른 차원에서 위험과 다양성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아주 멀게만 느껴 온 먼 미래가 코앞에 당도했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 진지한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 합의를 통해 적응해 나갈 것인지, 사라질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shlee@etri.re.kr